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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6월 13일 잠깐독서

등록 2009-06-12 19:36수정 2009-06-12 19:37

〈미디어아트-예술의 최전선〉
〈미디어아트-예술의 최전선〉




최첨단 디지털 속에서 만난 예술

〈미디어아트-예술의 최전선〉

얼마 전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한 가족이 ‘인터넷 없이 1달 살기’를 시도했다. 결과가 흥미롭다. 디지털 네트워크에서 떨어져나온 그들은 풍부한 소통보다는 소외감을 경험한다. 21세기 디지털은 어느새 눈·귀 같은 하나의 ‘감각기관’ 노릇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기술이 인간의 피와 살로 녹아든 지금, 예술은 어디로 가고 있나? <미디어아트-예술의 최전선>은 그 답을 현장에서 찾는다. 이 책은 한국예술종합학교가 열었던 국제학술대회의 산물로, 대표적 미디어아티스트 8명의 강연과 인터뷰가 실려 있다.

이들의 목소리는 예술-과학-산업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시대를 생생히 담고 있다. 위성 위치정보 시스템 지피에스(GPS), 원거리 정보를 인식하는 아르에프아이디(RFID) 기술 등이 예술로 태어나는 현장들은 흥미진진하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한 미디어아트 소개를 넘어서, 제프리 쇼의 말처럼 “소프트웨어를 구축하는 능력인 디지털의 본질” 탐구가 핵심이다. 첨단의 하드웨어가 있다 하더라도 기계와 인간 혹은 인간과 인간을 연결하는 상상력 없이 디지털은 그저 기계 덩이에 불과한 것처럼 결국 디지털은 ‘소통’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이들은 지적한다.

이 책은 한예종이 엔지니어와 아티스트 그리고 인문학도가 함께 읽을 수 있는 통합적 텍스트를 생산하겠다는 야심찬 기획으로 추진한 ‘유비쿼터스 아트와 테크놀로지’ (UAT) 시리즈의 두 번째 권이다. 그러나 최근 문화부가 관련 예산을 일방적으로 끊으면서 시리즈의 지속 여부는 미궁에 빠졌다. ‘소통’은 어디서나 절실하다. 진중권 엮음/휴머니스트·1만8000원. 윤은숙 기자 sugi@hani.co.kr


머리의 진보에서 생활의 진보로

〈새로운 진보의 길〉
〈새로운 진보의 길〉
〈새로운 진보의 길〉

2008년 11~12월, 한국사회의 지속 가능한 진보의 방향과 방법을 모색하는 사회과학자들이 매주 모여 ‘좋은정책포럼’ 토론회를 열었다. <새로운 진보의 길>은 김형기(경북대 경제학), 김윤태(고려대 사회학), 김호기(연세대 사회학), 임혁백(고려대 정치학), 유종일(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 이태수(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 박태주(한국노동교육원), 김근식(경남대 북한학) 등 다양한 분야의 소장학자 10여명이 당시 발표한 글들을 보완해 단행본으로 엮은 책이다. 시대와 맞지 않는 ‘낡은 진보’나 ‘근본주의 진보’는 유용하지 않다. 당장 민중의 삶의 질을 높이고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는 ‘실사구시적 진보’의 정책담론과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이 책의 출발점이자 목적지다.

김호기 교수는 자유시장 경제가 아닌 조정시장 경제를 통해 새로운 성장과 더 많은 기회, 질 높은 정의를 구현하자고 말한다. 이를 위해선 분석을 넘어선 전망, 레토릭을 넘어선 콘텐츠, 담론을 넘어선 정책, 단기를 넘어선 장기적 기획과 실천이 중요하다. 김윤태 교수가 민주정부 10년의 공과에 대한 냉철한 평가로 교훈을 얻고 구체적 정책 생산을 위한 싱크탱크를 강화하자고 역설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임혁백 교수는 경계가 무너지고 연대가 강조되는 시대적 흐름에 걸맞은 ‘신유목적 민주주의’와 통일한국을 대비한 ‘신연방주의’를 제안한다. 유종일 박사는 경제성장에 대한 진보 진영의 “매우 적극적인 입장”을 주문한 뒤, 지속 가능한 성장의 조건으로 안정성장·동반성장·혁신성장·책임성장을 강조한다. 김형기·김윤태 엮음/한울·2만3000원.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우리 모두의 역사’를 새로 쓰다

