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 29살 악극단 데뷔부터
지난 5월 95살 마지막 행사까지
사진과 어록으로 돌아보는 송해의 예술 인생
지난 5월 95살 마지막 행사까지
사진과 어록으로 돌아보는 송해의 예술 인생
송해의 <전국노래자랑> 마지막 진행 모습. 한국방송 제공
■ 1970년 <노래잔치>
KTV 유튜브 프로그램 갈무리
■ 1971년 - 봄놀이 홍보 영상 “가끔 소풍 길에 아름답지 못한 사람이 있어 이맛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가 있다”
한국방송 유튜브 화면 갈무리
■ 1975년 - <쇼쇼쇼>
한국방송 유튜브 화면 갈무리
■ 1978년 모기약 광고
오비에스 제공
■ 1978년 <고전 유머극장>
한국방송 유튜브 화면 갈무리
■ 1987년 - <가로수를 누비며>
한국방송 유튜브 화면 갈무리
■ 1988년- <전국노래자랑> 1회 <전국노래자랑>은 1971년 <케이비에스배 쟁탈 전국노래자랑>이 전신이다. 1980년부터 이름을 <전국노래자랑>으로 바꿨고, 프로그램 성격도 가수를 뽑는 경연에서 지금의 지역 잔치 같은 성격이 강해졌다. 송해는 최선규 아나운서, 가수 위키리, 방송인 이상용 등에 이어 1988년 5월부터 <전국 노래자랑> 진행을 맡아 34년간 ‘일요일의 남자’로 살았다. “한 3년간은 감을 잡으려고 노력했다”는데 푸근한 인상과 구수한 입담으로 빠르게 ‘송해의 프로그램’으로 만들었다.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처럼 느껴질 정도”(김희선)로 정겨운 것이 비결 중 하나. 그가 이 프로그램에 녹아들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친근함을 더한다. 그는 평소에 “<전국노래자랑>은 내가 평생 배워야 할 교과서처럼 느껴진다. 누가 잘하고 못 하고 꼭 재밌어야 하는 것보다 그저 우리 생활이 묻어나는 곳 같다”고 말했다. 우리 생활, 서민 내음을 고스란히 담아내려고 그는 녹화 전날 촬영지에 내려가 목욕탕이나 식당에서 주민들과 어울리며 미리 정을 쌓았다. 촬영지 관련 책을 읽고 맛집부터 특산품까지 정보를 파악해두는 건 기본이었다. 그가 34년간 단 6개월을 제외하고 자리를 지키며 지구 10바퀴가 넘는 거리를 누비며 전국에서 1천만명을 만나 “사람을 많이 아는 부자”가 된 이유이기도 하다. 그때부터 시작된 일요일의 알람은 34년간 계속됐다. “전구욱~ 노래자랑~~”
1988년 첫 진행. 한국방송 유튜브 화면 갈무리
■ 2001년 <전국노래자랑>
2001년. 한국방송 제공
■ 2003년- 보관문화훈장 수상 소감 “나는 딴따라다. 영원히 딴따라의 길을 가겠다.”
2005년 일본편. 한국방송 제공
■ 2006년 - 곡 ‘나팔꽃 인생’ 발표 간담회 성악 공부를 한 그는 지금껏 음반 12장을 발매하고 2011년에 전국 순회 첫 단독 콘서트도 열었다. 노래방에 가면 혼자서 40~50분을 다 채울 수 있을 정도로 즐겨 부르는 노래도 많았다고 한다. 1942년 나온 ‘고향설’ 등등. 올해 1월 <한국방송>이 설특집으로 방송한 트로트 뮤지컬 <여러분 고맙습니다 송해>에서 후배들과 함께 ‘내 인생 딩동댕’을 부르는 장면이 뜻깊었다는 반응이 많았다. 그는 영화 <신세 좀 지자고요> 등에 출연하는 등 연기도 꽤 했다. 배우 이순재는 그를 “다재다능한 예술인”이라고 표현했다. “나팔꽃은 아침에 환하게 피었다 오후에 지고 다음 날 다시 밝게 피는, 제 인생과 비슷한 꽃입니다” _______
■ 2009년 <기분 좋은 날> “오토바이를 좋아하던 아들이 나 몰래 엄마를 졸라 오토바이를 샀어요. 한남대교를 지나다 빗길에 엎어지는 사고를 당했어요. 얼굴도 제대로 못 본 채 아들이 수술실에 들어갔어요. 그게 아들의 마지막이었어요. 뒤늦게 전해 들으니 아들이 수술실에 들어가며 한 마지막 말이 ‘아버지, 살려줘'였다고 해요. 아들을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에 낭떠러지로 가 뛰어내렸지만 하늘이 아들이 도왔는지 소나무에 걸렸어요. 여전히 아들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은 지울 수 없지만 아내와 다른 가족들 생각에 힘든 시기를 버텨냈어요. 하지만 아직도 마음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어요.”
