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철북 회의실에 전 직원이 모였다. 왼쪽 위부터 이단비(편집), 박시영(편집), 나지은(디자인)씨, 김지훈 교육팀 과장, 김인정 교양팀 과장. 아래 왼쪽부터 임중혁 주간, 정영주 관리부장, 조재은 대표, 김성은 어린이청소년문학팀 과장.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작지만 강한 출판사 ⑬ 양철북
도토리묵 무침, 두부 부침, 돼지고기 김치찌개, 각종 쌈채소로 한 상이 차려졌다. 22일 정오, 서울 마포구 서교동 이층짜리 양옥집 1층에 있는 식당에 양철북 식구 9명이 둘러앉았다. 주방 담당 직원을 따로 뽑아 8년째 한솥밥을 먹고 있는 출판사 직원들은 덤덤하게 수저를 들었다. 임중혁(42) 주간은 구수한 분위기에 놀란 기자의 표정을 보고는 씩 웃으며 말했다. “저도 7년 전 면접을 보러 왔다가 다 같이 점심 차려 먹는 모습을 보고는 반해서 입사를 결정했더랍니다.”
양철북은 ‘가장 인간적인 교육이 가장 진보적인 교육이다’라는 가치관으로 문을 연 출판사다. 2002년 조재은(46) 대표가 마포구 공덕동에 있는 두레출판사에 방 하나를 얻어서 1인 출판사로 시작했다. “출판사를 차리기 전 다니던 출판사에서 한창 조기교육과 관련한 책을 냈는데 효율성과 능률만을 중시하는 교육서를 보니 답답했어요. 사람을 생각하는 교육, 그런 철학이 담긴 책을 내고 싶었죠.” 그해 7월 일본의 교육자이자 작가인 하이타니 겐지로의 장편소설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를 첫 책으로 내놨다.
“아이들은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잘해낼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존재”라 믿는 선생님 이야기는 입소문을 타고 팔리기 시작했다. 이 책이 지금까지 25만부가 팔렸다. 2003년에 낸 <부모와 아이 사이>(하임 기너트 외 2명 지음)는 2006년 한 시사프로그램에 ‘감정코치법, 부모와 자녀의 대화법’ 지침서로 소개되면서 35만부가 팔렸다. 12년 동안 <진정한 일곱 살>, <부모 역할 훈련>, <사랑의 매는 없다>, <이오덕 일기>, <멜트다운>, <충청도의 힘>, <부모의 자존감> 등 어린이, 청소년, 교육, 문학, 교양 분야 180종의 책을 냈다. 25일에 나온 어린이책 <생명의 릴레이>가 딱 180번째 책이다.
‘장사를 잘하는’ 출판사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양철북은 광고를 거의 하지 않는다. 일부 매체에는 신간 보도자료조차 보내지 않는다. 온오프 서점과의 마케팅, 홍보 활동도 거의 하지 않는다. “광고를 안 하다 보니 신간 판매가 매출에 미치는 영향은 20% 안쪽이에요. 책이 나오고 알려지는 데 시간이 걸리다 보니 책이 나온 다음해나 돼야 매출이 발생할 거라 기대하는 편이죠.” 조재은 대표가 무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데도 초기 3~4년 동안 낸 책은 대부분 3만~5만부가 팔렸다고 한다. 좋은 책은 알려지기 마련이라는 뚝심이 통했다.
