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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개돼지의 사회학

등록 2016-07-21 19:17수정 2016-08-09 14:52

주원규의 다독시대
자본주의의 아비투스
피에르 부르디외 지음, 최종철 옮김/동문선(2002)

동일시의 오류란 것이 있다. 이 이론과 관련된 기본적인 전제는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동일한 계층으로 간주하려는 욕구로부터 출발한다. 그런데, 이 경우 인간 본능 중 하나인 차이의 욕망이 필연적으로 스며든다. 결국 동일시의 욕구는 차별의 욕구로 진화하기 마련이다. 다시 말해 자신이 대하는 상대를 자신과 같은 부류로 동일시한 후, 상대보다 자신이 필연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어야 한다고 믿는 이른바 차이의 우월성이 그것이다.

최근 민중을 개돼지에 비유하고 신분제 공고화를 떠들어댄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이 끝내 파면되었다. 파면 결정이나 징계 여부를 놓고 설왕설래가 난무하지만, 중요한 건 망언을 에워싼 일련의 결이 개인의 돌출발언으로만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망언을 둘러싼 그들만의 리그가 보여준 대상에 대한 인식 전체의 문제가 아닌가 하는 우려는 필자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민중을 개돼지로 인식하고 신분제 사회의 고착화를 욕구하는 대범한 망언을 뇌까린 이의 병적 무의식을 통해 우리는 비참하지만 분명한 사실을 목격하게 된다. 민중을 개돼지로 보려는 욕구의 근간엔 그 자신이 개돼지의 사회학, 그 근간을 이루는 동일시의 오류에 세뇌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개돼지의 동질성을 확보하고 난 이후 개돼지 중에서 보다 우수한 종자로 선별되기 원하는 차별적 우월성에 연루된 천박한 엘리티즘이 여과 없이 노출된 사건이 이번 망언의 전말이 아닌가 싶다. 이로 미루어 보건대 그 누군가들의 혀를 통해 상호 교환되어 오던 오만한 카르텔을 드러낸 개돼지 망언은 망언 당사자를 둘러싼 세상이 온통 개돼지 사이에서 우수 품종을 가르는 신분제 사회였음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신분제 사회의 사회학적 기저를 일찌감치 통찰한 책이 새삼 떠오른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자본주의의 아비투스>(동문선·2002)가 그것이다. ‘자본주의의 아비투스’는 1960년대 알제리에서 실시된 민속지적인 연구의 총결산인 책으로, 계급에 따라 특징적 성향체계가 결정된다는 아비투스(habitus) 이론이 부각된다. 개인의 취향이 타고난 것이 아니라 철저히 후천적으로 습득된다는 것이다. 부르디외는 삶의 궤적 전체를 결정하는 취향이 개인이 처한 배경에 따라 다르게 형성되고 그 배경을 결정하는 배후로 천민자본을 지목한다. 자본이 인간을 스스로 계급화한다는 말인데, 학연, 지연, 혈연의 늪에 빠져버린 대한민국 상징자본은 계급의 천박성이 개돼지를 소환할 정도로 타락했음을 보여주고 있는 건 아닌지 염려된다.

상위 1%를 욕구하고 그 소속감에 혈안이 된 이들은 재고의 여지 없이 개돼지다. 좀 더 우월하고 우수한 종자를 욕망하는 개돼지의 계급사회가 그들이 원하는 세상인 것이다. 문제는 상위 1%의 굿판이 더 한층 강고한 계급체계를 구축한다는 데 있다. 이래저래 서글픈 책 읽기가 되어버렸다.

주원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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