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출판 승산의 김슬기 편집자, 송선경 총무부장, 황승기 대표, 김대환·황은실 편집자(맨 왼쪽부터 시계방향).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작지만 강한 출판사 ④ 승산
16년째 수학·물리학 전문서 고집
‘파인만’ 저작권 따내는 데만 6년
“공부하며 책 내니 재밌고 행복” 자기가 만든 책을 30번씩 읽는 사람이 있다. 그저 읽고 또 읽는 것이 아니다. 책의 주제에 대해 공부하고 한 번 읽고, 더 공부하고 한 번 더 읽으며 조금씩 더 이해해가는 재미를 느낀다고 한다.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 <엘러건트 유니버스>, <아름다움은 왜 진리인가>, <대칭과 아름다운 우주> 등 정통 과학서를 전문으로 출판하는 도서출판 승산의 황승기(67) 대표다. 승산은 올해로 16년이 된 출판사다. 그동안 흔들림 없이 수학·물리학 전문서를 내왔다. “내 디엔에이에 책 만들고 살라고 새겨져 있는 것인지, 외국의 과학서를 읽고 공부하고 책을 내고 또 공부하는 것이 행복하고 재미있다”고 황 대표는 말했다. 지금은 편집자 3명과 함께 일하고 있다. 김슬기(25) 편집자는 전기공학을, 황은실(25) 편집자는 화학을 전공했다. 유일한 문과 출신인 김대환(30) 편집자는 독일어를 잘해 독일 과학서를 눈여겨보고 있다. 10년 넘게 출판사 살림살이를 도맡아온 송선경(58) 총무부장은 “황 대표는 읽고 싶은 책을 너무 엄청나게 사들여서 탈”이라고 말했다. 1970년대 서울대 과학교육학과를 다닌 가난했던 청년 황승기는 생계를 위해 학원 강사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단과반에서 수학을 가르치며 짬짬이 양자물리학같이 교과서에는 없는 최근 과학의 흐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학생들의 눈빛이 빛났다. 그의 강의는 인기를 끌었고, 그는 학원가에서 이름을 날렸다. “돈을 좇는 일은 그만하고 싶어서” 출판사를 차리고부터는 지적 허기를 채워줄 수 있는 수준 높은 과학도서를 내겠다고 다짐했다. 수백년 전 이론만 즐비한 수학, 과학 교과서를 보며 교육자들이 먼저 읽고 공부할 수 있는 책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인터넷도 피시통신으로 하던 90년대 말, 그는 인터넷 접속 끊김이 덜한 새벽 시간에 미국 온라인 서점인 아마존을 몇시간씩 누비며 우리나라에 소개할 만한 과학서를 찾아 헤맸다. 1997년 출판사를 차릴 당시에는 일단 혼자서 기획·편집·영업을 도맡을 생각이었다. 요즘 말로 ‘1인 출판사’였던 셈이다. 미국 대학(예일대)에서 수학을 전공하던 아들이 들고 온 <파인만의 여섯가지 물리 이야기>의 저작권을 가져오느라고 출판 등록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부터 뛰어다녔다. 기존 출판물이 없는 신생 출판사가 이 책의 저작권을 따는 데는 6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그는 탐내던 책들을 하나씩 출판해 나갔다. 승산의 첫 책인 <우리 수학자 모두는 약간 미친 겁니다>와 <엘러건트 유니버스> 등 초창기에 낸 몇 권의 책이 과학서로는 믿기지 않는 성공을 거뒀다. 검증된 필자의 저작들인 만큼 국내 수요가 있었던 셈이다.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수준 높은 과학서를 번역할 만한 번역가를 구하기 쉽지 않았던 것이다. 초기에는 영문학 전공 대학원생들을 번역에 동원했다가 호되게 실패한 적도 있다. 이제는 전문 번역가 시스템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승산은 몇년째 최신 수학의 핵심 개념인 ‘대칭’과 21세기 물리학의 화두인 ‘양자물리학’을 제대로 알리는 데 매진하고 있다. 황 대표는 “2008년 일본계 미국인과 일본인 학자 3명이 노벨 물리학상을 받을 때 그들이 연구했던 주제가 대칭”이라며 “대칭을 제대로 아는 것은 현대 수학과 과학 전반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승산은 <대칭>, <우주의 탄생과 대칭> 등 노벨상 수상자를 포함한 세계적인 저자들이 낸 ‘대칭 시리즈’ 6권을 펴냈다. 황 대표는 “돈 되는 책에 경쟁 붙어 선인세 높여가며 책을 내느니 내용이 훌륭한데도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아무도 안 내는 책을 내는 것이 승산의 존재 이유”라고 말했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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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만’ 저작권 따내는 데만 6년
