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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낙하산 날고 사전검열 뜨고…문화계 드리운 유신의 추억

등록 2015-02-22 20:32수정 2015-02-23 10:40

박근혜 대통령 취임 2년, 대중문화 영역에선 따뜻한 ‘복고 바람’이 불었다. <응답하라 1994>(2013년 10월18일~12월28일)는 3040세대를 젊은 날로 이끌고,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는 ‘왕년의 언니·오빠들’을 불러내며 90년대를 지금의 감성으로 소환했다. 2013년 2월25일, 취임사에서 “문화의 가치로 사회적 갈등을 치유하고, 문화로 더 행복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공언한 박 대통령의 문화 정책도 겉으로는 ‘복고풍’이다. 매해 문화예산은 10%씩 늘었고 문화의 날, 문화누리카드 실시 등 문화 소외 계층에 대한 정책도 실시중이다. 박 대통령은 ‘한복 중흥’을 위해 직접 베트남 하노이 한복패션쇼 무대에도 올랐다. 하지만 ‘집단’에 묻혔던 ‘개인’을 발견하고, 다양하고 세련된 장르가 꽃핀 90년대의 시대정신과 달리, 낙하산 인사·검열의 부활 등으로 박근혜 정부에선 ‘유신시대의 땟국물’이 떨어지는 ‘권위주의적 복고’가 한창이다.

문화예술 기관장에 친박 포진…박대통령, 문체부 인사 개입도
줄잇는 보은 인사

“부실 인사가 원칙 없이, 전문 분야와 상관없는 낙하산으로 임명되는 것은 반드시 근절하겠다.” 2012년 11월6일, 대선을 40여일 앞둔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는 이렇게 약속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2년 동안 문화계는 ‘낙하산’에 홍역을 치렀다.

박 대통령 취임 뒤 스무날도 안 된 2013년 3월14일, 문화예술 분야 기관장 인사 1호인 예술의전당 사장에 고학찬씨가 임명됐다. 방송사 피디 출신으로 박 대통령의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에서 문화예술분야 간사를 맡았던 인사다. 관광공사 사장과 상임감사는 ‘낙하산의 완결판’이었다. 2014년 4월, 박 대통령의 당선자 비서실 홍보팀장을 지낸 변추석 국민대 교수가 관광공사 사장에 임명되자, 관광공사 노조는 “낙하산 보은 인사 철회”를 요구하며 반발했다. 하지만 넉달 뒤인 그해 8월, 박근혜 해외동포 후원회장, 박근혜 대선캠프 재외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지낸 자니 윤(본명 윤종승)씨를 상임감사로 임명했다. 청와대 ‘문고리 권력’이 개입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한예진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 임명, 광주아시아문화전당 산하 문화창조원 이영철 전시예술감독 경질은 현재 진행형 논란이다. 오페라 단체들은 한 감독을 ‘청와대 밀실인사’라고 비판하며 거리로 나섰고,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선임 절차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하기로 했다. 이영철 전 감독도 “김종덕 장관이 자기 인맥을 심기 위해 표적 경질했다”며 무효소송을 내기로 했다.

문체부 내부도 인사 문제로 만신창이가 됐다. 2014년 7월, 유진룡 장관은 후임 장관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경질됐다. 문체부 내 ‘유진룡 인맥’ 솎아내기, 암투설 등 의문은 여전하다. 지난해 말 정윤회씨 딸의 승마 국가대표 선발 논란과 관련한 승마협회 감사보고서를 정씨 쪽 입맛과 달리 올린 것으로 알려진 문체부 국장들의 교체를 박 대통령이 직접 지시한 일 등 ‘그늘’이 조금 들춰졌을 뿐이다. 김희범 문체부 1차관이 취임 6개월 만인 지난 1월22일 돌연 사표를 낸 것을 두고도 뒷말이 무성하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스크린도 문예지도 표현의 자유 위협…영진위는 사전심의 논란
위축되는 출판·영화계

박근혜 정부 출범 뒤 영화, 출판 등의 영역에선 끊임없이 ‘표현의 자유’가 위협받고 있다.

2013년 9월, 메가박스는 천안함 좌초설을 다룬 다큐영화 <천안함 프로젝트> 상영을 개봉 이틀 만에 중단했다. “보수단체의 항의”를 이유로 내세웠다. 같은 해 <현대문학> 9월호는 10여년 전 발표한 박 대통령의 수필을 극찬한 서평 ‘바른 것이 지혜이다-박근혜의 수필 세계’(이태동 서강대 명예교수)를 게재했다. 뒷말이 무성했다. 하지만 12월호에 예정됐던 이제하의 소설 <일어나라, 삼손> 등은 게재를 거절했다. ‘박정희 유신’ 등 몇개의 단어가 문제였다. 작가들이 반발하자 <현대문학>은 사과문을 내고, 주간과 편집자문위원이 사퇴했다.

‘알아서 눈치보기’인지도 의문이지만, 정부가 사실상 ‘검열 제도’ 부활을 시도하고 있다는 의혹은 커진다. 영화진흥위원회는 최근 ‘영화제 상영 등급 면제 추천 규정’ 개정, 예술·독립영화 전용관 지원사업 방식 변경 등을 추진하고 나섰다. 지난해 7월, 대법원은 마네킹을 내세워 현실 정치를 비꼰 <자가당착>에 대한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제한상영가등급 판정’이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지난달 열린 ‘으랏차차 독립영화’ 기획전에서도 상영되지 못했다. 결국 스크린쿼터 축소 논란 이후 10여년 만에 범영화계가 ‘표현의 자유 사수를 위한 범영화인 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집단행동에 돌입했다. 문체부가 올해 초 ‘세종도서(우수도서) 사업’ 문학도서 선정 기준에 ‘특정 이념에 치우치지 않는 순수 문학작품’을 제시한 것도 의도를 의심받고 있다. 작가회의 등 문학계는 “사상, 표현의 자유와 출판의 자유를 훼손하는 퇴행”이라며 맞섰다.

