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실에서 만난 이매진 사람들. 왼쪽부터 오혜진 디자이너, 최예원 편집자, 정철수 대표, 김둘미 마케터, 기인선 편집자. 또 한 사람 김성현 편집자는 휴가 중이어서 함께하지 못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작지만 강한 출판사 ⑦ 이매진
소수자들의 목소리 대변에 주력
‘희망의 인문학’ ‘감정노동’ 등 성과
신진필자 발굴 발빠른 기획물 내놔 이매진의 출판철학 또는 모토는 “새로운 세계를 상상하라”는 것이다. 비틀스 멤버 존 레넌의 노래 ‘이매진’을 떠올리게 하는데, 정철수(40) 대표는 회사 이름도 바로 그 노래에서 따왔다고 했다. 정 대표는 정치학 석사과정을 마친 뒤 출판사 ‘이후’ 등에서 일하다 10년 전 1인 출판사로 이매진을 시작했다. 후마니타스, 갈라파고스, 뿌리와이파리 등의 역사도 10년 안팎인데, 모두 서울 마포구의 이웃에 포진해 있다. “노무현 정권 출범 전후인데, 진보담론을 펴나가겠다는 의지 같은 걸 공유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출판사업도 시대 분위기나 기운의 영향을 받을 테니까요.” 합정동 주택가 연립주택 3층에 작업장을 차린 지 2년쯤 된 이매진에는 정 대표 외에 5명이 함께 일하는데 모두 여성들이다. 주 5일 근무에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나인 투 파이브’다. 야근 없고, 출판기념회 없고, 저녁 회식도 없는 ‘3무’가 이매진 근무 원칙. “기념회와 회식도 직원들에겐 업무연장일 수 있어서 부담이 됩니다.” 아예 없애버리고 자율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인문사회 분야 책을 많이 내지만 분야에 구애받지 않는 종합출판을 지향한다. ‘어느 성폭력 생존자의 빛나는 자유 일기’라는 부제가 붙은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는 단기간에 1만부 넘게 팔렸다. 노숙자, 빈민, 죄수 등 최하층 약자들에게 정규 대학 수준의 인문학을 가르치는 ‘클레멘트’ 코스를 소개한 <희망의 인문학>은 2만부 이상 나간 이매진 간판 도서다. <감정노동>도 1만부 이상 나갔고, 5천부를 넘긴 책들이 10여종 된다. 파리코뮌에서 러시아혁명까지 세상을 바꾸려던 사람과 사상 얘기를 담은 <핀란드역으로>도 2쇄를 찍었고, 1970년대 여성 노동자들 얘기인 <여공 1970>도 좋은 평을 받았다. 이매진은 지금까지 206종의 책을 냈다. 정 대표는 “외국책 번역서 비중이 절반 이하로 낮은 편이고, 국내 신진 필자들을 많이 발굴한다”고 했다. 그래서 출판 속도가 빠르고 출간 종수도 많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은 서울 은평구에서 같은 이름의 헌책방을 운영하면서 자신이 읽은 책만 판매하는 윤성근씨가 쓴 책인데, 5천부 가까이 나갔다. “잘나가는 기성 필자 모시기 경쟁 때문에 인문사회 분야 선인세도 굉장히 높아졌어요. 야구도 3할대면 잘 치는 것 아닌가요. 다 홈런을 칠 순 없잖아요. 1만부, 5천부짜리 내놓으라고 닦달하느니 1천부 팔릴 책 2천부 팔리게 만드는 게 더 낫다는 생각입니다.” 연간 매출은 5억원 정도. “적자는 없었는데, 올봄에 처음 월별 적자가 났다”고 했다. 그래도 빚이 없고 매출이 완만한 상승곡선을 그려왔기에 연간 적자는 면할 것으로 내다봤다. 나름의 대책도 세웠다. <과로사회> 등 지금까지 3권이 나온 ‘이매진 시시각각’ 시리즈도 그중 하나다. 200쪽 안팎에 1만원 정가의, 월간지 별책부록 같은 느낌의 발빠른 기획물이다. “출판사 간부들이 인문출판을 너무 어렵게, 고답적으로 바라보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듭니다. 필자는 교수 아니면 안 된다는 식으로 말이죠.” 그런 걸 깨보겠다는 도전의식이 있다. 하반기에 나올, 번역이 끝난 <감정노동> 후속작에도 기대를 건다. 정 대표는 “출판사는 좀 편향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소수자, 진보정당에 관심이 많았다. “지금이 그들에겐 어려운 시절이지만 시대는 늘 변합니다. 생존하라, 그러면 또 때가 올 것이다. 그런 정신으로 소수자의 목소리를 대변할 겁니다.”
그는 출판계의 필자 빼앗기 경쟁에 편승해 몸값 올리기 식 책 내기에 나서는 잘나가는 진보진영 필자들에게도 일침을 가했다. “괜찮은 군소 출판사 살리는 차원에서라도 출판사 좀 가려가며 책을 냈으면 좋겠어요. 프랑스를 대표하는 갈리마르나 독일의 주어캄프가 그냥 만들어졌겠습니까.”
숙원인 출판인 어린이집 얘기도 했다. “서교·동교·합정동 지역에라도 출판노동자들을 위한 어린이집 하나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여성 노동자가 많은 출판계에서 육아 때문에 생기는 경력 단절 문제도 해소할 수 있습니다. 업계도 노력해야겠지만 정부나 지자체가 나서야 합니다. 출판문화산업진흥원도 그런 일 지원하거나 주선하는 게 본업일 텐데,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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