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신노동자의 미래-변화하는 농민공의 문화와 운명
뤼투 지음, 정규식·연광석·정성조·박다짐 옮김/나름북스·2만원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해봤을 법하다. ‘세계의 공장’이 된 중국에서 3억명의 노동자들이 하나로 뭉쳐서 파업을 벌인다면, 전지구적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2010년대 들어 중국의 파업 횟수는 날로 급격히 늘어가는 추세다. 중국 노동자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인지, 특히 그들이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에 전세계가 이목을 집중하는 이유다.
중국의 사회학자이자 노동운동가인 뤼투(50)의 새 책 <중국 신노동자의 미래>는 바로 이에 대한 보고서다. 전작 <중국 신노동자의 형성>이 ‘신노동자’라 불리는 오늘날 중국의 노동자 계급이 형성된 맥락과 현실을 다뤘다면, 후속작인 이 책의 열쇳말은 ‘문화’다. “에드워드 톰슨의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과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기나긴 혁명>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고 밝히듯, “일상생활에 ‘용해’된 일종의 ‘감정 구조’”로서 노동자들의 ‘문화적 상태’가 과연 어떤 것인지 탐구하고 이에 기반해 미래를 전망하겠다는 것이다. 수많은 노동자들과의 인터뷰와 조사, 스스로 겪어본 공장 체험 등이 현장에 뿌리내린 연구의 기반이 됐다.
중국 베이징 피춘에 위치한 ’베이징노동자의집’ 활동가이기도 한 사회학자 뤼투는 중국의 ’신노동자’의 현황과 미래에 대한 현장 연구를 계속해오고 있다. 나름북스 제공
개혁·개방으로 중국의 자본주의가 급속히 발전하는 과정 속에서 전통적 노동계급과는 다른 새로운 노동계급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부분 농촌이 고향인 이들은 일거리를 찾아 연해지역의 대도시들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엄격한 ‘호구’ 제도 아래 신분은 고향에 묶여 있기 때문에 대도시에서 아무리 ‘품팔이’를 계속하더라도 결코 대도시의 일원은 될 수 없다. 과거 ‘농민공’이라 불렸던 이들은 이제 ‘신노동자’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요구받는다. 그러나 ‘과객’이 되어 고향과 대도시 사이에서 부유하는 그들의 일상생활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자본의 논리’이며, 그 아래에서 이들은 고통과 무감각을 겪고 있다.
1983년생 남성인 장잔보의 경우를 보자. 1년 전부터 쑤저우에 있는 전자 공장을 전전하며 일하는 그는 일주일에 6일 일하고 월급으로 1900위안(우리 돈으로 30만원 정도)을 번다. “나는 자전거를 타는데 저 사람은 베엠베(BMW)를 타는 것”에 격차를 느끼지만, 그의 결론은 “열심히 돈을 벌어서 베엠베를 타야지”로 흐른다. 스스로도 “품팔이만 해서는 영원히 돈을 모으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사회가 불공평하다고 해서 사회를 바꿀 수 없잖아요. 그저 우리의 마음가짐을 바꿀 수 있을 뿐”이라는 그의 말은, 물질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우리의 세계를 점령한 자본의 논리가 얼마나 위력적인지 보여준다.
중국 션전에 있는 한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 노동자의 모습. 사진 Institute for Global Labour and Human Rights 출처 플리커닷컴
중국 대도시의 ‘공장 문화’는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포획한 자본의 논리를 잘 보여준다.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쉬는 시간조차 없을 정도로 일하는 노동자들은 결코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다. 불합리한 지시에도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쉬는 시간은 그저 게임이나 한국 드라마 시청으로 보낼 뿐이다. 품팔이를 하려면 도시에 있어야 하나, 도시에는 이들이 뿌리내리고 발전할 수 있는 사회 정책과 환경이 없다. 노동자들은 “맘에 안 드는 게 있어도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않고, 불만이 있으면 떠날 뿐이다.”(1999년생 여성 왕메이리)
이렇듯 자본의 논리로 포획당한 ‘문화적 상태’ 아래에서 “능동적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것은 너무도 먼 나라의 이야기다. 1993년생 여성 장멍은 한때 “인민에게 봉사한다”는 꿈을 꿨지만, 이젠 “나부터 잘 챙겨야 한다”며 다단계 판매에 몰입하고 있다. 물론 현실이 절망적인 것만은 아니다. 지은이는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1984년생 남성 쑤하오민으로부터 자신의 고통을 직시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고, 노동자로서 권리 요구에 나선 1988년생 남성 왕하이쥔으로부터 새롭게 움트고 있는 노동자의 정치성을 본다. “자본은 이윤 추구를 위해 인간을 ‘탈인간화’ 하려 하지만, 사람은 인간성을 박탈당한 것에 괴로움을 느낀다. 이러한 능력이 바로 인간이 가진 희망의 근거다.”
중국 베이징 피춘에서 열린 ‘신노동자문화예술제’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는 ‘신노동자예술단’. 출처 베이징노동자의집
중요한 것은 “자신이 누구인지 명확히 알아야만 비로소 그에 맞는 사회적 권리를 쟁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핵심적인 것이 바로 ‘문화’다. 일상생활을 지배하는 자본의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신노동자’는 사회적 존재로서 스스로를 자리매김할 수 없다. 일상생활은 인간을 상품으로 만들려는 자본과 이를 이겨내려는 인간이 끊임없는 전투를 벌이는 ‘문화적 전장’이다. 지은이 자신이 속해 있는 노동운동 단체 ‘베이징 노동자의 집’에서 벌이고 있는 공동체로서의 여러가지 활동과 실험은, 자본의 논리에서 벗어나 ‘신노동자’ 스스로의 긍정적인 정신문화를 창조하기 위한 것이다. 여기서 추구하는 ‘노동문화’의 이상을, 지은이는 “통일된 사람이 된다”, “피고용자가 되지 않는다” 등으로 압축해 제시한다.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중국 노동자의 모습. 출처 szhgh.com
“뤼투의 치열함 덕택에 우리 사회가 해방의 언어들과 너무 일찍 결별했음을 깨달았다”(조문영 연세대 교수)는 추천사가 가슴에 박힌다. ‘중국의 노동운동’이란 주제를 두고 누군가는 내비칠, “우리가 예전에 그랬지”란 반응도 벌써부터 불편하다. 오늘날 중국 ‘신노동자’의 노동운동은 단지 그들만의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로부터 인간의 존엄성을 되찾기 위한 전쟁은 늘 ‘현재진행형’인, 전지구적인 총력전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