“책 속 철학과 삶의 철학 같게”
주방직원 뽑아 8년째 함께 식사
‘인간적 교육이 가장 진보적’ 기치
입소문만으로 책 수만부 팔려
광고할 돈 모아 독서감상 대회도 대신 광고에 쓸 돈을 모아 매년 전국 독서감상문 대회를 열었다.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수상자들을 모아 방학 때 일본, 베트남 등 해외로 문학 기행, 평화 기행을 떠났다. 수익을 독자들과 나누자는 뜻에서였다. 그렇게 인연을 맺은 독자들 350명 정도가 지금껏 온라인 카페를 꾸려 책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런데 올해 8년 만에 처음으로 대회를 열지 못했다. 늘 꾸준히 팔리던 책들인데, 지난해 첫 적자가 났다. “시장이 그만큼 안 좋다는 증거”라고 조 대표는 말했다. 2006년 지금의 서교동 양옥집으로 이사를 했다. 6개의 방을 대표를 포함해 10명의 직원이 나눠 쓰고 있다. 방마다 창문이 있고 볕이 잘 든다. 정원이나 2층 테라스에 나가 바람을 쐴 수도 있다. 직원들과도 “과로하지 말자”고 한다. 초기 5~6년 동안은 한달에 한권씩 책을 냈고 현재는 한달에 두권을 낸다. ‘아무 생각도 하지 말기’라는 주제로 전 사원이 울릉도 여행을 떠나 하루에 다섯번 술을 마시며 알딸딸한 상태로 지내보기도 하고 다 같이 김장을 담근 뒤 막걸리 파티를 열기도 한다. 책 속 철학과 삶의 철학이 달라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다. 몇년 전부터는 번역서보다 국내 작가의 책 비중을 높이려 하고 있다. 70% 이상을 국내서로 하기 위해 저자 섭외, 기획, 편집에 더 공을 들이고 있다. 또 한가지 변화가 있다. “저희 세대는 그야말로 폭력 속에 자라났다고 생각해요. 가정, 학교, 사회까지 모두 소통할 줄 모르고 폭력적이었죠. 그동안 그런 세대에게 인간을 위한 교육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데 힘을 썼는데 이제는 세대가 바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세대에 맞는 좋은 교육서, 교양서를 고민하고 있어요.” 지난 3년 동안 85년생 젊은 편집자와 디자이너 셋을 잇달아 선발한 이유이기도 하다. 박시영(27) 편집자는 “양철북은 지위에 상관없이 수평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이라서 “자유롭고 따뜻하다”고 말했다. 그러고 보면 ‘좋은 책 만드는 공동체’의 구수한 향기가 책 속에 스미는 듯하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주방직원 뽑아 8년째 함께 식사
‘인간적 교육이 가장 진보적’ 기치
입소문만으로 책 수만부 팔려
광고할 돈 모아 독서감상 대회도 대신 광고에 쓸 돈을 모아 매년 전국 독서감상문 대회를 열었다.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수상자들을 모아 방학 때 일본, 베트남 등 해외로 문학 기행, 평화 기행을 떠났다. 수익을 독자들과 나누자는 뜻에서였다. 그렇게 인연을 맺은 독자들 350명 정도가 지금껏 온라인 카페를 꾸려 책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런데 올해 8년 만에 처음으로 대회를 열지 못했다. 늘 꾸준히 팔리던 책들인데, 지난해 첫 적자가 났다. “시장이 그만큼 안 좋다는 증거”라고 조 대표는 말했다. 2006년 지금의 서교동 양옥집으로 이사를 했다. 6개의 방을 대표를 포함해 10명의 직원이 나눠 쓰고 있다. 방마다 창문이 있고 볕이 잘 든다. 정원이나 2층 테라스에 나가 바람을 쐴 수도 있다. 직원들과도 “과로하지 말자”고 한다. 초기 5~6년 동안은 한달에 한권씩 책을 냈고 현재는 한달에 두권을 낸다. ‘아무 생각도 하지 말기’라는 주제로 전 사원이 울릉도 여행을 떠나 하루에 다섯번 술을 마시며 알딸딸한 상태로 지내보기도 하고 다 같이 김장을 담근 뒤 막걸리 파티를 열기도 한다. 책 속 철학과 삶의 철학이 달라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다. 몇년 전부터는 번역서보다 국내 작가의 책 비중을 높이려 하고 있다. 70% 이상을 국내서로 하기 위해 저자 섭외, 기획, 편집에 더 공을 들이고 있다. 또 한가지 변화가 있다. “저희 세대는 그야말로 폭력 속에 자라났다고 생각해요. 가정, 학교, 사회까지 모두 소통할 줄 모르고 폭력적이었죠. 그동안 그런 세대에게 인간을 위한 교육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데 힘을 썼는데 이제는 세대가 바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세대에 맞는 좋은 교육서, 교양서를 고민하고 있어요.” 지난 3년 동안 85년생 젊은 편집자와 디자이너 셋을 잇달아 선발한 이유이기도 하다. 박시영(27) 편집자는 “양철북은 지위에 상관없이 수평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이라서 “자유롭고 따뜻하다”고 말했다. 그러고 보면 ‘좋은 책 만드는 공동체’의 구수한 향기가 책 속에 스미는 듯하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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