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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정의에 대한 갈증이 진화시킨 ‘한국형 장르물’

등록 2021-07-02 20:52수정 2021-07-04 10:29

<괴물>. 프로그램 갈무리
<괴물>. 프로그램 갈무리
[오티티 충전소] 상반기 한국 드라마 결산

최근 몇년간 한국 드라마에서 ‘장르물의 진화’는 눈에 띌 정도로 도드라졌다. 문재인 정권 이후 높아진 대중들의 정의에 대한 관심은 ‘장르물의 진화’에 중요한 동력이 되어주었다. 2017년 등장한 <비밀의 숲>(티브이엔)은 현실적 갈망과 장르물이 만나 이른바 ‘한국형 장르물’이라는 독특한 진화를 촉발한 작품이었다. 시즌1에 이어 지난해 시즌2까지 방영된 이 드라마의 성공은 한국형 장르물에 대한 대중의 관심으로 이어졌다. 한편, 최근 몇년간 드라마의 새로운 시청 플랫폼으로 등장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오티티)는 국외 유수한 장르물들을 소개하면서 국내 시청자들의 눈높이를 한껏 높여놓았다. 한국 드라마 제작자들도 국내 시청자들의 이런 변화에 적응하면서 동시에 글로벌 시청자들까지 염두에 둔 작품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그 해법은 역시 장르물에 있었다. 전세계 누구든 익숙한 드라마의 틀이면서 동시에 저마다 로컬의 색깔을 얹음으로써 색다른 작품으로 변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21년 상반기에도 이러한 한국형 장르물의 진화가 도드라졌다. 무엇보다 19금 콘텐츠까지 얹어 그 표현 수위를 높임으로써 과거 ‘지상파 개념’에 머물러 다룰 수 없었던 소재나 표현들을 담기 시작했다. <괴물>(제이티비시)이나 <마우스>(티브이엔) 같은 스릴러는 상반기 대표적인 성공작으로, 현재 한국형 장르물이 어느 정도까지 진화했는지를 잘 보여줬다. 스릴러로서 드라마의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는 힘을 발휘한 이들 작품은, 마치 잘 짜인 서구의 장르물 같은 디테일을 담보하면서도 동시에 ‘한국형’이 가진 정서적 특징까지 아우르는 성취를 보였다. 소재로 등장하는 살인사건들의 이면을 따라가면 거기에는 한국 사회의 독특한 정서들이 묻어났다. 피해자들이 가해자들보다 더 큰 고통을 받는, 법의 정의가 실현되지 않는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들이 이들 ‘한국형 스릴러’의 색깔로 드러난 것이다.

<모범택시> 프로그램 갈무리
<모범택시> 프로그램 갈무리
한국형 스릴러들은 현실의 부조리가 만들어내는 갈증들을 드라마 속으로 가져와 카타르시스로 풀어냈다. 이것이 가능해진 건 장르물이 점점 많아지면서 드라마 작법의 전제로서 현장 취재가 필수가 되면서다. <모범택시>(에스비에스)는 웹툰 원작이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모두 실제 현실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모티브로 가져왔다. <그것이 알고 싶다>를 연출했던 피디가 만든 이 작품은 그 탐사보도 프로그램에서 다뤘던 실제 사건들을 소재로 가져와, 법의 정의가 해결하지 못해 만들어진 대중의 갈증을 ‘사적 복수’라는 허구로 없애줬다. <날아라 개천용>(에스비에스)처럼 아예 작품 속 주인공인 기자가 대본을 쓴 장르물도 등장했다. 심지어 <로스쿨>(제이티비시) 같은 법정드라마는 법에 대한 전문적인 내용들로 채워지기도 했다. 취재 기반의 작법은 한국형 장르물들이 훨씬 더 디테일을 갖게 된 이유가 됐다.

2021년 상반기의 성과로, 한국형 장르물들이 슈퍼히어로물이나 타임리프, 유사 좀비물 같은 새로운 장르들로 확장된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낮과 밤>(티브이엔)이나 <루카: 더 비기닝>(티브이엔)처럼 생체실험을 통해 탄생한 초능력자들을 다루는 장르물도 등장했고, <경이로운 소문>(오시엔) 같은 한국형 슈퍼히어로물이나 <다크홀>(오시엔) 같은 유사 좀비물도 시도되었다. 또한 <시지프스>(제이티비시) 같은 아포칼립스를 배경으로 하는 타임리프 장르도 나타났고, <빈센조>(티브이엔) 같은 이탈리아 마피아의 감성을 우리 식의 정서로 풀어낸 코믹 액션 활극 장르도 사랑받았다.

한때 가족드라마, 멜로드라마, 사극이 한국 드라마의 대명사였던 건, 당대의 미디어 환경과 가족적인 가치관, 사회적 분위기 등이 맞물린 결과였다. 하지만 오티티라는 글로벌 플랫폼으로 시청자들이 이동하고 있고, 개인주의적 가치관의 확산과 시청자들의 높아진 눈높이는 향후에도 한국형 장르물의 진화를 예견하게 한다. 2021년 상반기는 그 도저한 흐름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시기였다.

혹여나 언급한 작품 중 못 본 게 있다면, 적어도 <괴물> <마우스> <낮과 밤> <로스쿨> 정도는 다시 보길 권한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이재익 피디의 방탄소년단 다시보기’로 6월 한달이 즐거우셨나요? 오티티 충전소가 마련한 두번째 여름 특집. <마우스> 최란 작가가 추천하는 ‘내 인생의 장르물’이 다음주부터 7월 한달간 이어집니다. 6월엔 비티에스! 7월엔 장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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