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그림자 금융’ 잡아야 경제 산다
〈불황의 경제학〉
폴 크루그먼은 직설적이다. 빙빙 돌리지 않고 답을 쓴다. <불황의 경제학>에는 그를 노벨경제학상 수상으로 이끈 ‘시장 위기’의 진단과 처방이 거침없는 언설로 담겨 있다. 1999년 아시아 금융위기를 진단한 같은 이름의 책 개정판이다. 한창 진행중인 미국발 세계 경제위기를 보는 시각을 보자. 미국 관료들은 요즘 경제에 희망이 보인다는 말을 자주 쏟아내고 있다. 크루그먼은 “아니다”에서 한발 더 나아가 세상은 지금 지옥으로 가고 있다고 찬물을 붓는다. 이유는? 비상처방의 미흡함이다. 그의 눈에 미국 정부의 대처는 ‘폐렴에 감기약’으로 보인다. 찔끔찔끔 미세조정(fine tuning)하는 방식만으로도 시장을 길들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지금의 위기를 다시 불렀는데도 아직 그런 식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장 개입 최소화, 작은 정부를 미덕으로 삼는 밀턴 프리드먼류의 자유시장 관성을 그 뿌리로 본다. 그는 이데올로기 따지지 말고, 과감하게 시장에 개입하라고 주문한다. 우선 ‘그림자 금융’(투자은행, 신탁회사, 헤지펀드)이 대상이다. 이들은 계속 숙주를 옮겨다니며 거품을 일으키고, 전세계로 바이러스를 확산시키는 주범이다. 일시적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금융 시스템의 상당 부분을 국유화하라는 것도 이들이 타깃이다. 크루그먼의 손을 거치면 복잡한 경제현상도 비교적 명쾌하게 보인다. 비결은 단순화에 있다. 큰 그림도 눈에 쏙 들어오는 작은 그림으로 원리를 설명한다. 불경기 메커니즘은 미국 국회의사당에 근무하는 젊은 부부들이 만든 육아도우미 협동조합의 위기를 통해 들여다본다. 그의 책이 쉽게 읽히는 까닭이다. /세종서적·1만4000원. 함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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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안되는 두 고수의 말 되는 대화
〈강변대화〉
‘대화할 수 없는 사람과 대화하기.’ <강변대화>에 등장하는 두 사람의 면면을 보면 떠오르는 생각이다. 한 사람은 13억 중국 인민을 이끄는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인 자오치정이다. 그 상대방은 미국 보수 기독교계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신학자 루이스 팔라우 목사다. 더욱이 그들이 <성경>과 하느님과 예수에 대해 ‘대화’한다. 이 책의 부제가 말해주듯 “마르크스, 예수를 만난” 것이다. ‘불가능해 보이는 대화’는 팔라우 목사가 2005년 11월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대통령 목사’ 자격으로 중국 방문을 수행하고, 자오치정 중앙위원이 접대자로 나서면서 이루어졌다.
둘은 당연해 보이지만, 서로를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성경>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영감과 계시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는 목사와 <성경>이 수많은 사람의 지혜의 결정체지만 ‘역사서’라고 믿는 공산당원은 서로의 생각을 바꾸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의 ‘대화’는 성공적이었다. 공산주의자는 기독교인이 신을 믿음으로써 많은 곤란을 이겨내고 수많은 궁극적인 물음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었던 점을 인정했다. 목사도 공자와 맹자와 같은 중국 성현의 가르침 속에서도 예수의 가르침과 같은 ‘사랑’과 ‘의로움’이 존재함을 인정한다. 각각 ‘유신론’과 ‘무신론’의 최고 봉우리에 오른 두 사람은 “두 산봉우리가 점점 가까워져야” 하며, 그것이 “지구촌 마을을 더욱 조화롭게” 만드는 것이라는 데서 의견이 일치한다. ‘조화를 위한 대화’는 어떻게 가능할까?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존중”만이 그 해답이라고 답한다. 이상수 옮김/웅진지식하우스·1만3000원. 김보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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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명나라 6명의 ‘세계길’
〈대여행가〉
여행은 마을과 마을, 나라와 나라 사이를 오가는 것. 요즘이야 인터넷으로 정보가 오가지만 그전에는 사람이 직접 이어야 했던 것. 하지만 물류는 사람이 낄 수밖에 없는 점에서 고금이 같다. <대여행가>는 한에서 명나라까지 6명의 여행가 이야기를 엮었다. 중국의 서역 개척에 이바지한 네 인물(장건, 법현, 현장, 정화)이 주 등장인물이고 일본행(감진), 국내여행(서하객)이 끼어 있다.
