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우영우 변호사 역할을 맡은 박은빈. 나무엑터스 제공
※기사 본문에 드라마 1, 4, 7, 8회 내용이 일부 포함돼 있습니다.
질문 하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엔에이·ENA)는 ‘원작’이 있을까?
드라마 원작은 없지만, 에피소드 원작은 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에는 원작 소설이나 웹툰이 존재하지 않는다. 작가의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가상의 이야기다. 다만 ‘에피소드 원작’이 존재한다.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지닌 주인공 우영우(박은빈)가 법무 법인 ‘한바다’에 신입 변호사로 입사하며 벌어지는 일을 다루는데, 우영우가 변호를 맡은 사건 다수가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제작진은 실제 사건을 맡은 변호사들이 낸 책들을 ‘에피소드 원작’으로 삼고, 각 변호사·출판사와 저작권 이용허락 계약을 맺었다.
<우영우>의 엔딩크레딧(제작진을 소개하는 자막)에 ‘에피소드 원작’으로 이름을 올린 책은 모두 3권. 신민영 변호사의 <왜 나는 그들을 변호하는가>(한겨레출판, 2016, 1·3·6·10회), 조우성 변호사의 <한 개의 기쁨이 천 개의 슬픔을 이긴다>(서삼독, 2022, 4·11·13·14회), 신주영 변호사의 <법정의 고수>(솔출판사, 2020, 7·8회)이다.
<한겨레>는 에피소드 원작자인 3명의 변호사와 전화로 드라마 안팎의 이야기를 나눴다. 에피소드 원작들은 법정물로서의 <우영우>에 현실감을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재판의 승패 결과를 떠나 ‘과정’과 ‘사람’에 집중하는 <우영우> 세계관과 이어져 있다.
“저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지고 있어 여러분이 보시기에 말이 어눌하고 행동이 어색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법을 사랑하고 피고인을 존중하는 마음만은 여느 변호사와 다르지 않습니다.” 우영우가 변호사로서 처음 법정에 선 1회에 나온 대사다.
‘법을 사랑하고 피고인을 존중하는 마음’은 에피소드 원작자 3명의 책에서도 공통적으로 드러난다. 1회는 70대 여성 노인이 남편의 머리를 철제 다리미로 때려서 살인미수 혐의로 재판을 받는 사건을 다뤘다.
우영우는 형사재판 속에 숨겨진 쟁점인 민법상 상속 문제를 찾아내서 선배 정명석(강기영) 변호사에게 업무수행능력을 인정받는다. 정명석은 우영우가 아무리 로스쿨을 수석 졸업한 천재라고 해도 의뢰인과 제대로 소통할 수 있을지 의심하는데, 우영우는 사건 자료가 아닌 피고인과의 대화 과정에서 피고인조차 놓치고 있던 생계 문제를 짚어냈기 때문이다.
이 에피소드는 신민영 변호사가 국선전담변호사일 때 맡은 사건들을 형사재판의 여러 논점과 연결해서 쓴 <왜 나는 그들을 변호하는가>에 바탕을 뒀다. 피해자 남편의 직업, 사건의 세부 정황과 도구 등은 각색됐지만, 변호인이 피고인 당사자조차 놓치고 있던 ‘숨은 쟁점’을 찾아낸 건 실제와 같다.
신 변호사는 “변호사 일을 하다보면 누구의 입장이 되어보느냐에 따라 사안이 다르게 보인다. 공감 능력이 필수다. 우영우의 공감력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로 잘 각색된 것 같다”고 말했다.
신주영 변호사도 “책 제목이 된 ‘법정의 고수’는 재판에서 승소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주어진 일을 열정적으로 처리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무언가를 해내는 사람들을 말한 것”이라며, “기존의 법정 드라마가 누가 이기고 지는 승패 위주로, 특히 법정에서 악당을 이기는 카타르시스를 묘사하는 게 많았다면, <우영우>는 사람에 더 집중하는 면이 보인다”고 말했다.
<왜 나는 그들을 변호하는가>의 저자 신민영 변호사(법무법인 호암). 한겨레출판 제공
드라마에서는 우영우가 재판에서 이길 수 있는 변호 논리를 번뜩 떠올릴 때마다 바다 위로 뛰어오르는 고래의 모습이 삽입된다. 실제 변호사들도 어려운 재판을 헤쳐갈 주요 논거를 찾아냈을 때 ‘쾌감’을 느낀다. 드라마와 에피소드 원작들은 변호사들에게 창의력과 상상력이 요구된다는 점을 유쾌하게 보여준다.
예컨대 우영우의 ‘묘수’가 돋보인 4회 ‘삼형제의 난’편은 조우성 변호사의 <한 개의 기쁨이 천 개의 슬픔을 이긴다>에 바탕을 뒀다. 드라마에서 동동일, 동이, 동삼 삼형제의 아버지는 2001년 세상을 떠나기 전 강화도 땅 5천여평의 명의를 막내로 바꿨다. 나중에 그 땅이 개발지역으로 묶이면서 토지보상금이 100억원가량으로 책정됐다.
막내는 보상금을 형들과 골고루 나누려고 했지만, 형들이 내민 각서에 어쩔 수 없이 서명을 하고 만다. 각서는 보상금을 장남 5할, 차남 3할, 막내 2할로 나누는데, 모든 비용과 세금을 막내가 부담하도록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보상금은커녕 빚만 생긴다는 걸 알게 된 동동삼의 딸 동그라미(주현영)는 친구 우영우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조우성 변호사를 찾아온 실제 사건의 의뢰인은 삼남의 아들이었다. 의뢰인이 이미 서명해버린 문서의 효력을 없애는 일은 매우 어렵다. 조 변호사는 며칠을 끙끙대다가 마침내 무릎을 쳤다. 바로 ‘그 방법’을 떠올렸기 때문. “아버님이나 아드님이 큰아버님들에게 몇 대 맞으시면 되긴 하는데….”
