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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현장] 수화기 너머 뉴진스의 노래가…10대는 재미, 30대는 향수

등록 2022-09-03 07:00수정 2022-09-03 14:58

‘제대로 뉴트로’ 뉴진스 팝업 가보니
아이돌 ‘체험 마케팅’ 접목 팝업 눈길
“공중전화 노랫소리, CDP, 동네 문방구…”
뉴진스, Y2K 뉴트로 소품과 ‘체험존’ 운영
블랙핑크, ‘핑크베놈’ 뮤비 배경 체험
뉴진스 팝업스토어에는 스티커를 활용해 꾸며놓은 휴대용 시디플레이어와 줄이 있는 이어폰이 곳곳에 놓여 있었다.
뉴진스 팝업스토어에는 스티커를 활용해 꾸며놓은 휴대용 시디플레이어와 줄이 있는 이어폰이 곳곳에 놓여 있었다.

“아, 얘네가 걔네구나.” “‘뉴진스’ 맞지?”

지난달 31일 서울 여의도동 더현대서울 지하 2층은 오전 10시30분 영업이 개시되자마자 방문객으로 북적였습니다. 데뷔하자마자 인기몰이 중인 아이돌 그룹 ‘뉴진스’의 오프라인 팝업스토어 역시 손님맞이에 분주했는데요. 뉴진스는 지난 7월 하이브 산하 레이블 어도어에서 선보인 아이돌 그룹입니다. 멤버는 민지(18), 하니(18), 다니엘(17), 해린(16), 혜인(14)으로 5명이죠.

입장 시작 시간에 맞추려고 발걸음을 서둘렀는데요. 뉴진스의 높은 인기만큼, 팝업스토어를 찾는 사람도 많아서 ‘입장 예약 대기번호가 1000번대까지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오전 10시37분께 예약 대기 줄에 섰을 때, 제 앞에는 7명가량이 서 있었는데요. 자동예약시스템에 휴대전화번호를 입력하니, ‘대기번호 228번’이 메시지로 도착했습니다.
대기번호 228번.(왼쪽) 123분을 기다려 오후 12시45분에 입장 가능 메시지가 왔다.
대기번호 228번.(왼쪽) 123분을 기다려 오후 12시45분에 입장 가능 메시지가 왔다.

그래도 휴대전화를 통해 실시간으로 대기번호가 줄어드는 걸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저는 예약 등록 123분만인, 오후 12시45분께 입장 가능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이날 영업 종료 4시간을 앞두고 입장 예약 자체가 마감됐다고 합니다.
지난달 31일 더현대서울 지하 2층 뉴진스 팝업스토어 가벽에서 사진 촬영을 하는 방문객의 모습
지난달 31일 더현대서울 지하 2층 뉴진스 팝업스토어 가벽에서 사진 촬영을 하는 방문객의 모습

약 100㎡(30평) 규모인 팝업스토어 내부는, 뉴진스의 데뷔 미니앨범(EP) <뉴진스>의 콘셉트를 고스란히 반영한 형태로 디자인되어 있었습니다. 앨범 표지와 같은 파란색을 기본으로, 뉴진스와 어도어의 다양한 굿즈(아이돌, 드라마, 특정 브랜드 등과 관련한 기획 상품)와 체험형 콘텐츠가 전시돼 있었습니다. 방문객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 연인 등을 포함해 다양한 세대와 성별을 아우르고 있었습니다.

뉴진스의 데뷔 미니앨범 콘셉트는 10대 당사자 정체성, 즉 ‘하이틴’인데요. 특히 2020년부터 엠지(MZ)세대에 인기를 끌고 있는 ‘와이투케이’(Y2K, 2000년의 줄임말로 1990년대말부터 2000년대초까지의 유행 문화를 의미) 바람을 대놓고 활용해 눈에 띄었습니다. 옛것인 듯 옛것 아닌 새것을 표현하는 ‘뉴트로’(새로움을 뜻하는 ‘뉴’와 복고풍을 의미하는 ‘레트로’를 합한 신조어)의 선두주자로 떠오른 거죠.