“공부하며 책 내니 재밌고 행복” 자기가 만든 책을 30번씩 읽는 사람이 있다. 그저 읽고 또 읽는 것이 아니다. 책의 주제에 대해 공부하고 한 번 읽고, 더 공부하고 한 번 더 읽으며 조금씩 더 이해해가는 재미를 느낀다고 한다.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 <엘러건트 유니버스>, <아름다움은 왜 진리인가>, <대칭과 아름다운 우주> 등 정통 과학서를 전문으로 출판하는 도서출판 승산의 황승기(67) 대표다. 승산은 올해로 16년이 된 출판사다. 그동안 흔들림 없이 수학·물리학 전문서를 내왔다. “내 디엔에이에 책 만들고 살라고 새겨져 있는 것인지, 외국의 과학서를 읽고 공부하고 책을 내고 또 공부하는 것이 행복하고 재미있다”고 황 대표는 말했다. 지금은 편집자 3명과 함께 일하고 있다. 김슬기(25) 편집자는 전기공학을, 황은실(25) 편집자는 화학을 전공했다. 유일한 문과 출신인 김대환(30) 편집자는 독일어를 잘해 독일 과학서를 눈여겨보고 있다. 10년 넘게 출판사 살림살이를 도맡아온 송선경(58) 총무부장은 “황 대표는 읽고 싶은 책을 너무 엄청나게 사들여서 탈”이라고 말했다. 1970년대 서울대 과학교육학과를 다닌 가난했던 청년 황승기는 생계를 위해 학원 강사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단과반에서 수학을 가르치며 짬짬이 양자물리학같이 교과서에는 없는 최근 과학의 흐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학생들의 눈빛이 빛났다. 그의 강의는 인기를 끌었고, 그는 학원가에서 이름을 날렸다. “돈을 좇는 일은 그만하고 싶어서” 출판사를 차리고부터는 지적 허기를 채워줄 수 있는 수준 높은 과학도서를 내겠다고 다짐했다. 수백년 전 이론만 즐비한 수학, 과학 교과서를 보며 교육자들이 먼저 읽고 공부할 수 있는 책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인터넷도 피시통신으로 하던 90년대 말, 그는 인터넷 접속 끊김이 덜한 새벽 시간에 미국 온라인 서점인 아마존을 몇시간씩 누비며 우리나라에 소개할 만한 과학서를 찾아 헤맸다. 1997년 출판사를 차릴 당시에는 일단 혼자서 기획·편집·영업을 도맡을 생각이었다. 요즘 말로 ‘1인 출판사’였던 셈이다. 미국 대학(예일대)에서 수학을 전공하던 아들이 들고 온 <파인만의 여섯가지 물리 이야기>의 저작권을 가져오느라고 출판 등록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부터 뛰어다녔다. 기존 출판물이 없는 신생 출판사가 이 책의 저작권을 따는 데는 6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그는 탐내던 책들을 하나씩 출판해 나갔다. 승산의 첫 책인 <우리 수학자 모두는 약간 미친 겁니다>와 <엘러건트 유니버스> 등 초창기에 낸 몇 권의 책이 과학서로는 믿기지 않는 성공을 거뒀다. 검증된 필자의 저작들인 만큼 국내 수요가 있었던 셈이다.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수준 높은 과학서를 번역할 만한 번역가를 구하기 쉽지 않았던 것이다. 초기에는 영문학 전공 대학원생들을 번역에 동원했다가 호되게 실패한 적도 있다. 이제는 전문 번역가 시스템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승산은 몇년째 최신 수학의 핵심 개념인 ‘대칭’과 21세기 물리학의 화두인 ‘양자물리학’을 제대로 알리는 데 매진하고 있다. 황 대표는 “2008년 일본계 미국인과 일본인 학자 3명이 노벨 물리학상을 받을 때 그들이 연구했던 주제가 대칭”이라며 “대칭을 제대로 아는 것은 현대 수학과 과학 전반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승산은 <대칭>, <우주의 탄생과 대칭> 등 노벨상 수상자를 포함한 세계적인 저자들이 낸 ‘대칭 시리즈’ 6권을 펴냈다. 황 대표는 “돈 되는 책에 경쟁 붙어 선인세 높여가며 책을 내느니 내용이 훌륭한데도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아무도 안 내는 책을 내는 것이 승산의 존재 이유”라고 말했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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