국립국어원은 지난해 1월 표준국어대사전의 사랑에 대한 낱말 풀이에 ‘남녀 간에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을 추가하는 등 사랑, 연애, 애정 3개 단어의 행위 주체에 ‘남녀’를 추가했다. 일부 기독교계가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하게 여기는 마음’이라는 뜻풀이가 동성애를 부추긴다고 반발하자, 개정 1년 만에 다시 손을 봤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교학사 채택 0%대 그치자 국정화 추진…황우여 교육장관이 앞장
역사 왜곡교과서 파동

2013년 6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이 ‘역사전쟁’의 불씨를 당겼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고교생 응답자의 69%가 6·25를 북침이라고 응답한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며 “교육 현장에서 진실이나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안 된다”고 말한 것이다. 그 뒤 학생들이 ‘북침’을 ‘북한의 침략’이란 뜻으로 오해한 것이라고 밝혀져 이를 정치적 목적으로 왜곡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두달 뒤 국사편찬위원회는 역사 왜곡 논란이 불거진 교학사 교과서를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검정에 합격시켰다. 비판이 쏟아지자 우파 성향 원로 학자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지지 성명을 발표했다. ‘교학사 교과서 파동’이 본격화한 것이다.

교학사 역사 교과서를 채택하는 비율이 0%대에 머물자 2013년 말부터 여권 주요 인사와 우파 학자를 중심으로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자는 주장이 제기됐다. 2014년 1월, 서남수 당시 교육부 장관은 전체 교과서의 오류를 막겠다는 명분으로 부처 안에 편수 전담 조직을 부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편수조직 부활은 정부가 교과서 검정 전반에 개입할 수 있는 길을 터주게 되므로 사실상 국정 교과서 체제 회귀라는 비판이 나왔다.

“교과서 1% 채택도 어려운 나라가 어디 있느냐”며 교학사 교과서를 옹호했던 황우여 전 새누리당 대표는 2014년 8월 사회부총리 겸 교과부 장관이 됐다. 국회 인사청문회에 이어 지난 1월에도 “역사는 한 가지로 가르쳐야 한다”며 기존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최근 교육부는 초·중·고교 교육 내용과 교과서 개편을 담당하는 전문직 공무원들을 대폭 늘려,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 전환에 대비한 포석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이런 흐름은 수구 보수 또는 뉴라이트 학자들의 주요 보직 등용과 맞물려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는 시나리오라는 분석이 나온다. 권희영 한국학대학원장, 유영익 국사편찬위원장, 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장, 이인호 한국방송(KBS) 이사장, 박효종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이 지명 당시 편향된 역사관으로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다이빙벨’ 상영했다고 사퇴 압박…대통령 풍자했다고 출품 막아
눈치보는 지자체의 문화행정

‘퇴행’은 지방자치단체의 문화행정에도 어김없이 나타났다. 지자체 행사에서 정부비판적인 출품작들을 사전검열하고, 거슬리는 단체장을 ‘찍어내기’ 하는 등 파행이 잇따랐다.

지난달 부산시는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에게 사퇴를 요구해 영화계 반발을 샀다. 지난해 영화제에서 시의 만류에도 세월호 참사를 파헤친 <다이빙벨>을 상영해 심기를 건드린 데 대한 ‘보복’이란 비판이 일었다. 상영 직후인 지난해 11월 감사원과 시가 영화제를 감사한 사실도 드러나 외압설은 더욱 증폭됐다.

지난해 8~9월 열린 광주비엔날레 20돌 특별전 ‘달콤한 이슬’에서는 홍성담 작가의 박 대통령 풍자화 <세월오월>의 출품을 광주시가 가로막았다. 청와대를 의식한 ‘사전 검열’ 논란이 불거졌다. 국내외 참여작가 10여명도 철수하겠다고 반발했지만, 결국 홍 작가가 출품을 접고, 이용우 비엔날레재단 대표는 사퇴하면서 사태가 미봉됐다. 독립성을 잃고 중앙정부와 지자체에 끌려다니는 국내 비엔날레 시스템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태였다는 평가다. 색깔 있는 분단 미술제로 호평받았던 ‘백령도평화미술프로젝트’는 인천시문화재단의 지원 중단으로 무산됐다. 새누리당 유정복 시장 취임 뒤 재단 쪽은 예술감독을 직위해제하고 지원금 집행은 물론 사업계획도 내지 않아, 참여작가 20여명이 행사를 거부하고 재단 대표 사퇴를 요구하는 등 갈등을 빚었다.

신라 천년 궁터인 경주 월성 발굴은 정치권이 박 대통령 임기 안에 조사를 마무리하라고 문화재청을 압박해 외압 시비를 낳았다. 경주가 지역구인 정수성 의원이 영리 발굴회사를 대거 동원해 조사기간을 줄이라고 요구하자 고고학계가 항의성명을 내기도 했다. 논란 끝에 지난해 12월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시와 합의해 조사를 시작했으나, 논란은 여전히 잠복한 상태다. 70년대 착수했다가 10·26사태로 중단된 월성 발굴을 지자체 쪽이 ‘박정희 정권의 유지’로 보기 때문이다. 30년 이상 조사해야 한다는 학계 의견과 달리, 지자체 쪽은 여전히 조기 발굴 복원의 야심을 접지 않고 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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