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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죽은 지식인의 사회 ‘대중 지성’ 깨어나다

등록 2007-01-25 19:45수정 2007-01-25 19:54

이라크 파병 반대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는 네티즌들. 전위나 중앙 같은 지도부 없이 네티즌들이 자발적으로 뜻을 모아 벌이는 플래시 몹은 인터넷상에서 ‘대중 지성’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잘 보여준다고 자율주의 이론가 조정환씨는 말한다. 한겨레 자료 사진.
이라크 파병 반대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는 네티즌들. 전위나 중앙 같은 지도부 없이 네티즌들이 자발적으로 뜻을 모아 벌이는 플래시 몹은 인터넷상에서 ‘대중 지성’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잘 보여준다고 자율주의 이론가 조정환씨는 말한다. 한겨레 자료 사진.
군림하는 엘리트 지성은 가라
재야 고수 뭉친 인터넷카페로 정부 쩔쩔매게 하고
타인끼리 네트워크 꾸린 ‘플래시 몹’은 대사회 발언
대중 스스로 지식 생산·유통 창조적 활력
커버스토리 /

“요즘 아카데미에서는 엉뚱한 열정이 불타오르고 있다. 앎에 대한 의지 속에서 삶의 형태가 바뀌는 게 아니라 돈에 대한 의지 속에서 앎의 형태가 바뀌고 있다.”

연구공간 ‘수유+너머’(대표 고병권)의 공부 모임 ‘2007 대중지성 프로젝트’는 이런 선언으로 시작하고 있다. 열정의 불길에 휩싸인 대학은 이들의 선언을 빌리면, 지식의 죽음, 지식인의 죽음을 재촉하고 있다. 리하르트 바그너의 악극 <신들의 황혼>에서 주인공 지크프리트가 화염에 휩싸여 세계와 함께 무너지듯이, 돈에 대한 열정의 불길 속에서 지식인은 대학과 함께 소멸하고 있다는 것이다. 계몽의 주체, 진보의 전위였던 지식인이 붕괴한 자리는 그러나, 단순한 폐허가 아니다. 그 황량한 땅에서 새로운 주체, 새로운 지성이 태어나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믿음이다. 다름 아닌 ‘대중 지성’이다.

대중 지성이란 지식을 독점하던 특권적인 소수의 지성에 대한 대항 개념이다. 선생이 학생에게 일방적으로 지식을 주입하는 전통적 아카데미즘 바깥에서 대중이 스스로 지식을 생산하고 유통하고 공유하는 것을 가리킨다. 대중이 지식인화하고 지식인이 대중으로서 나서는 것, 그리하여 대중의 집합적 지혜 속에서 창조적 지성이 솟구치는 것, 대중 지성은 그 새로운 현상을 지시하는 말이다.

‘대중 지성 프로젝트’ 공부모임

대중 지성이 가장 날렵하게 자신을 드러내 보이는 곳은 인터넷 공간이다. 인터넷은 익명의 개인들이 특정한 주제 아래 모여 지식을 만들어내고 퍼뜨리고 재생산하는 대중 지성의 현장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사태를 보자. 자유무역협정을 기획하고 추진하고 협상하는 주체인 정부 관료들은 지난 몇 년 동안 협상의 주요 내용 공개를 거부했다. 기밀이 알려지면 국익이 침해당한다는 것이 이들이 내세운 방어 논리였다. 한 나라의 명운이 걸린 중대한 국가적 의제가 소수 관료들의 밀실에 맡겨진 채, 국가의 주인인 국민이 국외자로 밀려난 꼴이었다.

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 인터넷이었다. 서로 한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이 ‘카페’를 만들고 문제를 제기했다. 협상의 진행 상황을 알려주는 정보를 찾아내고 그것을 분석하고 거기에 새로운 전문 지식이 더해져 믿을 만한 자료가 탄생했다. 그리고 그 자료들이 팸플릿으로, 자료집으로, 선언문으로 가공돼 시민들에게 전달됐다. 비밀에 싸여 있던 자유무역협상이 서서히 실체를 드러냈다. 이제 정부 관료들은 미국과 협상하기 전에 시민과 협상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고병권 대표는 “이런 사태 전개야말로 대중 지성의 힘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말했다. “대중 지성은 대중의 집합적 지성이지만 지식인으로 대표되는 전통적 지성보다 더 전문적이고 더 풍부하며 더 심층적인 지식을 산출한다”고 그는 말한다.

