13일 오전 재판에 출석하려고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 온 박근혜 전 대통령. 연합뉴스
감사원이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중심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와 소속 기관의 기관운영감사를 통해 79건의 불법 사실 등을 적발하고 관련자 28명의 무더기 징계를 요구했다. 감사 결과 2014년 상반기부터 문체부가 소속 기관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문예위)와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에 지시해 심의위원 후보자와 지원사업 대상자에서 특정인·단체를 부당하게 배제한 것은 모두 444건(문화·예술 417건, 영화 5건, 출판 22건)에 이르렀다. 이는 청와대의 ‘깨알’ 같은 지시에 따른 것으로, 산하기관장들이 이를 이행하려고 직접 심사위원들을 설득하러 나섰던 사실까지 감사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감사원은 지난해 12월 국회가 요구한 12개 감사요구 사항과 블랙리스트 집행 등을 감사해 이런 내용이 담긴 결과를 13일 발표했다. 감사원은 청와대의 요청을 받은 문체부가 전국경제인연합회의 미르·케이(K)스포츠재단 설립을 단 하룻밤 사이에 허가하는 과정에서 엉터리 인감이 사용된 사실 등에 눈감았다고도 밝혔다. 문체부는 또 청와대 지시에 따라 국가재정법 등을 어겨가며 최순실씨가 운영하는 플레이그라운드와 케이스포츠재단의 태권도 시범단을 대통령 해외순방 문화행사 대행업체 등으로 선정한 것으로 조사됐다.
징계 규모는 컸지만 정직에 해당하는 중징계는 2명, 해임 건의는 1명(이기우 지케이엘 대표)에 그쳤다. 나머지 25명에 대해서는 모두 경징계를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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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계층 문화사업까지 배제 공연 등 문화·예술 분야는 특정인 또는 단체가 지원사업 등에서 배제된 경우가 417건으로, 문체부의 가장 주요한 ‘검열’ 대상이었다. 2016년 5월께 청와대는 정부 지원사업에 응모한 문화예술인과 단체 중에서 지원하지 말 곳을 콕 찍어서 문체부에 명단을 내려보냈다. 문체부는 문예위에 ‘공연예술스태프 지원사업’에 응모한 36개 문화예술단체명을 알려주며 이들을 지원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문예위는 박명진 위원장의 묵인 아래 심의 과정에 간사로 참석해 “정부 지시”라며 이들 단체를 지원에서 배제했다. 또 2015년 6월에는 박 위원장이 직접 나서 “(정부가 정한) 단체를 지원배제하지 않으면 사업 전체가 폐지되어 모든 단체를 지원할 수 없다”고 심의위원들에게 설명해 31개 단체를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기도 했다. 이들은 농산어촌·사회복지시설을 찾아다니며 공연을 하는 문화순회 사업과 장애인 문화예술 동호회 지원사업과 같은 소외계층 사업뿐만 아니라 문체부가 예술인의 어머니에게 주는 ‘장한 어머니상’ 등 소소한 사업에서도 지원을 받지 못했다.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13일 오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려고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법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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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벗고 뛴 영진위원장 문체부는 2014년 4월 영진위 사무국에 예술영화전용관 대구동성아트홀을 ‘전용관 운영지원사업’의 지원 대상에서 빼라고 지시했다. 천안함 침몰 원인이 북한의 어뢰 공격이라는 정부 발표에 의문을 제기하는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를 상영한 것을 문제 삼은 청와대 문화체육비서관실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이에 영진위는 이미 동성아트홀을 지원하기로 한 예비심사 결과를 철회한 뒤, 이 영화관이 지원금 의존율이 높고 시설이 열악한 점을 이용해 이 부분의 심사항목 배점을 높여 지원사업에 선정되지 않도록 했다.
또한 청와대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2015년 4월 <다이빙벨>을 상영했다는 이유로 영화제 지원금을 전년도의 절반인 약 7억3천만원으로 삭감하도록 문체부에 지시했다. 이 지시를 문체부로부터 전달받은 김세훈 영진위원장은 지원사업 심사회의 때 이에 반대하는 심사위원 2명을 쉬는 시간에 따로 만나 직접 설득 작업을 벌였다. 결국 영화제 지원금은 6억6천만원 줄어든 8억원으로 결정됐다.
문체부는 2014년 10월 <다이빙벨>을 상영한 독립영화전용관 아리랑시네센터와 인디스페이스를 이듬해 지원 대상에 포함시키지 말라는 지시를 영진위 사무국에 내리기도 했다. 이에 영진위는 국회에서 “서울 소재 독립영화전용관에 대한 편중 지원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 사항을 명분으로 삼아, 이듬해 두 독립영화전용관과 위탁 계약을 해지하고 서울 이외 지역 영화관을 지원 대상으로 선정했다. 이런 내용을 포함해 영화 분야에선 모두 5건의 지원 배제가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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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향성 이유로 문학 작품 배제 출판과 문학 창작 분야에서도 내용과 작가의 전력을 문제 삼아 22건의 부당한 지원배제가 이뤄졌다. 문체부는 청와대의 지시로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세종도서 선정 사업에 개입했다. 세종도서 사업은 정부 예산으로 1천만원 상당의 책을 사들여 공공도서관에 배포하는 사업이다. 진흥원은 2014년도 세종도서를 선정할 때 심사위원들에게, 2013년도에 <체 게바라와 랄랄라 라틴아메리카>란 초등학생용 교양서가 선정된 데 대한 보수언론의 부정적 보도와 문체부의 우려를 언급하며 박정대 시인의 대산문학상 수상작 <체 게바라 만세>(실천문학사)가 선정되지 않도록 했다. 이 책과 함께 신동호 시인의 <장촌냉면집 아저씨는 어디 갔을까?>(실천문학사)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한강의 <소년이 온다> 등 모두 9권이 배제 대상이 됐다. 2015년도 세종도서 선정 역시 문체부가 개입해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2>, 정안나 시인의 〈A형 기침〉 등 문학·교양분야 13권의 도서를 지원 대상에서 제외했다.
김지훈 김남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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