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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라진 남북, 어디서부터 푸나

등록 2006-09-21 18:39수정 2006-09-22 13:35

지난 7월5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 ‘신혼 살림’에서 ‘별거’상태로 뒤바뀐 남북한 당국 사이가 여지껏 관계복원을 위한 돌파구를 좀체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부산 해운대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제19차 남북장관급회담이 예정보다 하루 일찍 끝난 7월13일 이종석(왼쪽) 통일부장관과 북쪽 대표인 권호웅 내각책임참사가 어색한 표정으로 헤어지고 있다. 부산/사진공동취재단
지난 7월5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 ‘신혼 살림’에서 ‘별거’상태로 뒤바뀐 남북한 당국 사이가 여지껏 관계복원을 위한 돌파구를 좀체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부산 해운대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제19차 남북장관급회담이 예정보다 하루 일찍 끝난 7월13일 이종석(왼쪽) 통일부장관과 북쪽 대표인 권호웅 내각책임참사가 어색한 표정으로 헤어지고 있다. 부산/사진공동취재단
6자회담 재개로 제방 무너뜨린다면 관계 급물살 타겠지만 성사 ‘산 넘어 산’
인도적 접근으로 제방 구멍뚫었지만 남쪽의 수해 지원에 북쪽 아직 무응답

안과 밖

우여곡절이 많은게 남북관계지만 잠시 지난 4월로 돌아가보면 한마디로 격세지감이다. 다만 바쁘던 통일부는 여전히 바쁘다. 국감자료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다.

4월21일부터 24일까지 평양에서 열렸던 제18차 남북장관급 회담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막을 내렸다. 비관적 전망을 무색케 했다. 회담 마지막 날인 24일, 북쪽 단장인 권호웅 내각책임참사는 고려호텔 현관 앞에서 평양 순안공항으로 떠나는 남쪽 대표단을 향해 활짝 웃는 표정을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남쪽 수석대표인 이종석 통일부 장관도, 장관 취임 이후 첫 ‘데뷔전’을 무사히 치렀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밝은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북 합의로 올해 남북관계는 뭔가 큰 게 있을 것처럼 보였다.

두 사람은 7월11일부터 13일까지 부산 해운대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제19차 남북장관급 회담에서 다시 만났다. 그러나 싸늘하게 기약도 없이 헤어졌다. 양쪽은 ‘쌀·비료 지원’과 ‘미사일’이라는 의제를 놓고 팽팽한 대결 끝에 결국 일정을 채우지 못한채 하루 앞당겨 종결회의를 했다. 13일 누리마루에서 호텔로 돌아오는 권호웅 내각책임 참사와 이종석 장관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남북 당국간의 사이를 ‘신혼 살림’에서 ‘별거’로 뒤바꿔 놓은 것은 7월5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였다. 민간 경협과 민간 교류는 끊어지지 않았지만 남북관계의 가장 큰 창구인 당국간 대화는 두달 넘게 이어지지 않고 있다. 물론 ‘가다 서다’하는 것이 남북관계이고, 10개월 넘게 남북관계가 냉각된 적도 있었기 때문에 지나치게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기는 이르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남북관계의 한 가운데 핵에 더해 ‘미사일’ 그리고 제재라는, 어느때보다도 복잡한 변수가 들어와 있다는 점이 해법 모색을 어렵게 만들게 하고 있다.

되돌아보면,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 남북관계에 대해 남북 당국이 선택한 전략은 서로 조응하기 힘든 거였다. 북쪽은 ‘남북 공조’와 ‘국제 공조’를 별개의 문제로 분리해 대처했다.

남북공조와 국제공조 사이 균열

단적인 예로,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미사일 발사 다음날인 7월6일 <중앙통신> 기자의 질문에 대한 대답 형식으로 내놓은 입장을 살펴보면, 미사일 발사가 대미·대일용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면서 남쪽 정부에 대해서는 전혀 비난하지 않고 있다. 미사일 발사로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들의 긴장지수가 점점 높아졌음에도 북쪽은 남북장관급 회담에 응했다. 물론 남쪽의 ‘인도주의적인’ 쌀과 비료 지원이 절실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남북관계에 대한 북쪽의 이런 입장은 2000년 정상회담 이후 거의 일관된 입장이었다.

