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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괴벨스의 ‘제자’들인가

등록 2013-10-03 19:39수정 2013-10-04 11:16

미디어 전망대
<조선일보>는 요즘 거대 언론권력이 개인을 어떻게 철저히 파괴할 수 있는가를 실증하고 있다. 현직 검찰총장이라도 일단 최고 권력자의 눈 밖에 나면, 언론권력 앞에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가를 채동욱 전 총장이 보여주었다. 채 전 총장에게 덮어씌워진 ‘혼외자’ 혐의의 실체적 진실은 단정하기 어렵다. 진실은 어머니 임아무개씨가 아들의 유전자 검사에 동의해야만 가릴 수 있다.

보도들은 임씨가 검사에 동의하지 않는 것을 인권적 차원에서 설명한다. 하지만 인권을 들먹이는 것은 지나친 확대다. 유전자 검사는 머리카락 한 올이나, 쓰던 칫솔 하나만 있으면 가능하다. 이 아이는 이미 언론 보도로 엄청난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다. 유전자 검사는 논란을 잠재움으로써, 오히려 그의 인권과 정체성을 되찾아주는 길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그럼에도 임씨가 검사를 한사코 거부한다면 그 이유는? ‘혼외자’라면, 임씨가 검사에 동의함으로써 아들은 법적, 사회적으로 채 전 총장의 아들로서 인정받는다. 어머니로서는 좀처럼 거부하기 힘든 기회다. ‘혼외자’가 아니라면, 검사 결과로 조선일보와 청와대가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다. 이번 파동의 당사자들, 곧 채 전 총장과 임씨, 조선일보와 정권 쪽 관련 인사는 이미 무엇이 진실인지를 알고 있을 것이다. 임씨가 검사를 끝까지 거부한다면, 위의 당사자 중 불리한 쪽이 압력을 넣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실체적 진실이 무엇인가와는 상관없이, 조선일보는 언론의 정도를 크게 벗어났다. 조선일보는 ‘혼외자’ 혐의 보도를 시작할 때부터 줄곧 사실 확인이라는 보도의 기본 원칙을 깡그리 무시했다. 더욱이 사생활도 공직자의 경우는 보도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인다 해도, 공직에서 물러난 이상 그의 사생활은 보호되어야 마땅하다. 그렇지만 의혹의 양 당사자, 즉 채 전 총장과 아이의 어머니가 ‘혼외자’ 의혹을 한결같이 부인하고 있는데도, 주변 사람들의 무책임한 ‘증언’을 총동원하여 조선시대 ‘부관참시’가 연상될 정도의 난도질을 하고 있다.

‘증언’이라는 것도 아귀가 맞지 않는다. 예를 들면, 조선일보는 아이의 어머니인 임씨가 첫 보도 직전 ‘잠적’했다고 보도했다. 혐의를 받고 있는 채 전 총장 쪽이 임씨를 사전에 빼돌렸을 것이라는 암시를 한 것이다. 하지만 임씨가 반드시 채 전 총장 쪽의 종용으로 잠적했다고 단정할 수만은 없다. 임씨에게 연락한 사람이 채 전 총장 쪽이 아닐 경우, 보도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고 보이는 사람들, 예를 들어 조선일보 관계자 및 청와대, 또는 제3의 기관 중 누군가가 의심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일방적이고 앞뒤가 맞지도 않는 엉성한 보도를 그대로 믿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기 때문에 조선일보 보도 같은 것이 계속 나온다.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의 ‘라이프 사진전’에서 만난 요제프 괴벨스의 사진이 채 전 총장 파동을 요약하고 있다. 히틀러 밑에서 선전부 장관이었던 괴벨스의 사진 밑에는 “선동은 한 문장만 있으면 된다. 하지만 해명하기 위해선 많은 자료가 필요하다. 해명을 마칠 즈음 사람들은 선동한 내용만 기억한다”는 그의 유명한 말이 붙어 있다. 사람들은 결국 진실과는 상관없이, 검찰총장이 ‘혼외자’ 문제로 사퇴했다는 사실만 기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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