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과 함께 만든 대한민국〉
참여정부, 차분히 다시 바라보다
〈노무현과 함께 만든 대한민국〉
2007년 6월2일. 두 시간으로 예정되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 평가포럼 강연은 끝없이 길어졌다. 그해 여름 내내 작업 끝에 펴낸 <있는 그대로 대한민국>을 설명하는 자리였다. 그는 원고지 380장 분량을 토해냈다. 지식공작소는 이를 함께 엮어 지난달 29일 <있는 그대로 대한민국>의 문패를 <노무현과 함께 만든 대한민국>으로 바꿔 달아 다시 펴냈다. 고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 날이었다.
“지난 4년 내내 위기, 파탄, 실패란 말로 흔들었습니다. 제 대답은 ‘증거로 말합시다’ ‘지표로 말합시다’입니다 … 보니까, 올라가야 할 것은 다 올라가고 내려가야 할 것은 다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참여정부를 ‘있는 그대로’ 봐왔던 것일까? 책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그에 대한 ‘미안함, 안타까움’과 그를 죽음으로 몰아간 것들에 대한 ‘분노, 심판’으로 응어리진 감정의 차원을 넘어서 그와 참여정부에 대한 차분한 재평가를 돕는 중요한 텍스트라 할 만하다.
노 전 대통령 스스로 “제일 시비가 많은 분야”라고 밝혔던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원칙을 붙들고 바위처럼 버티었습니다. 지금 그 분야는 진일보하지 않았습니까?”라고 ‘다시 봐주기’를 호소했다. 책은 “참여정부를 말할 수 있는 모든 지표”(문재인 전 대통령 비서실장)를 바탕으로 한 체계적 호소이자, 참여정부의 출발과 존재 자체를 부정했던 일부 언론과 야당의 비난과 비방에 대한 항변을 담고 있다. 책을 엮은 이들이 말한 것처럼 “소리는 투박하지만 그 뜻이 아름답다.” 16대 대통령비서실 엮음/지식공작소·9000원.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그리스·로마 고전의 결정체 〈에라스무스 격언집〉
‘그리스·로마 고전 문학과 동서양 명화 패러디의 맛있는 비빔밥’ <에라스무스 격언집>을 요약하라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이 책의 원작인 <격언집>은 신학자이며 고전학자였던 에라스뮈스가 반세기 전 그리스·로마 고전 문학에 등장하는 격언, 속담, 경구를 집대성한 책이다. ‘인생은 나그넷길’ ‘옷이 날개’ ‘유유상종’ ‘시작이 반이다’ ‘너 자신을 알라’ 등 우리에게 익숙한 격언들이 그리스·로마 고전 속에 생생하게 녹아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흥미롭다. 격언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그리스·로마 고전을 찾아보는 것도 재밌겠다. 당시 이 책이 나왔을 때는 인문주의가 무르익고 있어, 이 책은 인쇄술이 발명된 후 유럽의 첫번째 베스트셀러가 됐다고 한다.
우리말로 국내에 첫선을 보이는 이 책은 서양 고전학자 김남우씨가 라틴어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을 했다. 또 <장정일 삼국지> <십자군 이야기> 등으로 유명한 ‘지식 만화가’ 김태권씨가 라틴어 격언과 동서양의 명화를 패러디해 격언마다 삽화를 그려넣고 재밌게 구성했다. 이 책에 실린 총 60편의 삽화들은 김태권씨의 서양 고전에 대한 전문 지식과 미술사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탄생해 더욱 빛난다. 김태권씨는 에라스뮈스가 추린 격언들을 우리나라 속담과 비교하거나 현대적 맥락 속에 재배치함으로서 원작보다 훨씬 풍부한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철학의 대양, 신학의 대양이 담겨 있는” 격언들을 매개체로 그리스·로마 고전을 만나고, 동서양 명화의 고전과 친해지는 일석이조의 기쁨을 누려보는 게 어떨까? /아모르문디·1만4000원.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20세기 엮은 여섯 번의 정상회담 〈정상회담-세계를 바꾼 6번의 만남〉
1938년 체임벌린-히틀러의 뮌헨회담, 1945년 처칠-루스벨트-스탈린의 얄타회담, 1961년 케네디-흐루쇼프의 빈회담, 1972년 브레즈네프-닉슨의 모스크바회담, 1978년 베긴-카터-사다트의 캠프데이비드회담, 1985년 고르바초프-레이건의 제네바회담.