첫 서역행은 한 무제 때의 장건. 흉노 퇴치를 위해 대월지와 연합전선을 구축하려 떠난 장건 일행은 13년 만에 빈손으로 돌아왔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그한테 묻어온 것들이 더 소중한 것으로 평가됐다. 비단을 서역에 전하고 대신 포도와 석류를 들여오면서 ‘실크로드’를 연 첫 인물이 된 것. 그로부터 420여년 뒤 동진의 승려 법현은 장건보다 더 멀리 아프가니스탄, 카슈미르, 파키스탄, 인도, 네팔, 스리랑카에 이르러 원어 불경을 들여왔으며 뜻하지 않게 해로로 귀환하면서 첫 무역풍 기록자가 됐다. 다시 200년 뒤 당의 승려 현장은 법현의 뒤를 따라 천축국(인도)에 다녀와 손오공과 함께 <서유기>의 주인공이 되었다. 명의 정화는 나침반에 의존해 여섯 차례 바닷길에 올라 아프리카까지 30여개 나라와의 뱃길을 열었다. 돈(비단)과 이념(불경)이 사막과 바다를 건너게 한다는 증거. 어차피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지만, 책은 장건 이전에 실크로드에 ‘흉노’가 있었고, 법현 이전에 중역불경을 들여온 이가 있었으며 정화 이전에 인도 옛 문자인 범어에 ‘비단’의 뜻을 가진 단어를 전한 이가 있었음을 말해준다. 우한 엮음·김숙향 옮김/살림·1만4000원. 임종업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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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가 ‘인간희극’을 중단한 이유는
〈미완의 작품들〉
거장의 위대함을 다시 확인시켜주지만, 끝내 완성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작품들이 있다. 완성작 못지않은 미적 가치는 물론 작품 외적인 사연도 곡진하다. 안토니오 가우디의 <성가족 성당>, 푸치니의 <투란도트>, 발자크의 <인간희극> 따위가 그것들이다. <미완의 작품들>의 지은이는 “작품 제작 과정에 대한 비밀을 완성작보다 더 잘 드러낸다”는 이유로, 이들 미완성작에 주목한다. 물론, 위대한 미완성작은 대부분 죽음과 연결돼 있다. 푸치니는 후두암으로 생을 마감하면서 끝내 <투란도트>를 완성하지 못했다. <성가족 성당>은 가우디의 죽음으로 공사가 중단된 뒤 스페인 내전 속에서 20년간 방치되는 쓰라린 운명을 겪어야 했다. <섬싱스 갓 투 기브>는 메릴린 먼로의 30번째 영화가 될 뻔했다.