팝업스토어에도 휴대용 시디(CD)플레이어 같은 레트로풍 소품이 판매용 굿즈 사이사이에 배치돼 있었습니다. 미니앨범 가운데 일부는 아예 시디플레이어 모양의 가방 ‘뉴진스 백’을 함께 판매하는 형태로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미니포스터와 사진 등은 뉴진스 뮤직비디오에도 등장한 ‘필름 카메라’로 찍은 느낌이 났다. Y2K 시절, 동네 문방구에서 연예인 사진을 샀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미니포스터와 사진 등은 뉴진스 뮤직비디오에도 등장한 ‘필름 카메라’로 찍은 느낌이 났다. Y2K 시절, 동네 문방구에서 연예인 사진을 샀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데뷔 미니앨범은 ‘블루북’을 구성품으로 제공한다. 블루북은 1990년대 중후반 동네 문방구에서 팔던 연예인 잡지와 닮은 꼴이다(왼쪽). 미니앨범 시디는 플로피 디스크를 흉내 낸 포장지에 들어있다.
데뷔 미니앨범은 ‘블루북’을 구성품으로 제공한다. 블루북은 1990년대 중후반 동네 문방구에서 팔던 연예인 잡지와 닮은 꼴이다(왼쪽). 미니앨범 시디는 플로피 디스크를 흉내 낸 포장지에 들어있다.

상품만 사는 거면, 온라인 쇼핑이 더 간편할 수 있는데요. 아이돌 굿즈를 판매하는 팝업스토어 자체는 이미 10여년 전부터 성행하기도 했고요. 뉴진스 팝업스토어는 오프라인에서만 경험해볼 수 있는 ‘체험존’을 마련한 것이 달랐습니다. 바로 스토어 기둥 8곳에 1대씩 설치된 수화기들입니다.

길거리나 학교 복도, 군부대 등에 설치된 공중전화를 기억하는 세대가 있죠. 뉴진스 팝업스토어에 설치된 수화기를 집어서 귀에 대면, 데뷔 앨범 수록곡 ‘허트’의 멤버별 솔로 버전 음원 등을 들을 수 있습니다. 휴대폰이나 이어폰이 아닌,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노랫소리는 색다른 느낌인데요. 저는 중학교 시절 음성사서함에 남겨진 친구 목소리를 들으려고 공중전화 대기 줄에 섰던 과거 기억이 떠올라 향수에 잠겼습니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심지현(13)·박소희(13)씨에게 팝업스토어에서 가장 좋았던 것을 물었더니, 두 사람 모두 “전화기로 노래 듣는 것”을 꼽았습니다. 2010년생이라는 두 사람이 전화 수화기를 직접 보거나 사용해본 경험이 있을까요? 한 사람은 “길에서 얼핏 본 적은 있지만, 사용해본 적은 없다”고 했고, 다른 한 사람은 “본 기억조차 없다”고 말했습니다. 두 사람은 그래서 수화기 체험 자체가 흥미로웠답니다. “저희는 디지털 음원으로 노래를 들은 경험밖에 없어요. 노래가 전화기에서 흘러나오는 게 레트로한 느낌이 들어서 신기하고 재미있었어요. 음질 자체가 다르잖아요.” 지현씨는 “이런 오프라인 행사는 집 밖으로 나가서 놀 거리, 체험거리를 제공해서 좋다”고 덧붙였습니다.

팝업스토어 기둥에 배치된 수화기의 모습
팝업스토어 기둥에 배치된 수화기의 모습

수화기를 귀에 대면 뉴진스의 노래가 흘러 나온다.
수화기를 귀에 대면 뉴진스의 노래가 흘러 나온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체험존’을 운영하는 건 유통업계에서 ‘경험(체험) 마케팅’으로 이름 붙인 전략이기도 합니다. 엠지(MZ) 세대는 직접 체험하고 느낄 수 있는 제품이나 활동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공유하며 입소문을 내는 특성이 있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체험에 진심인’ 세대를 위해 마련된 마케팅 전략인 거죠.

아이돌 팝업스토어도 단순히 굿즈 판매 수익을 위해서라기보다, 팬들에게 색다른 경험, 즉 ‘한정판 체험’을 제공하며 아이돌의 콘셉트를 한층 친밀하게 느끼도록 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듯했습니다. 현장에서 만난 배수연(25)씨는 “(뉴진스가) 다른 아이돌 그룹과 달리 그 나이 또래에게 맞는 스타일링 등 청량한 느낌을 줘서 좋아졌다. 전에는 아이돌 오프라인 팝업스토어를 방문한 경험이 없어서 막상 오면 후회할까 봐 고민을 많이 했는데, 와보니 내부 디자인도 레트로로 잘 꾸며놔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수화기나 사진 체험도 좋았다”고 말했습니다.