데이비드 레이놀즈 케임브리지대 역사학 교수는 이 6개의 정상회담이 20세기를 엮은 큰 매듭이라고 말한다. 사실 20세기의 역사를 1·2차 대전이라는 열전, 전후 냉전, 그리고 냉전 붕괴로 보면 이 정상회담들은 그 물결을 일으키거나 잠재우는 지점에 있다. 실패한 유화정책의 대명사로 불리는 뮌헨회담은 어쨌든 히틀러의 독일이 팽창정책을 계속한 계기가 됐고, 얄타회담은 그 열전을 끝내면서 냉전의 출발점이 됐다. 빈회담은 미국의 대소봉쇄, 즉 냉전의 악화를 확인한 계기가 됐고, 모스크바회담에 가서야 미소는 냉전의 얼음을 깼다. 캠프데이비드회담은 20세기 후반 국제정치의 한 상수였던 중동문제에서 그 이전까지 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더 큰 과제를 여는 이정표가 됐다. 제네바회담에 가서 20세기는 미-소 양극체제와 냉전을 완전히 종식시키게 된다.
지은이는 각국 정부 문서고에 처박힌 문서들을 찾아내, 당시 회담에서 정상들의 농담 한마디까지 집어내며 그 회담을 분석했다. 항공기의 발달로 인한 물리적 거리 단축과 대량살상의 위험이 과거에는 극히 이례적이던 정상회담을 일상적 외교로 만들고, 이 회담들이 어떻게 하면 성공하고 실패하는가를 6개의 회담은 보여준다. 데이비드 레이놀즈 지음·이종인 옮김/책과함께·2만9000원.
정의길 기자 Egil@hani.co.kr
성·계급·민족 억압, 딛고 서다 〈임순득, 대안적 여성 주체를 향하여〉
<임순득, 대안적 여성 주체를 향하여>는 나혜석과 강경애 등 식민지 시대 ‘신여성’을 조명해왔던 이상경 카이스트 교수가 민족운동의 암흑기였던 1930년대 후반 사회주의 운동을 벌였던 소설가 임순득을 복원한 책이다. 1915년생인 임순득은 1931년 이화여고보 재학 시절 항일의 한 방법으로 동맹휴학을 주도해 퇴학당한 뒤, 1937년 <조선문학>에 단편소설 <일요일>로 등단했다. 그는 대다수 문인들이 친일로 돌아서거나 침묵했던 1940년대에도 지속적으로 반일적인 소설들을 발표했다. 이 교수는 임순득이 이런 과정을 통해 “식민지 여성에게 씌워진 성적·계급적·민족적 억압이라는 삼중의 억압 저편의 새로운 세계를 꿈꾼” 1930년대 ‘신여자’를 대표하는 인물로 부상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이는 “남성의 부속물로서의 여성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인간이 되길 갈망”한 1910년대 ‘신여성’ 나혜석이나, “개인의 해방에서 나아가 고통받는 하층계급과의 연대를 모색한” 1920년대 강경애와 구별되는 점이다. 임순득은 기존의 신여성의 주된 관심이었던 성과 계급 문제에 더해 ‘민족문제’를 본격적으로 고민한 첫 여성세대라는 것이다.
이 책은 1부에서 ‘신여자’ 임순득의 평전을, 2부에서는 그의 소설과 수필 등 작품들을 수록함으로써 ‘낯선 듯 가까운’ 이 여성을 다면적으로 평가할 수 있도록 시도하고 있다. 해방 뒤 북한에서 <조선녀성>을 중심으로 활발히 활동하다, 1956년 ‘8월 종파사건’을 전후로 숙청된 것으로 추정되는 마지막 모습까지도 이 땅의 ‘신여자’가 몸으로 겪어내야 했던 아픔을 상징하는 듯하다. /소명출판·2만7000원.