대중 지성은 분명히 새로운 현상을 지칭하는 말이지만, 아무런 지적 계보 없이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말은 아니다. 대중 지성의 연원은 카를 마르크스에게로까지 올라간다. 마르크스는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에서 대공장의 기계화 현상을 ‘일반 지성’이라는 말로 설명했다. 기계가 발전할수록 생산은 점점 더 사회적 협업 형식이 되고, 점점 더 생산자의 집합적 지성에 의존하게 된다는 것이 마르크스가 일반 지성이라는 말로 이야기하려는 것의 요지였다. 1970년대 말 이탈리아의 철학자 안토니오 네그리는 마르크스의 일반 지성에서 힌트를 얻어 ‘대중 지성’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지휘부도 전위도 없어

네그리는 그의 지적 협업자인 마이클 하트와 2004년에 함께 쓴 <다중>이라는 저서에서 이 대중 지성을 ‘스웜 인텔리전스(swarm intelligence)라는 말로 더욱 구체화했다. 메뚜기떼나 개미떼에게서 볼 수 있듯이 개별적으로는 무력하기 이를 데 없는 존재들이 무리를 지어 활동하면 무시무시한 힘을 드러내듯이, 인간도 정보혁명이라는 새로운 국면에서 집합적 지혜를 통해 놀라운 창조성을 보여준다고 진단한 것이다. 대중 지성이란 이렇게, 흩어져서는 특별한 지적 성과를 낼 수 없지만 모이면 거대한 창조적 활력을 일으켜 세우는 현상에 어울리는 이름이다. 다만 이때의 ‘모임’은 한 공간에 꽉 들어찬 집회의 형식이라기보다는 개별적 존재들이 거미줄처럼 연결된 네트워크 형태라고 보아야 한다. 인간의 지성 자체가 두뇌 속 수많은 신경들의 연결(링크)을 통해 작동한다. 신경 하나하나는 아무런 지성도 없지만 그것이 일시에 연결될 때 지성의 공간이 형성되는 것이다. 두뇌야말로 집합적 지성 혹은 대중 지성의 표본이다.

조정환 갈무리 출판사 주간은 네트워크로 작동하는 대중 지성의 한 모습으로 ‘플래시 몹’을 거론한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인터넷상에서 의기투합해 특정한 시간, 특정한 장소에 모여 반전·평화 구호를 외치며 퍼포먼스를 벌이는 것, 이것이 대중 지성의 발현이다. 인터넷에 기반한 운동의 대부분은 이 대중 지성의 작품이다.” 특정한 지도부가 없다는 것, 다시 말해 운동의 꼭대기, 전위를 따로 두지 않는다는 것도 대중 지성의 한 양상인데, 플래시 몹에서 그런 지성의 작동 방식을 엿볼 수 있다.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대중 지성 프로젝트’는 대중 지성의 가능성을 의식적으로 실험하고 실천하는 공부 모임이다. 1년을 4학기로 나눠 44주 동안 계속되는 이 프로젝트는 현재 30명 정도가 공부에 참여하고 있다. 철학, 동양고전강독, 문화·예술 세 강좌로 이루어진 이 커리큘럼은 이름만 보면 여는 대학 강의와 달라 보이지 않지만, 참여하는 사람이나 공부하는 방식에서 기존의 대학 강의와 뚜렷이 구분된다. 여기서는 공부에 뜻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대학생도 있고 회사원도 있고 제대병도 있다. 강의의 방식도 대학 아카데미즘과 차이가 있다. 선생에게서 학생에게로 지식이 일방통행하는 것이 아니라 선생과 학생이 같이 공부하고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것을 목표로 한다. 동양고전 강의에서는 <논어> 암송을 하고 있는데, 암송이라는 옛 방식을 따온 것도 이유가 있다. “지식이라는 게 단순이 머리로 들어가기만 해서는 안 되고 그것을 외움으로써 신체에 각인하고 삶에 녹아들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지식이 생체의 리듬을 타는 것 생체가 지식의 리듬을 타는 것이 진정한 지식 습득이라는 생각이다. 공부에 참가한 사람들은 매달 마지막 주에 한달 동안 공부한 것을 글로 쓴다. “글로 표현하지 않은 지식은 지식이 아니며,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면 아는 것이 아니다. 표현과 내용이 하나로 합쳐질 때 비로소 지식이 된다.”

‘집합적 지혜’의 힘

이런 독특한 방식의 공부를 통해 이들이 실현하고 실천하려는 것이 말하자면 대중 지성이다. 신체에 녹아들고 글로든 말로든 표현되고 그리고 그것들이 네트워크로 연결돼 집합적 지성으로 힘을 발휘하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목표인 셈이다. ‘대중 위에 군림하는 엘리트’라는 전통적 지식인의 정체성 대신에 ‘대중인 채로 지식인이고 지식인인 채로 대중인’ 새로운 대중 지식인의 정체성을 이들은 모색하고 있다. 대중 지성은 지식의 새로운 존재 형식이자 지식인의 새로운 삶의 양식이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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