〈세계사의 새로운 대안, 거대사〉
〈세계사의 새로운 대안, 거대사〉
〈세계사의 새로운 대안, 거대사〉

“우리가 등장함으로써 새로운 수준의 복잡성이 나타났다.” 역사학자인 지은이가 이 책에서 ‘인류 시대’ 진입을 묘사하는 대목이다. ‘우리’는 호모사피엔스부터 현대 인류까지 모두를 포괄하는 대명사다. 학창 시절 역사시간에는 선사와 역사를 구분하고, 동양사와 서양사, 고대-중세-근대-현대를 나눠서 배웠다. 그것도 모자라 동아시아사와 서남아시아사가 따로 있었고, 근세와 당대라는 모호한 용어도 등장했다.

이 모두를 합쳐서 간단히 ‘거대사’라고 하자는 ‘통 큰’ 생각은 지구화 현실에 뿌리를 둔다. 우주 탄생까지 아우르고, 국가와 민족 등 한정된 역사 범주에서 벗어나 ‘전 지구적 시민의식’에 기반한 공동의 역사관을 갖자는 제안이다. ‘거대사’의 전체 분량은 그리 길지 않다. 그런데 그중에서 빅뱅(20쪽)부터 시작해, 호모사피엔스의 등장(33쪽)과 농경의 시작(71쪽)까지 할애한 쪽수가 만만치 않다. 100쪽에선 최초의 도시와 국가가 출현하고, 조로아스터교·불교·기독교처럼 넓은 영역으로 확장되는 ‘세계 종교’(112쪽)가 뒤를 잇는다. 새로운 글로벌 교역체제가 등장(124쪽)하면서 아메리카·유럽이 세계사 중심에 서고, 2차대전이라는 거대한 싸움질(163쪽)로 세계 인구 3%가 희생된다. 인류는 급기야 “스스로를 파괴시킬 수 있는 힘과 지구라는 행성에 막대한 손상을 줄 수 있는 힘”(182쪽)마저 갖게 된다. 역사 공부를 통해 우리는 지금 서 있는 좌표를 파악하려 한다. 그런 점에서 거대사는 지구화 시대와 참 잘 어울리는 짝인 듯하다. 데이비드 크리스천 지음·김서형 외 옮김/서해문집·1만1900원.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권력의 핵심에는 ‘개’가 산다

〈타워〉
〈타워〉
〈타워〉

674층 높이에 인구 50만을 수용하는 타워 도시국가인 빈스토크. 독자적인 군대도 보유하고 있고 우주 관련 첨단 서비스의 메카로 유명하다. 이 도시의 미세권력연구소는 시장 선거를 앞두고 야당 선거사무소로부터 빈스토크의 권력 분포 지도를 그려 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이에 연구소는 35년산 고급 술에 전자 태그를 붙여 상류사회에 유통시킨다. 고급 술은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한 선물로 많이 사용되는데다, 보통 선물로 들어오면 자신이 소비하지 않고 또 더 잘 보이고 싶은 사람에게 전해주기 때문이다. 이 술들의 이동경로를 파악해 권력의 분포도를 파악하겠다는 게 연구소의 의도다. 그런데 이 술 중 다섯 병이 487층 A57구역에 전해진 뒤 전혀 이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입주자 주소록에는 ‘영화배우 P’라고 돼 있다. 그가 권력의 정점이거나, 아니면 술꾼이어서 자기가 다 먹겠다는 심산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집을 찾아가본 결과, 주거자는 사람이 아니라 ‘개’였다. 연구는 미궁에 빠지고 만다. 일부 연구원들은 ‘개를 빼버리고 분포도를 그리자’고 제안했지만, 그렇게 지도를 그려보면 영 비현실적인 분포도가 그려졌다. 개를 포함해 이동경로를 넣어야지만, 연구소가 예상한, 그리고 다른 연구에 의해서도 증명이 된 권력 분포도가 그려지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권력의 중심에 ‘개’가 있는 것이다! <타워>는 이 빈스토크를 배경으로 한 6개의 단편을 묶은 옴니버스 소설집이다. 신인 작가 배명훈씨의 대담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집으로, 유머와 풍자로 정교하게 빚어낸 한 편의 블랙코미디와 같다. /오멜라스·1만원. 강김아리 기자 ari@hani.co.kr

