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병이 서울대 환경대학원 명예교수와 안창모 경기대 건축대학원 교수
창간기획 l‘용산 공원화’ 좌담
용산 미군기지의 반환으로 서울은 2016년께 대지 73만평에 이르는 공원을 갖게 될 예정이다. 대한민국의 대부분 땅이 압축적 발전을 거듭하는 동안, 100년 넘게 군시설로만 쓰이며 ‘개발의 시간’이 멈춰버렸던 곳. 이 거대한 규모의 용지의 변모가 갖고 있는 역사적·문화적 의미와 과제가 무엇인지 용산공원 마스터플래너인 양병이 서울대 환경대학원 명예교수와 근대 건축물을 연구해온 안창모 경기대 건축대학원 교수와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용산에는 일본, 미국 등 외국 군부대가 계속 주둔해왔다. 그 이유부터 짚어보자.
안창모(이하 안) 군사시설은 전략 요충지에 들어선다. 1904년 러일전쟁 직후 일본이 병영을 만들 때는 전략적 판단이었던 것 같다. 용산은 삼남의 물류가 모이는 곳이다. 대한제국을 손아귀에 넣기 위해서는 물류와 조선 정부 사이에 자리잡아야 했을 것이다. 철도 부설 이후에는 용산이 사실상 조선 철도의 허브가 되면서 대륙침략의 거점 역할을 했다. 한국전 이후는 좀 다르다. 최전선도 아니고 후방기지도 아니다. 단순히 일본 기지를 이어받았다기보다 미군에게 군사적인 측면 외에 정치적으로 중요한 위치였다고 본다.
-용산 미군기지는 한국이나 서울시에 어떤 존재인가?
양병이(이하 양) 용산기지는 담장으로 둘러쳐진 채 서울과 단절된 점에서 섬 같은 존재다. 정부나 서울시의 힘이 미칠 수 없는 영역이어서 도로·지하철이 모두 피해가야 했다. 동작대교 북단이 연결이 안 된 채 끊기고 지하철 4호선이 휘어진 것도 그런 탓이다. 그 여파로 주변지역이 낙후되는 등 서울시 발전에 부정적인 역할을 했다.
안 서울의 성장 과정을 보면 개항 이후 영등포가 개발되고 1960~70년대에 강남이 개발되는데, 용산이 중심인데도 군기지의 존재 때문에 건너뛰게 된 것이다. 80년대 후반 민주화청년건축가협의회에서 “미군 나가라, 그곳에 임대주택 짓겠다”는 주장을 편 적이 있다. 당시 그대로 되었다면 지금 용산기지에는 고밀도 아파트가 들어섰을 것이다. 그게 바람직했을까 생각이 든다. 경제·문화적 역량이 갖춰진 상황에서 용산이 우리한테 돌아오게 돼 공원을 만들 수 있게 된 셈이다. 아이러니다.
-미군기지 때문에 4호선이 돌아가고 동작대교가 끊긴 것은 이해가 안 된다.
안 60년대 말까지 서울은 강북 도시였다. 1·21사태 이후 남북 대치 상황에서 강북만으로 부적합하다는 판단으로 강남 개발이 추진됐다. 그리고 70년대 후반 들어 행정수도를 구상했으나 성사되지 못했다. 뒤늦게 5공화국에서 만든 게 과천 행정도시다. 과천을 도심과 연결하기 위해 남태령~동작대교~남산~힐튼호텔 도로가 계획됐다. 동작대교를 놓으면 미군이 기지 지하를 내줄 줄 알았던 것 같다. 지하철 4호선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지금의 노선이 됐다. 미군이 양보 못하는 사연이 있었을 터인데 한국 정부는 미군기지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몰랐던 듯하다.
-용산기지는 2016년께부터 공원으로 조성되는데, 서울에서 용산공원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양 서울에는 공원용지가 없다. 용산기지처럼 73만평을 확보한다는 게 불가능하다. 그동안 개발 안 되고 두통거리로 묶여 있었던 것이 재산으로 돌아왔다. 강남북이 모두 개발돼 포화상태가 된 상황에서 숨통이 트인 셈이다. 북악~비원~남산~국립묘지~관악산을 잇는 녹지축을 연결하는 고리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서울은 보스턴처럼 녹지축으로 연결된 도시가 될 것이다.
