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드 제닝스 미국 시카고신학교 교수가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종로3가 인근 바 테라스에 걸린 무지개색 깃발을 배경으로 서서 미소를 짓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한국과 미국의 교회 지도자들은 겁쟁이입니다. 이들은 권력과 금력을 유지하기 위해 교인들을 좁은 틀에 가둬놓으려 합니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이 다 동성애 혐오주의자나 바보인 건 아닙니다. 교인들은 진실을 추구하고, 교회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지적으로 정직한 리더십에 목말라 있습니다.”
76살의 나이였지만 그의 비판은 날카롭고 거침없었다. 24일 서울 종로에서 만난 세계적인 바울신학·퀴어신학의 대가 테드 제닝스 미국 시카고신학교 교수는 3시간 가까이 이어진 인터뷰와 사진 촬영에도 시종 명징함과 유머를 잃지 않았다. 한국 언론과는 첫 인터뷰지만 그의 한국과의 인연은 깊고 길다. 그는 1994년 처음 한국에 온 뒤로 15번가량 한국을 방문했다. 그에게 배운 수많은 한국인 제자들이 본국으로 돌아가 목사나 신학교 교수가 되어서 그를 자주 초청했기 때문이다. “한국과 사랑에 빠졌죠. 한식도 대단하고, 저는 특히 노래방을 좋아합니다.” 2001년 기독교의 성소수자(LGBT+) 혐오 문제에 관해서 온 이후로 국내 성소수자들과 연대하기 위해 한국을 찾는 일이 잦아졌다. 제닝스 교수는 이번에는 최근 국내에 출간된 <무법적 정의>(길출판사) 출간 기념 강연 등을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이날 통역은 시카고신학교에서 제닝스 교수에게 배운 한수현 박사가 맡았다.
제닝스 교수는 책 제목으로 삼은 ‘무법적 정의’라는 일견 모순되어 보이는 말을 이렇게 설명했다. “로마의 법과 유대인의 법이 하나가 돼서 메시아인 예수를 죽였습니다. 법이 불의를 생산했고, 법으로는 정의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법은 권력을 가진 자들의 것이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진정한 정의를 이루는 것은 메시아를 통한 모든 인간에 대한 관대함과 환대,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역사 속에서 무법적 정의가 모습을 드러낸 사례들을 수없이 찾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과거 미국에서 노예제는 법이었고, 노예해방 운동은 불법이었습니다. 동성 간의 결혼도 과거에 불법이었다가 2013년부터 합법이 됐습니다. 현재 미국에서 이민법은 매우 엄격해, 제가 집에서 불법체류자들을 보호하는 것을 불법이라고 합니다. 한국에서도 그렇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법은 많은 경우 노동자를 보호하지 않습니다.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위해 일어난 것을 법은 불법이라 판단할 때가 매우 많습니다. 최근 몇 년간 있었던 일 중에 저를 가장 흥분시킨 것은 한국 사람들이 더는 독재는 안 된다고 일어선 것이죠. 몇 달 전부터 멕시코에서도 기존의 모든 정당을 거부하고 더 나은 것을 요구하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제가 시카고에서 미국의 군사행동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기 위해 대로를 행진하려 할 때, 경찰은 행진을 금지하고 길을 폐쇄했습니다. 우리는 불법이지만 정의의 이름으로 행진했습니다. 정의를 이루기 위해선 법을 거스를 수밖에 없었죠. 이것이야말로 무법적 정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 속에서도 이런 ‘무법적 정의’를 실천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집에서 멕시코와 세네갈에서 온 불법체류자처럼 혈연이 아닌 이들과 함께 공동체를 형성해서 살아오고 있다. “저는 신학을 하면서 언제나 해방에 헌신해왔습니다. 기독교의 심장이자 복음의 핵심은 배제되고 주변화된 사람들의 편이 되어 주는 것입니다. 바울 자신도 종교적 교리주의자가 아닌 로마 제국의 정치적, 사회적 불의에 대항해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지식인이었습니다.”
