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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아이들의 마음을 깨우는 바람

등록 2013-11-24 20:02

20일 오후 바람의아이들 출판사 식구들이 사무실 한켠에 모여 앉았다. 왼쪽부터 이소희, 이민영, 최윤정, 양태종, 최문정, 이창섭씨. 
 김정효 기자 <A href="mailto:hyopd@hani.co.kr">hyopd@hani.co.kr</A>
20일 오후 바람의아이들 출판사 식구들이 사무실 한켠에 모여 앉았다. 왼쪽부터 이소희, 이민영, 최윤정, 양태종, 최문정, 이창섭씨.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작지만 강한 출판사 ⑮ 바람의아이들
바람은 언제나 분다. 때론 강하게 몰아치고 때론 살살 불어와 땀을 식혀준다. 방향과 성질이 어떻든 그것이 바람이라면 언젠가는 잦아들게 마련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자라나는 시기, 어린이와 청소년 시기도 마찬가지다. 그런 바람 같은 아이들을 보듬겠다고 문을 연 출판사가 있다. ‘바람의아이들’이다.

“한국 어린이문학에 새 물꼬를 터나갈 신인을 발굴하고 육성하려고 2003년 7월에 설립한 어린이·청소년문학 전문 출판사입니다.” 바람의아이들의 온라인 카페에 있는 회사 소개 첫 문장이다.

“처음에 출판사를 차리겠다고 했을 때 다들 말렸어요. 문학, 그것도 어린이·청소년 대상에 신인 발굴이라니 그런 책이 팔리겠느냐며 100% 망한다는 사람들이 많았죠.” 20일 만난 최윤정(54) 바람의아이들 대표는 웃으며 말했다.

망하기는커녕 바람의아이들은 지난 10년 동안 120여종의 책을 냈고 대여섯번의 이사 끝에 서울 서교동의 2층 양옥집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2006년 이후에는 적어도 적자는 내지 않았으니 이제 웃으며 말할 만하다. 2004년 펴낸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이경혜 지음)는 10년 동안 25만부가 팔렸고 <우리 집에 온 마고할미>, <뚱보 내 인생>, <가족입니까>, <마지막 이벤트>, ‘완전한 세계의 이야기’ 시리즈 등은 꾸준히 읽히고 있다. 최 대표가 스스로 대견해하는 것은 이 출판사를 통해 이름을 알린 국내 작가들이 늘어났다는 사실이다. 이 출판사 온라인 카페 ‘작가 소개’ 게시판에는 국내 어린이·청소년문학 작가 20여명의 이름이 적혀 있다.

최 대표는 출판기획자이자 평론가, 번역가이기도 하다. 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한 그는 프랑스 유학길에 올라 현대비평을 공부했고 번역 작업도 활발히 했다. 1990년대 전까지 그는 ‘어린이·청소년문학’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다들 말린 청소년문학 출판
10년 동안 120여종 내며 전진
순수 투고만 받아 신인 발굴

그랬던 그를 변하게 한 건 아이들이었다. 한국에 돌아와 1988년에 낳은 딸이 학교에 들어갈 무렵 “아이에게 책을 골라줘야겠다”는 생각에 서점을 찾은 것이 그의 인생 항로를 바꿔놓았다. “아이의 마음을 드러내는 책, 동시대의 정서를 담은 책”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고 했다. 이후 프랑스에 가서 어린이·청소년문학을 살펴본 뒤 돌아와 어린이·청소년문학과 관련한 평론, 기획, 번역 등의 작업에 뛰어들었다. 정작 자신은 그 시기에 “일을 너무 열심히 해 결국 딸과 아들에게는 제대로 책을 골라주지 못했던 나쁜 엄마”라고 한다.

크고 작은 출판사를 통해 국내 작가들과 인연을 맺었던 것이 2003년 자연스레 출판사 창업으로 이어졌다. “당시 국내 작가의 좋은 작품들이 나올 수 있는 분위기가 무르익어서 신인이 책을 내기 어려운 한국 출판계의 구조적 문제만 해결하면 된다는 생각이었다”고 최 대표는 말했다.

지금껏 같이 일하고 있는 이창섭 영업팀장을 포함해 많은 이들이 ‘1인 출판사’로 출발한 최 대표를 돕겠다고 찾아왔다고 한다. 지금은 이민영 편집자, 양태종 디자이너, 최문정 이사, 관리팀 이소희씨 등 모두 6명이 함께 일하고 있다. 처음으로 책을 만나는 아기들을 위한 ‘알맹이 그림책’, 초등 저학년용 ‘돌개바람’과 고학년용 ‘높새바람’ 시리즈, 청소년을 위한 ‘반올림’ 시리즈 등을 구분해서 펴낸다.

바람의아이들은 아무리 유명한 작가라도 원고 없이 계약하는 일은 없다. 상금을 내건 공모전이나 시상식 없이 순수하게 투고를 통해서만 신인을 발굴한다. 완성된 원고를 들고 온 작가와 출판사가 진솔하게 소통하며 책과 함께 관계를 만들어나간다고 했다. 2010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프랑스문학을 한국에 소개한 공로로 문화예술 공로훈장 ‘슈발리에’를 받기도 한 최 대표는 책을 통한 프랑스와의 교류에도 관심이 많다. 20년 전, 부러운 마음으로 둘러봤던 프랑스 서점에 이제는 자신의 출판사가 낸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의 프랑스어판이 진열되어 있다.

이 출판사에서 펴낸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의 작가인 이경혜씨는 “바람같이 자유로운 존재이지만 현실의 벽에 갇혀 있는 아이들에게 숨통을 트이게 해주는 독특한 출판사”라고 표현했다. 2004년 <아로와 완전한 세계>로 데뷔한 김혜진씨는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한 것도 아니고 작가 지망생 모임에도 속해 있지 않던 내가 작가로 책을 내고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바람의아이들 덕분”이라며 “작가들이 성급해하는 순간에도 책의 완성도를 우선시하는 출판사”라고 말했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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