책으로 다독이는 마음의 상처

〈아픈 영혼, 책을 만나다〉
〈아픈 영혼, 책을 만나다〉
〈아픈 영혼, 책을 만나다〉

아파하는 영혼들이 모인다. 함께 같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눈다. 저마다 마음이 흔들리고 눈물이 터져나오는 부분은 다르다. 한 사람이 고통을 털어놓고 다른 이들은 진심 어린 조언을 해주면서 수십년 동안 부정하고 감춰왔던 마음속 상처에 함께 약을 바르고 치유해 간다. 이 책은 4년 동안 독서치료에서 만난 사람들이 책을 통해 인생과 화해하는 이야기다. 한 중년 남성은 <괭이부리말 아이들>을 읽으며 장남이라서 한 번도 엄마 품에서 어리광부리지 못한 아픔을 털어놓고, 서른다섯 살 한 여성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읽으며 바쁜 부모를 대신해 다섯 살 때부터 집에 갇혀 동생을 돌보아야 했던 ‘버려짐의 아픔’, 다시 버려질까봐 남편을 거부했던 두려움을 쏟아내며 운다. 지은이 김영아씨는 유명 논술강사였다. 논술 스터디 그룹을 이끌면서 책이 아이들 마음속에 똬리를 튼 아픔을 들여다보는 좋은 통로가 된다는 것을 느꼈다. 상담심리학을 공부하던 시절 서점에서 우연히 <외딴방>을 잃고 목놓아 울면서 어린 시절 엄마의 사랑에 목말랐던 아픔을 한순간에 흘려보냈다. 이후 책을 통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모임을 이끌고 있다. 우리는 안다. 다들 멀쩡해 보이지만 마음속에는 상처받은 아이가 울고 있다. 세상의 요구에 맞춰 최선을 다해 달리고 있지만, 마음은 안다. 행복하지 않은 마음이 자신과 주변에 상처를 주고 있다는 것을. 때론 이 그림자가 괴물이 되어 인생을 짓누르는 것을. 그래서 이 책 속 주인공들이 마음을 치유하는 과정은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읽는 우리 또한 마음을 돌아보고 안아줄 기회를 얻게 된다. /삼인·1만1000원.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산촌생활에서 퍼올린 환경생각

〈날아라 새들아〉
〈날아라 새들아〉
〈날아라 새들아〉

20년 동안 환경운동을 해온 최성각 풀꽃평화연구소장이 서울 마포와 춘천 퇴골을 오가며 쓴 환경 산문집이다. 1990년대 말 환경단체 ‘풀꽃세상’을 창립한 그는 주류 환경운동과 거리두기를 하면서 시골생활을 통해 자연 속으로 들어갔다. 책에는 거위와 닭을 치며 뱀과 싸우고, 땔감을 모으는 등 몸으로 생각을 짓는 지은이의 ‘하방’ 생활 성찰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함께 사는 오리, 닭, 개 등의 짐승과 가래나무, 뽕나무 등 조용한 것들에 대한 관찰과 대화가 담겨 있으며, 마을 사람들과 산촌의 시간과 일상에 관한 훈훈한 에피소드들이 기록돼 있다.

지은이는 산촌의 고즈넉한 풍경을 그리는 동시에, 환경의 위기와 환경운동의 위기, 주류 환경운동 판에 대한 날선 비판도 마다지 않는다. 또 경제와 성장 지상주의가 맞물린 녹색성장에 대해선 신랄한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마지막 장에는 21세기 ‘풍요로운 궁핍의 시대’에 문학과 예술, 글쓰기와 세계관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묻는 성찰적인 산문을 품고 있다. 이 책에는 1667년 어느 날 아프리카 모리셔스 섬에서의 ‘마지막 도도새’에서부터 지난해 한국 사회를 뒤흔든 ‘미네르바’에 이르기까지 역사와 주제의 종횡을 넘나든다. 또 ‘부자 되세요’라는 인사가 횡행하는 물신의 시대를 피하고 싶지만, 어찌할 수 없는 슬픔을 안고 견뎌내는 시대의 도시인들에게,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지은이를 통해 대리만족을 안겨주기도 한다. 지은이가 이 책의 제목으로 붙인 윤석중 선생의 어린이날 동요 <날아라 새들아>는 그 자신의 바람인 동시에 잃어버린 하늘에 대한 독자의 염원이기도 한 듯하다. 최성각 지음/산책자·1만2000원. 권태호 기자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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