조 변호사의 책은 실제 사건 기반이지만 극적인 서술 방식을 활용해서 가상의 이야기를 덧붙인 부분도 존재한다. 조 변호사는 “책에는 삼남 부자가 실제 그 방법을 쓴 것으로 썼고, 드라마도 이러한 설정을 비슷하게 썼지만 실제는 그 방법을 쓰지 않았다. 끈질긴 설득과 협상으로 해결했다”고 말했다.
조 변호사가 의뢰인에게 ‘묘안’으로 “몇 대 맞을 것”을 제시한 건 사실이다. 조 변호사는 “변호사는 때로는 승패를 떠나 전체적인 구도에서 가장 바람직한 결론에 이르도록 판을 짜는 일도 해야 한다”고 말한다. 드라마에서도 현실에서도 각서는 무효가 되고, 삼형제가 보상금을 골고루 나눠 가졌다.
<한 개의 기쁨이 천 개의 슬픔을 이긴다>의 저자 조우성 변호사(법률사무소 머스트노우). 조우성 변호사 제공
<우영우>는 주인공은 물론, 주변 사람들이 함께 변화하는 성장 드라마이기도 하다. 에피소드 원작자인 3명의 변호사 책에도 이러한 배움과 성찰의 기록이 가득하다. 특히 신주영 변호사가 10년차를 맞아 법정 경험담을 모아서 출간한 <법정의 고수>는, 신입 변호사가 의뢰인들이나 법조계 동료들로부터 열정적으로 배우고 성장하는 과정이 생생하게 기록돼 있다.
지난 20~21일 총 2회분으로 방송된 ‘소덕동 이야기’편은 신 변호사가 2009년 맡았던 제2자유로 도로구역 결정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 기반을 뒀다. 신 변호사는 마을을 두 동강 내는 자동차전용도로 건설을 막고자 했던 주민들의 소송대리인을 맡았다.
<법정의 고수>는 약 300쪽짜리 책인데, 해당 소송을 다룬 내용이 100쪽에 가까운 분량을 차지한다. 드라마에서 생략, 압축된 내용이 이 책에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게 서술돼 있다. 실제 사건은 공사를 잠시 중단하는 도로구역 결정처분 효력정지 가처분 승인을 받긴 했지만, 본안소송에서 패소했다.
결과는 졌지만, 주민 대표는 신 변호사에게 “저희는 후회 안 한다. 결과는 이렇지만 재판하면서 우리는 많은 위로를 받았다. 그동안 당했던 설움을 다 보상받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주민들이 정부를 상대로 싸우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 같은 사건에서, 기꺼이 ‘계란 편’에 서서 약자가 이기는 선례를 만들고자 애쓴 신 변호사의 열정과 몰입을 주민들도 인정한 것이다.
드라마에서 소덕동 이장은 “그… 뭐더라?”는 말을 반복하며, 단어를 잘 떠올리지 못한다. 신 변호사는 주민들의 언어를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했다. 신 변호사는 “주민들의 말은 일상에서 쓰는 쉬운 말이었지만, 법적으로도 일리가 있었다. 주민들이 정확한 말을 하는 이유는 진심이 담겨있기 때문”이라며, “그 진심에 감명받아서 그 사건에 매우 몰입했었다”고 말했다.
<우영우> 7회 본방송이 진행되는 중간에 일부 시청자는 “유물이 발견되길”이라는 글을 온라인에 올리기도 했는데, 실제 재판이 패소로 끝난 지 10년 뒤인 2018년에 제2자유로 일부 구간에서 4만 년 이상 된 것으로 추정되는 구석기 유물 8천여점이 쏟아져 공사가 중단되는 일이 있었다.
<법정의 고수>의 저자 신주영 변호사(법무법인 대화). 솔출판사 제공
에피소드 원작 변호사들 모두 <우영우>를 챙겨본다. “에피소드 원작이 드라마로 어떻게 각색됐는지 비교해서 보는 재미”가 있다고 했다. 이들은 또한 “법정 드라마로서도 꽤 볼 만하다. 작가가 공부를 진지하게 많이 한 게 티가 난다”고 입을 모았다. 조우성 변호사는 “과거에는 드라마 제작진이 자문을 구해올 때 줄거리를 다 만든 상태에서 연락을 해와서 법적으로 틀린 부분을 제거해주는 정도만 할 수 있었는데, <우영우>는 아예 변호사들의 글에서 각색을 하니 현실감이 더 살아있다”고 말했다.
전문가가 봤을 때 반감이 들 수 있는 ‘구멍’이 줄어드니, 이들 변호사들도 드라마를 드라마로서 한층 더 즐길 수 있게 됐다. 신민영 변호사는 “신파나 정의감에 많이 기대는 기존 법정물과 달리, <우영우>는 변호사다운 논리, 현실에 맞는 구체적 근거를 제시하니 더 흥미진진하다”고 평가했다. 신주영 변호사도 “<우영우>는 시청자들이 법정에서 누가 이기고 지는지를 보기 이전에 전체 맥락에서 무엇이 정의인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질문을 던진다”고 말했다.
김효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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