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신노동자의 형성/려도 지음, 정규식·연광석·정성조·박다짐 옮김/나름북스·2만원
탈향과 귀향 사이에서/허쉐펑 지음, 김도경 옮김/돌베개·1만6000원
중국에는 공산당과 시진핑만 있는 게 아니다. 9억이 넘는 농민이 있고, 그 가운데는 흔히 농민공으로 불리는 ‘도시에서 일하고 생활하지만, 호적은 농촌에 둔 품팔이 노동자’ 2억4000만명이 있다.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본 적 있는가.
<중국 신노동자의 형성>은 중국 여러 도시를 넘나들며 노동자 54명을 만나고 그들의 고향을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간 연구다. 지은이 뤼투(려도)는 네덜란드에서 유학한 사회학자다. 대학교수직을 내려놓고 2008년부터 베이징 외곽 마을 피춘의 공동체 ‘북경 노동자의 집’에서 노동자들과 함께 노동하고 생활하고 연구하며 이론적, 실천적 작업을 하고 있다.
중국 광둥성 둥관의 구인 광고판 앞에서 일자리를 찾는 ‘신노동자’들. ‘세계의 공장’ 중국을 만든 주역이지만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많은 중국 노동자들은 노동조건에 반발해 계속 새 일자리를 찾아 이직한다. 둥관/박민희 기자
덩샤오핑의 시장화 개혁과 함께 ‘세계의 공장’으로 변한 연해지역으로 농촌을 떠나 돈벌이를 하려는 노동자들이 밀려들었다. 피땀 흘려 노동을 해도 농민이란 ‘신분’에 묶여 저임금 일자리를 전전하고 복지·주거, 자녀 교육 혜택에서도 소외된 이들은 도시에서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없다. 도시엔 이들의 ‘집’이 없다. 하지만 1980~90년대 이후 출생한 젊은 농촌 출신 노동자들은 대부분 농사 경험이 없고 농촌엔 이들이 돌아갈 땅도 부족하다. 결국 이들은 ‘살 수 없는 도시’와 ‘돌아갈 수 없는 농촌’ 사이에서 길을 잃고 방황한다. 불평등한 현실을 날카롭게 자각하면서도, 그것을 바꿀 방법은 없다고 체념하고 무력감을 느끼기도 한다.
“어떤 사람이 학력이 높은 건 그가 어릴 때부터 그런 교육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고, 돈을 벌 수 있었던 건 그가 돈 버는 수단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우린 어릴 때부터 그럴 기회가 없었죠, 그래서 품팔이 노동자가 된 게 개인의 탓이라는 건 틀린 말이에요.”(1990년생 노동자 산산)
“중국은 현재 자본주의 국가보다 더 자본주의적이에요. 제 생각에 빈부격차는 정상적인 거예요. (…) 당연히 정부도 빈민의 상황을 조금이나마 개선하려고 해요. 하지만 단시간에 큰 변화를 기대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에요. 결국 우린 희생양일 뿐이지만 원망하진 않아요. 더 노력해서 지금보다 나은 삶을 살길 바랄 뿐이죠.”(1986년생 기술공 셰융타오)
지은이는 이들을 ‘신노동자’로 부른다. ‘농민공’이란 호칭에는 ‘결국은 농촌으로 돌아갈 사람들’이라는, 노동자 정체성을 부정하는 뜻이 담겨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금 중국의 정치에서 이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중화인민공화국은 노동자계급이 영도하고 노농연맹을 기초로 하는 인민민주주의 전제정치의 사회주의 국가다”라는 중국 헌법 1조1항은 힘을 잃었고, 노동자 이익을 대표한다는 공산당은 기득권 엘리트의 당으로 변했다. 이런 현실에서 신노동자들은 개인적으로 무료한 작업을 박차고 나오고 더 나은 대우나 미래를 기약하며 끊임없이 이직하는 소극적 저항을 계속한다. 폭스콘 노동자들의 연쇄 자살이나 광둥성 난하이의 혼다자동차 노동자 파업처럼, “일단 신노동자가 정치 영역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면 거대한 변화가 발생하리라는 것을 짐작하게 하는”(왕후이 칭화대 교수) 사건들도 잇따라 벌어진다.
중국 베이징 외곽 피춘의 노동자 공동체 ‘북경노동자의 집’ 한켠 노동자박물관 입구에 써 있는 ‘우리의 역사가 없으면 우리의 미래도 없다’는 글. 북경노동자의 집에서는 이렇게 스스로의 역사를 기록하려는 박물관, 노동자극장, 농촌 출신 노동자들의 아이들을 위한 학교, 농장, 협동조합 등을 운영한다. <중국 신노동자의 형성>의 지은이 려도도 이곳에서 노동자들과 함께 생활하고 노동하고 있다. 피춘/박민희 기자
신노동자 ‘계급’의 등장을 말하긴 아직 이르지만, “이들 노동자들 한명 한명의 각성과 인식이 자신과 집단의 운명을 결정하고 중국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지금은 미약해 보이지만, 중국 신노동자들의 각성과 요구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급성장한 중국에서 성장의 과실을 어떻게 분배하고 어떤 발전모델의 길로 나가게 될지를 결정하는 ‘아래로부터의 동력’이 될 것으로 그는 믿는다.
이 책에 등장하는 중국 신노동자들의 고민은 오늘 한국 비정규직 노동자들, 청년 구직자들의 번뇌와도 맞닿아 있다. “나의 한국에 대한 유대감은 전태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지은이가 한국에 와서 노동자, 청년들과 만난 뒤 이 책의 번역자에게 “당신이 중국 신노동자의 현실과 미래에 주목하는 것은 바로 세계 노동자의 운명에 주목하는 것이고, 이것은 내가 전태일의 삶과 죽음에 관심을 갖는 것과 같은 이유다”라고 말한 것도 그런 뜻이리라. 이 책을 읽는 이들이 한국 사회에 자욱한 반중감정과 중국위협론의 연기를 걷어내고, 중국 땅의 현실과 그곳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서로 어깨를 맞대고 함께 자본과 국가주의의 논리를 넘어서기를 기대하게 된다.
<탈향과 귀향 사이에서>는 중국의 농촌과 토지에서 신노동자·농민공 문제의 새로운 해법을 찾으려 한다. 오랫동안 중국 농촌 속으로 들어가 현지조사를 통해 삼농(농민·농촌·농업) 문제를 연구해온 지은이 허쉐펑은 “중국 현대화의 안전판”이 되어온 중국 농촌의 의미를 강조한다. 중국 농민들은 누구나 약간의 땅을 받기 때문에 농사를 지어 큰돈을 벌 수는 없어도 생활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 젊은 농민들이 도시로 나가 일하는 동안 나이 든 부모세대는 농촌에서 농사를 지으며 어린 손자손녀를 키운다. 2008년 경제위기로 도시에서 2000만명이 해고되었지만 이들은 고향으로 돌아와 다시 생활을 도모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의 도농이원구조에서 농촌과 토지는 일종의 기본소득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으며, 서구식 시장주의가 만병통치약인 양 토지사유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은 중국 현실을 모르는 잘못된 주장이라고 그는 지적한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