그러나 북-미 관계의 긴장이 높아지는 속에서도 남북관계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기를 기대하는 북한의 이분법적 사고는 현실과 동떨어진 거였다. 당장 위탁가공 수준의 간헐적인 남북교역만이 있던 시절과 개성공단이 들어선 지금의 남북관계는 수준 자체가 다르다. 전략물자 수출입통제나 원산지 문제만 놓고 봐도 이미 개성공단의 여러 쟁점들은 ‘국제화’돼 있다. 게다가 남쪽에 미치는 영향을 놓고 봐도, 금강산 단체 관광객이 7,8월에 많이 줄어든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들이다. 현실과 인식의 괴리인 셈이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북쪽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북쪽이 요청한 쌀 50만t과·비료 10만t 지원을 유보하겠다고 밝혔다. 사실 김대중 정부 이후 대북 관계에서 쌀이나 비료 지원이 이산가족 문제나 회담 재개의 지렛대로 사용됐다는 것은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었다. 다만 정부가 북쪽의 입장 등을 고려해 한번도 공식적으로 인정한 적이 없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정부가 쌀과 비료를 지렛대로 사용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천명했을 뿐만 아니라, ‘미사일 문제의 출구가 마련될 때까지’라는 단서를 붙였다. 이러한 남쪽 정부의 선택은 ‘칼날의 양쪽’이라는 성격을 띠고 있다. 우선 ‘대미 카드’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때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에 대한 미국쪽의 중단 압력을 미리 차단했다는 점에서 일단은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대북 카드’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미사일 문제의 출구’라는 너무 엄격한 단서를 달면서 남북관계가 국제정세와 깊숙하게 연동되는 성격을 갖게 만들었다. 결국 최소한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위한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남북대화를 재개할 마땅할 명분을 찾기 어렵게 된 것이다. 또한 냉각기간이 장기화될수록 남북관계에서 ‘신뢰’의 위기를 초래하는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 정부에 내내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다리 구실을 할 인물 없어 답답

어찌됐든 ‘남북공조’와 ‘국제공조’에 대한 남북 당국의 서로 다른 인식과 전략적 판단은, 판과 판이 서로 부딪히는 것처럼 파열음을 초래할 수밖에 없었다. 북한은 남쪽 정부의 쌀·비료 지원에 대한 서운함의 표시로 7월19일 8·15 이산가족 화상상봉과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 건설중단을 남쪽에 통보했고, 이틀 뒤에는 남북경제협력협의사무소의 당국 인력을 철수시킨다고 알려왔다. 이후 북한은 금강산에서 열리는 행사 등에도 통일부 당국자의 출입을 막았다.

해법은 6자회담이라는 큰 판을 움직이는 방법과 막힌 데부터 뚫는 방법 등 두가지 차원에서 접근할 수밖에 없다.

우선 6자회담을 통해 남북관계를 뚫는 방법은 비유하자면 물꼬를 트기 위해 제방에 구멍을 뚫는 게 아니라, 제방 자체를 무너뜨리는 방법이다. 6자회담 재개 가능성이 비춰지면 남쪽은 그동안 미뤄왔던 쌀과 비료를 지원할 수 있게 되고, 남북관계도 급물살을 탈 수 있다.

그러나 6자회담 재개로 가는 길은 넘어야 할 산이 아직도 많다. 한-미 정상회담의 결과인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은 진행중인 사안이다. 게다가 먼저 물러나는 적이 없는 북한의 ‘벼랑끝 전술’과 악의적 무시 전략을 펼치며 ‘관리 모드’로 돌아선 미국의 대북 정책이 과연 접점을 찾을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인 전문가도 여전히 많다. 아직은 양쪽이 6자회담을 재개할 내부동력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막힌 데부터 뚫는 방법은 물길을 만들기 위해 제방에 구멍을 내는 것이다. 북한이 중단을 알려온 ‘이산가족 화상상봉’과 ‘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소 건설’의 재개, 경협사무소 복원을 알려오는 것이 일차적인 수순이라고 할 수 있다. 일단 남쪽은 대북 수해지원을 하면서 ‘순수하게 인도주의적 차원’이라고 강조하며 조그만 명분을 주었다. 이제 북쪽이 화답할 차례이지만 아직 북쪽의 반응은 없다.

물론 대북 수해 구호 물자 인도식을 갔다온 관계자들은 “북한의 관리들이 수해 지원에 고마워한다”면서 “9월말쯤에는 우리(북쪽)도 화상상봉이나 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소 공사 재개 등의 조처를 취하지 않겠냐”는 말들을 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남쪽과 만나는 북쪽의 대남 일꾼들이 ‘의사 결정권’을 가진 것은 아니어서 북한 지도부에 어느 정도 이런 여론이 반영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실제 최근 북한을 다녀온 민간단체의 한 관계자는 “핵실험설 등이 나오면서 살얼음판을 겪는 기분”이라며 “남북관계 일꾼들이야 당연히 일하기 힘드니까 복원을 원하고 있는데 희망 사항을 얘기한 것 아니겠냐”고 말하기도 했다.

여론 재촉할수록 협상력 떨어져

남북관계를 총괄하던 림동옥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통일전선부장이 지난달 20일 사망하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남쪽간에 가교 역할을 할 북쪽의 인물이 없다는 점도 실무적 어려움을 더해주고 있다. 김 위원장과 당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지난해 ‘6·17 면담’ 때 림동옥 부장이 한 가운데 있었다. 돌이켜 보면 올 4월 이종석 장관이 평양 장관급 회담에 갔을 때 “림 부장이 지방에 가 있어 만나기 곤란하다”고 북쪽 관계자들이 말한 것을 보면 림 부장은 올해 초부터 남북관계 일선에서 떠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북한에 특사를 파견하라는 일부 정치권의 주장에 대해 “여건이 안된다”고 정부가 얘기하는 배경에는 이런 판단도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드러내지는 않지만 수면 아래서 북쪽과 다양한 접촉 방법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여론이 급하게 재촉할수록 정책을 입안하는 정부의 입지는 좁아지고 대북 협상력은 떨어진다. 그러나 시간은 정부의 편이 아니라는 점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용인 기자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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