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원규의 다독시대
천명관 지음/문학동네(2014) 삶은 한편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단편이 아니다. 나를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이 부대끼면서 일궈내는 촘촘한 그물을 닮은 장편이다. 수백, 수천편의 이야기들이 한 사람의 인생으로 집약되는 삶은 때론 거대한 동굴을 닮기도 했다. 동굴에서 탄생하는 무수한 이야기 울림은 어떨 때는 칠흑 같은 어둠이거나 또 어떨 때는 막막한 외로움과 함께하면서 역설적으로 동굴 너머의 빛을 향한다. 빛은 결국 우리의 이야기를, 삶을 살아 있는 것으로 확인해주는 의미의 상징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거창하게 말한 것 같지만 우리가 이야기를 접하고 또 반응할 때 갖게 되는 태도는 이렇듯 무수한 이야기 그물을 통과하면서 동굴이란 이름의 막막함과 조우하는, 결국 그러한 전체의 과정이 빛을 향하는 존재의 숨쉬기였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소설은 바로 이러한 당위 앞에 자리하고 있으며, 소설 읽기란 이야기를 통해 또 다른 이야기에게로 옮겨가는 이야기에게로 향하는 여정과 같다 할 것이다. 한국소설의 다차원적 확장이란 평을 들으며 두 번 다시 보기 힘든 강한 이야기에로의 집념을 그린 작품 <고래>를 접한다면 아마도 이야기에게로 향하는 길이 더 웅숭깊다는 확신을 지우기 어려울 것이다. 2004년도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한 천명관 작가의 장편 <고래>는 3대에 걸친 인물들의 역사를 수많은 이야기 사슬로 전개해가는 특징을 갖고 있다. 크게 본 이야기의 구조는 오히려 단순하다. 3부로 구성된 <고래>의 1부와 2부는 시골에 살고 있는 한 소녀가 작은 도시의 기업가로 성공한다는 내용인 금복의 일대기를 다룬다. 금복을 중심으로 그녀를 둘러싼 수많은 인물들과의 관계를 통해 발생되는 이야기가 숨 가쁘게 전개된다. 3부는 감옥을 나온 뒤 폐허가 된 벽돌공장으로 돌아온 지적장애인인 금복의 딸 춘희의 삶과 죽음을 이야기한다. 작가 스스로 밝히듯 ‘이 모든 이야기가 한 편의 복수극’이라고 말한 소설은 하지만 엄밀히 말해 복수극도, 치정극도, 역사소설도 그 무엇도 아니다. 이 이야기는 스스로 동굴 속으로 걸어 들어가 너머의 빛을 찾아 헤매는 세상 속의 만담으로 표현해도 무방하다. 이 소설에서는 역사적 사실이 중요하게 취급되지 않는다. 소설의 중심 배경을 이룬 평대라는 공간 역시 이 땅에 실재하지 않거나, 있더라도 큰 의미를 갖지 않는 가상의 공간이다. 여기에 서술자는 현실의 재현에는 도통 무관심이다. 오히려 현실성을 깨기 위해 자신의 목소리도 비현실적으로 구사한다. 이렇게 일상 속의 무관심을 낯설게 하기로 펼쳐나가는 시도는 소설이란 장르가 가진 본래의 한 충동인 이야기에로의 집중, 또한 아무 것도 말하지 않겠다는 집념을 드러낸다. 이러한 집념은 우리 사는 삶의 목적이 단지 빛을 찾아내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삶이란 이름의 동굴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함임을 보여준다. 동굴 너머의 빛, 그 희미함과 함께하며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삶은 이야기다. 삶은 수천, 수만 갈래로 뻗어나가는 이야기를 향해 걷고 또 걷는 먼 길이다. 이러한 삶을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 할 것이다. 기껍고 반가운 마음으로. 주원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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