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숙 작가가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 속 명장면을 선정했다. <더 글로리>는 학교폭력(학폭) 피해자가 평생에 걸쳐 가해자에 복수한다는 내용. “피해자의 원점(영광과 명예를 되찾는 것)을 응원해 달라”는 작가는 극의 메시지를 잘 담은 장면을 주로 뽑았다. 배우들의 연기력이 빛난 장면도 빼놓지 않았다. 김은숙 작가는 “명대사를 뽑으면 한도 끝도 없어서 장면을 택했다”면서 문동은(송혜교)의 명대사를 빌어 작품을 사랑해준 시청자한테 감사 인사를 전했다. “대한민국, 전 세계 시청자 여러분~ 저 지금 너무 신나요!” 다음은 작가가 드라마 홍보팀을 통해 전 언론에 보내온 장면 여섯 가지. 장면마다 <한겨레>가 설명을 보탰다.
16화 동은과 여정의 마지막 장면
“동은을 핑계로 살고 싶은 여정과 여정을 핑계로 살고 싶은 동은의 “사랑해요”는 ‘살고 싶어요’의 다른 표현입니다.”
이번엔 동은이 여정의 ‘망나니’가 되어 그의 복수를 도우려고 함께 교도소(여정의 일터)에 들어간다. 입구에서 두 사람은 하늘을 한번 본 뒤 서로를 향해 “사랑한다”고 말한다. 많은 시청자들이 작가의 의도를 궁금해했던 장면. 그렇다면 동은과 여정은 이제 오랫동안 행복할 수 있을까? “여정과 동은의 행보는 결국 복수와 파멸이 맞습니다. 복수의 과정에서 이미 그들도 가해자가 되고 그래서 그렇게 또 다른 지옥인 교도소를 향해 가는 것 말고는 살아갈 방법을 모르는 두 사람인 거죠. 하지만 여정과 동은은 둘이 함께니까 천국을 향해 가듯 지옥을 향해 갑니다. 참으로 미친 사랑입니다.”
13화 여정과 도영이 바둑 두는 장면
“여정이 피해자들의 ‘원점’을 얘기한 게 좋았어요. 그 대사가 <더 글로리>의 주제이기도 하고, 여정의 입을 통해 전달하고 싶었는데 이도현씨는 숨소리까지 너무나 완벽하게 전달해 주셨습니다.”
도영은 여정이 동은의 복수를 돕는 사람인 걸 알게 된 뒤 묻는다. 말려야 하는 것 아니냐고. 이때 여정의 대답이 드라마의 메시지이자, 작가가 말한 ‘원점’이다. “피해자들이 잃어버린 것 중에 되찾을 수 있는 게 몇 개나 된다고 생각하세요. 나의 영광과 명예 오직 그것뿐이죠. 누군가는 그걸 용서로 되찾고 누군가는 복수로 되찾는 거죠. 그걸 찾아야만 비로소 원점이고 그제야 동은 후배의 열아홉 살이 시작되는 거니까요. 저는 동은 후배의 그 원점을 응원하는 겁니다. 그 사람은 그저 지금보다 조금 덜 불행해지려는 것뿐이거든요.”
16화 경찰서에서 마주한 형사와 동은
“형사의 대사. ‘네 들어야죠. 18년이나 늦었지만’은 명대사. 형사와 동은의 연기가 너무 좋아서 (내용을) 다 알고 보면서도 눈물이 났습니다.”
이 장면에서 형사의 모든 대사는 피해자한테 귀 기울이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을 투영한 것 같다. “그동안 제 얘기 들어줘서 감사했다”는 동은한테 형사는 의외의 답변으로 그의 눈을 뜨겁게 만든다. “네 들어야죠. 18년이나 늦었지만.” 이어 형사는 동은의 행동을 모른 척해주며 늦게나마 그에게 마음을 보낸다. “조사는 여기까지”라고. “일이 바빠서 다른 건 뭐 신경도 못 쓰지 싶다”고. 무관심 혹은 방관자였던 우리 모두의 참회 장면이 아닐까.
14화 연진과 신 서장의 장례장 장면
“됐고요!!! 수습하실 거죠!!!”하는 연진의 연기에 입이 벌어졌어요!”
많은 시청자들이 임지연의 연기가 빛났다고 꼽는 장면 중 하나다. 명오의 주검이 사라지고 궁지에 몰리자 악을 쓰다 신 서장한테 버럭하는 순간이다. 직전까지 신 서장한테 되레 밀리는 중이었는데 이젠 전세 역전됐다, 어쩔래? 같은 느낌도 함께 묻어난다.
16화 어린 동은과 빌라 주인의 과거
“주인 할머니의 ‘봄에 죽자, 봄에’는 명대사. 손숙 선생님께서 대사를 뱉자마자 어린 동은과 같은 타이밍으로 오열했어요.”
사람이 사람한테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가를 보여주는 장면. 어린 동은이 물에 빠져 죽으려다가 자신보다 먼저 들어간 할머니를 발견하고 구해낸다. 물이 차니까 봄에 죽자는 할머니의 말이 “열심히 살아라”는 말보다 더 살고 싶게 만든다. 김은숙 작가가 같은 상황도 어떻게 다르게 쓰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작가는 힘들었을 동은한테 하고 싶은 이야기도 전했다. “사랑하는 동은아. 많이 아팠을 거야. 많이 울었을 거야. 더 많이 죽고 싶었을 거야. 그런데도 뚜벅뚜벅 여기까지 와줘서 너무 고마워. 힘들었겠지만 네가 걸어온 그 모든 길이 누군가에겐 ‘지도’가 되었단 걸 알았으면 좋겠어. 그러니까 어느 봄에는 꼭… 활짝 피어나길 바라 동은아.”
15화 소희가 빙의되는 굿판
“모든 상황이 좋았어요. 벌전(신이 벌을 내린 것)을 내리는 소희의 존재를 기댈 대사 한 줄도 없이 그대로 느끼는 동은의 연기가 압권이었습니다.”
작가는 <더 글로리>의 관전 포인트도 알려왔다. “아껴 보셔도 되고 한꺼번에 보셔도 되고 아주 먼 후일에 보셔도 됩니다. 하지만 마지막 회까지 꼭 봐주세요. 그리고 피해자분들의 ‘원점’을 꼭 응원해주세요!”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