안 옛 서울은 청계천을 품고 북악, 인왕산, 낙산, 남산 등 내사산으로 둘러싸인 인구 10만의 환형도시였다. 지금은 한강을 품고 북악, 덕양산, 용마산, 관악산 등 외사산으로 싸인 1000만의 환형도시다. 흥미로운 것은 종로, 을지로, 퇴계로 등 동서로 길이 발달했다. 남북의 축이 필요하다는 게 60년대 김수근의 생각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쇼핑몰과 유보도를 겸한 세운상가를 구상했다. 외부 요인으로 그런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었는데 많은 이들이 그런 생각을 했다. 그렇게 남산과 잇고 나니 용산기지를 거쳐 한강까지 연결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양병이
역사적 가치가 있는 건물 재활용
나무·잔디만 있는 공원과는 달라
향후 주변 난개발 이어질까 걱정 안창모
용산을 잘 아는 사람 별로 없어
누구를 막론하고 공부하는 단계
비용·예산확보 등 난제 풀어가야 -2012년 ‘용산공원 설계 국제공모’에서 승효상씨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뽑은 이유와 보완점은 무엇인가? 양 외국군이 주둔하여 역사가 단절된 장소로서 용산기지의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를 회복·치유하려는 시도가 돋보였다. 공원은 애초 산업혁명 이후 지친 도시민의 휴식을 위한 공간으로 구상됐다. 공원은 역사의 산물이란 얘기다. 용산공원은 피로를 푸는 전통적인 공원개념에다 역사적 상처에 대한 치유를 녹여넣었다. 다른 나라의 공원과 차별되는 지점이다. 이를 잘 부각하면 용산공원은 한국을 넘어 세계적인 공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안 용산기지가 군사시설이라 설계자들이 현장을 많이 못 갔으며 네덜란드 파트너는 한국사에 대한 이해가 낮았다. 의견 일치가 쉽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 보편적인 해법이 무난하기는 했지만 역사를 잘 아는 입장에서 보면 부족한 점이 있다고 느낄 것이다. 팩트가 틀린 것도 있다. 사실 용산을 잘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지금은 누구를 막론하고 공부하는 단계에 가깝다. 양 그래서 당선작 팀과 용역 계약을 하면서 계획안을 변경할 수 있다는 조건을 달았다. 기본설계, 실시설계 단계에서 바꿀 수 있다는 얘기다.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마스터플래너 제도를 도입했다. 기간이 길고 중간에 담당자가 바뀔 것을 대비한 것이다. -회복과 치유는 일본군 기지가 들어서기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것인가? 양 완전 회복은 어렵다. 부분 회복은 가능할 것이다. 워낙 건물이 많아서 다 허물지 말고 보존, 리모델링, 철거 등으로 구분하여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건물은 재활용하게 된다. 보수적으로 판단해 많은 것을 남겨 디자이너의 재량에 맡긴다는 방침이다. 나무와 잔디만 있는 기존 공원과 달리 터와 건물이 어울려 역사를 안고 있는 공원이 될 것이다. 안 남아 있는 건물의 상태는 양호하다.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건물이 안정적이라는 증거다. 미군들이 손을 많이 안 댔다. 이렇게 오래 머물 줄 몰랐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처럼 영구 주둔한다고 생각했다면 그러지 않았을 거다. 새로 지은 것들은 대부분 언제든 해체 가능한 것들이다. 철근콘크리트 건물로는 군속(군무원)들을 위해 지은 두 군데 타운하우스가 있다. 타운하우스는 재활용하고 가건물도 일부 보존하게 될 것 같다. 없어진 총독관저나 군사령부 건물 복원 얘기도 있다. 그 자리에 들어선 건물을 철거하면 유구가 드러날 것이다. 하지만 굳이 복원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러지 않고도 부정적 유산을 보여주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한미연합사는 건물 가치보다 기관의 가치가 크다. 가치를 드러내는 방식은 다양한데, 그것은 디자이너의 몫이다. -캠프 킴 등 인접한 소규모 기지에 고층빌딩을 올려 재원을 확보한다는데…. 안 다 안고 가면 좋겠지. 하지만 돈이 많이 드니 그게 고민이다. 용산기지 가운데 본체에서 떨어진 작은 부지 세 군데를 팔아서 일부 비용을 쓰자는 것이다. 그곳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곳이다. 개인적으로는 캠프 코이너에 있는 남단이 중요해 보인다. 대사관이 그곳보다는 산개부지 가운데 한 군데를 쓰면 좋을 것 같다. 한-미 외교채널에서 이미 결정돼 아쉽다. -공원화 이후 서울은 어떻게 될까? 안 1988년 올림픽을 계기로 서울은 물리적으로 정비돼 국제무대에 데뷔했다. 일본의 패권 야욕, 동서 냉전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용산공원을 선보임으로써 서울은 내적으로 성숙한 모습으로 세계 평화의 메시지를 던질 수 있을 것이다. 양 기지 남쪽은 이미 주상복합 등 고층아파트가 들어섰다. 공원이 조성되면서 주변 일대가 모두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다. 난개발이 우려된다. 지구단위 계획이 있기는 하나 전례를 내세워 주장하면 규제하기 어렵다. 서울시에서 알아서 할 일이다. 또 남산과 녹지축을 이으려면 해방촌 주민을 이주시켜야 하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다. 핵심은 세금이다. -공원화와 관련해 더 논의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 안 용산공원 추진단 시스템은 갖춰졌지만 예산 확보가 늦어지고 있다. 본의 아니게 시간을 벌어줘 다행이다. 외곽에서 이를 지원하는 마스터플래너 제도를 만들었는데, 실질적으로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또 좋은 공원을 만들자는 취지로 현상공모를 한 만큼 실시설계 단계 이후 저가입찰 방식을 지양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관계기관 협의체에 국토부, 국방부 외에 미국도 포함해 의견을 모아가는 방안도 좋을 듯하다.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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