김보근 기자 tree21@hani.co.kr
지도는 말한다, 시대와 역사를 〈지도, 살아 있는 세상의 발견〉
자동차 내비게이션과 인터넷 위성지도가 생활의 일부가 된 요즘, 지도는 고도의 기술적 성취로만 여겨진다. 보통 사람한테 지도는 이곳에서 저곳으로 가는 데 유용한 도구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지도, 살아 있는 세상의 발견>의 지은이는 지도 진화의 역사 속에서 인간의 진면목을 흥미롭게 추적하고 있다. 지은이에게 지도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비춰주는 거울이나 객관의 중립적 전달자가 아니다. 예술과 기술의 진보뿐 아니라 정치·경제적 변화를 그대로 담아낸 시대의 기록이자 증언이다.
지은이의 안내로 지도의 역사를 쫓아가는 여정은 인류사 주요 장면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재미를 선물한다. 메소포타미아의 점토판 지도는 농경사회의 출현을 알려준다. 중세 서구의 해도와 비슷한 시기의 이슬람·중국 지도는 동시대 다양한 세계관을 비교하는 기회가 된다. 19세기 우리나라의 ‘천하도’(세계지도)는 원형으로 세계를 그리고 한가운데에 한국을 놓고 있다. 탐험 시대와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지도는 지금 우리가 보는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과정은 철저히 정복의 역사와 함께했다. 강대국이 작성한 ‘신대륙’ 지도는 곧 해당 지역에 대한 권리를 의미했다. 제멋대로 국경선을 그었다. 현대에 접어들어서도 지도는 진화를 멈추지 않았다. 대도시 지하철 노선도, 오존층 파괴 지도, 위성지도 등은 현대 문명을 상징한다. 역사책이 아니라 과학책인 만큼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만 있는 건 아니다. 희귀한 지도 사진은 좋은 자료로도 값을 한다. 존 레니 쇼트 지음·김희상 옮김/작가정신·3만8000원.
안창현 기자 blue@hani.co.kr
고통의 직시는 치유의 시작 〈마음치유 여행〉
고3 때, 친구가 실연을 당했다. 주변 친구들이 “지금은 중요한 때다. 무조건 다 잊으라”고 다그쳤다. 친구는 멍한 눈빛으로 “너는 팔 한 짝이 뚝 떨어져 나갔는데, 아무 일 없다는 듯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니”라고 되물었다. 버림받음은 원치 않게 사랑을 잃어버린 상태를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거절당한다는 것은 자신의 신체 일부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은 원초적 고통일 뿐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자존심과 자기애에 심각한 손상을 입힌다. 이는 엄청난 트라우마를 불러 나중에 상처가 아물어도 흉터가 마음 한구석에 깊게 파이게 된다. 이 책은 심리학에서도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던 ‘버림받음’의 트라우마를 조명한 심리서이자, 버림받은 고통에서 벗어나는 실질적 방안을 제시하는 치유서다. 지은이 수전 앤더슨은 25년에 걸쳐 다양한 형태의 버림받음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접한 심리치료사다. 이 책에는 부모에게 버림받고, 애인과 헤어지고, 이혼을 경험한 많은 이들의 다양한 사례가 생생히 담겨 있다. 지은이는 자신의 치료 경험과 임상 연구, 두뇌과학과 심리생물학 분야의 과학적 사실을 바탕으로 버림받은 뒤에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인간 심리의 흐름을 분석했다. ‘버림받음 이후’를 부서짐-금단-내면화-분노-일어섬의 다섯 단계로 구분했다. 이 책은 버림받은 고통에 짓눌려 고통의 근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거나 회피해 버리는 함정을 피하도록 도와준다. 즉 고통을 명료하게 바라볼 때, 비로소 치유는 시작된다는 게 지은이의 주장이다. 버림받은 사람은 모든 에너지를 내부로만 향하게 되는데, 이를 외부로 돌릴 때 극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안인희 옮김/북하우스·1만3800원.
권태호 기자 ho@hani.co.kr
그리스·로마 고전의 결정체 〈에라스무스 격언집〉
〈에라스무스 격언집〉
20세기 엮은 여섯 번의 정상회담 〈정상회담-세계를 바꾼 6번의 만남〉
〈정상회담-세계를 바꾼 6번의 만남〉
성·계급·민족 억압, 딛고 서다 〈임순득, 대안적 여성 주체를 향하여〉
〈임순득, 대안적 여성 주체를 향하여〉
지도는 말한다, 시대와 역사를 〈지도, 살아 있는 세상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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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직시는 치유의 시작 〈마음치유 여행〉
〈마음치유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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