2009년. 프로그램 갈무리
■ 2009년 <전국노래자랑> 중국 선양편 “한국에 나와서 일하는 조선족 동포들의 아픔을 쓰다듬어 주는 기회가 될 것이다.”
2009년. 한국방송 제공
■ 2010년 고 배삼룡 영결식 “형님이 왜 바보냐. 저 뒤를 돌아봐라. 똑똑하고 영특한 후배들이 아픔을 달래고 있다…천국에서 웃겨달라” _______
■ 2010년 <전국노래자랑> 30돌 간담회 “기회도 중요하고 운도 중요하지만 노력이 중요하다. 열심히 하는 자가 후임 엠시(MC)가 될 것이다.” "누구나 당연히 ‘땡’보다는 ‘딩동댕’을 좋아한다. 하지만 땡을 맞아보지 않으면 딩동댕의 진정한 가치를 모른다. 땡이 세 번 맞으면 바로 딩동댕이 되는 것이다.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했던 많은 사람들처럼 나 역시 늘 내 인생이 딩동댕이라는 것을 남기기 위하여 노력했다.”
2010년. 한국방송 제공
■ 2011년- 56년만 첫 단독 공연 간담회 “과거의 대중가요를 소개할 때 흘러간 노래라고 하는 것은 잘못됐어요. 흘러가지 않았어요. 지금도 부르고 있지 않나. 그리운 노래, 불러보고 싶은 노래, 들어보고 싶은 노래라고 해야 합니다.”
연합뉴스
■ 2013년 <전국노래자랑> 결산
2013년. 한국방송 제공
■ 2014년 <인간의 조건> “과거 코미디언들은 사람을 웃기는 비상한 실력을 가졌는데도 장르가 코미디라는 이유로 괄시받았어… 그러니까 너희(후배 코미디언들에게)가 정말 참다운 주인이 되어서 앞으로 100년 후의 유산이 되어야 해.” _______
■ 2014년 <밥상의 신> “내 건강 비결은 BMW다. B는 버스(BUS) M은(METRO) W는 워킹(WALKING)을 한다는 뜻이다”
2014년. 프로그램 갈무리
■ 2015년 “백세에 저 세상에서 나 데리러 오거든~ 우리 후배들 활동하는 것 다 보고 가야 하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하여라~.”
2015. 한국방송 제공
■ 2019년 <전국노래자랑> “나는 평생 ‘전국노래자랑’을 통해 얻은 경험, 그것을 통해 배운 것을 가지고 즐기면서 살겁니다.”
2019년. 한국방송 제공
■ 2020년 <전국노래자랑 스페셜>
2020년. 한국방송 제공
■ 2022년 영화 <송해 1927> “같은 무대에 100번 나오면 100번을 긴장한다. 관객이 단 한명이 있어도 1만명이 있다는 자세로 대해야 한다.”
2022년. 영화사 제공
■ 2021년 전국노래자랑 마지막 진행 <여러분 고맙습니다 송해> “아이부터 노인까지 전 국민을 편히 대할 수 있는 능력이요? 그분들을 주인으로 섬기는 마음이면 만사형통이죠.” “‘땡’을 받아보지 못하면 ‘딩동댕’의 정의를 모른다. 저 역시 늘 내 인생을 딩동댕으로 남기고 싶었던 사람이다.” “희극을 하려면 정극을 알아야 해요. 비극도 알아야 하고. 슬픔을 모르는 사람이 어찌 기쁨을 알겠어요. 바닥부터 제대로 배우고 익혀야 할 텐데 다들 너무 급해요. 하루아침에 이루려 하고, 번쩍하면 스타가 되는 것으로 착각해요. 그 계산서가 나중에 다 온다는 걸 모르고 말이에요.”
2021년. 한국방송 제공
■ 2022년 5월23일 마지막 공식 행사 <기네스 세계기록 등재> 시상식 “우리(전국노래자랑)는 경쟁 없이 결론이 나오는 ‘다정함’이 있습니다.”
2022년 5월 23일. 한국방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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