굿즈를 7만원 어치 이상 구매한 방문객은 ‘뉴진스 포토매틱’에서 사진 촬영을 할 수 있다.
굿즈를 7만원 어치 이상 구매한 방문객은 ‘뉴진스 포토매틱’에서 사진 촬영을 할 수 있다.

‘뉴진스 포토매틱’은 멤버들과 같은 공간에서 사진을 찍은 것 같은 프레임을 제공한다. 현장에서 만난 방문객이 공개해준 사진.
‘뉴진스 포토매틱’은 멤버들과 같은 공간에서 사진을 찍은 것 같은 프레임을 제공한다. 현장에서 만난 방문객이 공개해준 사진.

팝업스토어를 신선한 공간으로 바꿔놓은 시도는 또 있습니다. 뉴진스의 팝업스토어가 마련된 더현대서울 5층 ‘사운즈 포레스트’ 공간에서는 블랙핑크의 컴백 기념 ‘핑크베놈’ 콘셉트 팝업도 함께 열렸는데요. 이 팝업은 별다른 굿즈 판매 없이 아예 ‘핑크베놈’ 뮤직비디오 배경 일부만 현실로 재현해 전시했습니다. 팬들은 뮤직비디오 속 공간과 비슷한 배경에서 사진을 남길 수 있는 거죠.

팝업스토어라고 하면 상업적인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기도 하잖아요. 주변에서 한 번쯤은 “다 상술”이라는 소리를 들은 적도 있을 테고요. 블랙핑크의 팝업은 이런 선입견을 깨주는 데 도움을 줄 듯도 했습니다. ‘팝업 한정판’ 앨범 예약 구매를 독려하는 모습이 눈에 띄기도 했지만, 신곡 콘셉트를 공들여 재현한 마음이 느껴지는 공간이기도 했거든요. 예약해야만 둘러볼 수 있는 뉴진스의 팝업스토어와 달리, 백화점 방문객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개방된 공간에 마련됐다는 점도 달랐습니다.

이러한 팝업은 백화점과 연예기획사 양쪽의 이해관계가 맞아서 가능한 것으로 보이기도 했습니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한겨레>에 “더현대서울의 타깃층이 엠지(MZ)세대라서, 이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콘텐츠 행사를 유치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한겨레>에 “코로나로 오프라인 팬미팅이 어려워지면서, 팝업의 취지가 수익보다는 팬들에게 더 다양한 오프라인 경험을 제공하려는 목적으로 진행됐다”고 말했고요.

더현대서울에 마련된 블랙핑크 ‘핑크베놈’ 팝업의 모습.
더현대서울에 마련된 블랙핑크 ‘핑크베놈’ 팝업의 모습.

블랙핑크 ‘핑크베놈’ 팝업의 모습. ‘핑크베놈’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소품을 비슷하게 재현했다.
블랙핑크 ‘핑크베놈’ 팝업의 모습. ‘핑크베놈’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소품을 비슷하게 재현했다.

어도어 쪽도 ‘팝업스토어를 만든 계기와 기대 효과는 무엇이었나’는 <한겨레>의 질문에 “뉴진스의 브랜딩과 정체성을 오프라인에서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자는 기획이었다”며 “(팝업스토어의 체험존에서) 10~20대는 겪어보지 못한 아날로그 방식의 ‘진심’을 체험하고, 30대 이상은 과거의 향수를 떠올렸을 거다. 이를 통해 모든 세대가 부담 없이 캐주얼하게 뉴진스를 접하고 이해할 수 있는 계기로 삼고 싶었다”고 답했습니다.

지난달 12일부터 31일까지 20일 동안 마련된 뉴진스 팝업스토어에는 총 1만7천여명의 방문객이 찾았다고 합니다. 뉴진스는 지난달 28일 <에스비에스 인기가요>를 끝으로 데뷔 앨범 <뉴진스> 활동을 마쳤는데요. 타이틀곡 ‘어텐션’의 뜻처럼 큰 ‘주목’을 받은 데뷔를 했다는 사실을, 오프라인 팝업스토어에서도 강렬하게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어도어 쪽은 “많은 분들이 찾아와 주시고 즐겨 주셔서 감사하다. 앞으로 더 신선하고 재미있는 콘텐츠를 선보일 수 있겠다는 용기를 얻었다”는 답을 보내왔습니다.

글·사진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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