그는 <무법적 정의>와 이전에 출간된 <데리다를 읽는다/바울을 생각한다>에서 좌파인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알랭 바디우, 정치철학자 조르조 아감벤, 프랑스 현대철학자 자크 데리다의 이론을 중요하게 참고한다. 제도권 종교에 비판적인 이들의 논의를 신학자가 적극적으로 수용한 것은 매우 아이러니해 보인다. “자크 데리다는 무조건 환대하는 것, 대가가 없는 선물, 용서는 무엇인지 그 의미를 알기 위해 끊임없이 질문을 밀어붙이고 해체를 감행한 철학자입니다. 바디우나 아감벤이 쓴 바울에 대한 저작은 수많은 기독교 신약학자들이 쓴 책보다 훨씬 좋아요. 바울과 데리다, 바디우 등이 붙들고 싸운 정의, 사랑, 공동체라는 주제들은 기독교의 근본적인 질문이지만, 지금의 교회들은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그의 저작에서 바울이 애초에 동성애를 정죄하거나 혐오한 적이 없다는 대목은 인상적이다. “동성애는 근대적인 개념입니다. 지금 우리가 문제 삼는 동성애를 정죄하는 구절은 5세기에 이르러서야 동성애적으로 해석하기 시작합니다. 실제로 바울이 이 구절에서 비판한 것은 동성애가 아니라 로마 지배층 사이에 있었던 공공연한 강간 문화였습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밑에 있는 사람들을 남자든 여자든 원하는 대로 강간하는 일들을 문제 삼은 것이죠. 당시 로마의 철학자나 현자들이 이 문화를 지적하는 내용은 역사 기록으로 흔하게 찾을 수 있습니다. 바울이 권력자들을 비판한 본문이 아이러니하게도 주변인인 성소수자들을 저주하는 본문으로 완전히 거꾸로 해석되고 있는 겁니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최근 한국 기독교가 교인 수 감소 등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반동성애·반이슬람 운동에 주력하는 것은 결국 “자살 행위”가 될 것이라 비판했다. “불행하게도 많은 기독교인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강화하기 위해 타자를 혐오하고 있습니다. 여성, 성소수자, 흑인, 이슬람교인들을 분리하고 배제하는 게 대표적이죠. 이건 막다른 골목이자 죽음으로 가는 길(dead-end)입니다. 전체 사회는 점점 성소수자를 포용하는 쪽으로 가는 상황에서, 교회는 점점 작은 종파로 축소될 것입니다.”
그는 최근 명성교회에서 담임목사직을 세습하고 이를 교단이 승인한 것 또한 비슷한 흐름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봤다. “교회 기구가 한 사람에게 권력을 집중하고, 상명하복식 계급 구조를 만들어 부패해가는 것 또한 대표적인 죽음으로의 충동입니다. 교회가 자신이 어떤 공동체여야 하는지 망각하고 권력과 돈에 기생하면서 배제된 사람들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미워하고 정죄하는 자리에 서면서 죽어가는 것이죠. 미국에서 복음주의를 표방하는 교회들이 성도덕을 강조하면서도 도널드 트럼프의 성추문은 전혀 문제 삼지 않고, 오히려 그를 추앙하는 것도 이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테드 제닝스 미국 시카고신학교 교수가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종로3가 인근 카페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그는 이제 ‘기독교 이후 신학’(Post-Christian Theology)에 대한 고민을 해나가야 한다고 내다봤다. “기독교가 타인에 대한 존중, 배려, 사랑이란 가치를 스스로 죽이고 권력기구가 되면 결국 교회는 사라질 겁니다. 이미 유럽과 미국은 기독교 사회가 아닌 세속사회가 됐습니다. 도그마이자 기관으로서 기독교는 이제 의미가 없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종교로서 기독교가 사라지더라도 우리 사회를 풍요롭게 한 사랑과 정의, 관용, 환대 같은 가치들을 남겨서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데 공헌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애초에 구약 성서의 인물들과 예수와 바울은 기독교인이 아니었다는 점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80살을 바라보는 그는 이제 지난 44년간 “소유하지 않는 열린 관계”를 맺어온 아내를 돌보는 일을 가장 중요한 일로 삼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머릿속에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책들이 세상에 나오길 기다리고 있다. “메시아적 정의에 대해, 어떻게 메시아주의를 실천할 공동체를 만들 것인가에 대해 바울과 철학자들의 논의를 집대성한 책을 저술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먹보이자 술꾼’으로 불린 예수처럼 기독교에서 이어져 온 함께 먹고 마시고 나누는 전통에 관한 책을 쓸 계획도 있습니다.”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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