발자크의 <인간희극>은 100여편의 소설과 산문으로 구성돼, 2000명이 넘는 인물이 등장하는 방대한 소설집이다. 하지만 계속 새 작품을 덧붙여야 하기에 출발부터 미완성일 수밖에 없었다. 이 밖에 미완성의 이유는 다양하다. 미켈란젤로의 ‘노예상 연작’은 권력자의 변덕에 시달려 중단됐으며, 시에나 성당은 14세기 유럽 전역을 덮친 페스트로 공사가 중단됐다. 벨벳언더그라운드의 ‘잃어버린 앨범’, 프랑스 영화감독 장 르누아르 연출의 단편영화 <시골에서의 하루>, 조르주 페레크의 <‘53일’> 등도 갖가지 사연을 머금고 있음은 물론이다. 지은이는 이런 흥미로운 이야기를 단순히 긁어모은 것에 만족하지 않고, 문학적 해석과 감성을 덧입혀 독자들의 지적 여행을 훌륭하게 안내하고 있다. 이자벨 밀레 지음·신성림 옮김/마음산책·1만4000원. 안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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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갑내기 두 남자의 정신병원 탈출기
〈내 심장을 쏴라〉
공황장애를 앓으며 6년에 걸쳐 입·퇴원을 되풀이해온 ‘나’와 망막세포변성증으로 시력을 잃어가는 전직 패러글라이딩 조종사 승민. 강원도 정선의 산골짜기 정신병원에서 룸메이트로 만난 스물다섯 살 동갑내기들이다. ‘나’는 입원 직후부터 탈출을 시도하는 승민이 부담스럽다. 어떻게든 그를 멀리하려 애쓰지만 자꾸만 그가 일으키는 사건사고에 휘말린다. 이해할 수 없는 건 종잡을 수 없고 거칠기만 한 승민의 행동에 어느 순간부터 내가 무기력하게 순응하고 있다는 점. 승민이란 존재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깊어질수록 바깥세계를 향한 욕망도 커지는데, 과연 ‘우리’의 탈주는 성공할 수 있을까. 승민은 또 왜 죽기살기로 탈출을 시도하는 것일까.
정유정씨의 장편 <내 심장을 쏴라>는 고료가 1억원인 세계문학상의 2009년 수상작이다. 160여편의 경쟁작을 제쳤다. 낯선 소설적 상황과 등장인물의 캐릭터에 친숙해지기까지 다소 인내가 필요하지만, 5분의 1 지점쯤에 존재하는 고갯마루를 넘어서면 스키장의 가파른 슬로프를 활강하듯 거침없이 읽힌다. 치밀한 구성과 속도감 느껴지는 문체, 간호사 경험과 독서로 축적한 전문지식에, 치밀한 현장 취재가 어우러져 정신병원이란 폐쇄공간의 리얼리티를 생생하게 재현했다. 작가는 실제 대학 선배의 주선으로 광주 인근의 한 정신병원 폐쇄병동에서 일주일 동안 환자들과 생활하기도 했다. 황석영·박범선·김형벽·서영채 등 9명의 심사위원은 이 작품에 “생에 대한 각성이 꿈틀대며, 희망에 대한 끈을 다시 움켜잡게 만드는 마력이 깃들어 있다”고 평했다. 정유정 지음/은행나무·1만1000원. 이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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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인의 삶과 다를 바 없는 명견의 삶?
〈굿 독〉
최근 들어 개·고양이 등 집에서 키우는 동물에게 ‘애완동물’ 대신 ‘반려동물’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장난감처럼 가지고 노는 동물이라는 의미에서 동반자, 가족의 일원으로 존중받는 위치가 된 것이다. 칼럼니스트인 지은이가 15년 동안 함께 살았던 래브라도 리트리버 ‘보’의 죽음을 겪으며 써 내려간 이 짧은 에세이는 왜 ‘애완’이 아니라 ‘반려’인가를 잔잔한 여운과 함께 전한다. 지은이는 개가 없어도 일상을 유지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는 현대의 도시인들에게 개가 하는 가장 큰 구실이 “주인으로 하여금 감정을 이입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주인이 신나거나 기운 없거나 외로우면 자신이 키우는 개도 그럴 거라고 믿는다. 말하자면 “거울처럼 대하는 것”이다. 더구나 말대꾸도 하지 않으면서 그저 부르면 다가와 말갛게 주인의 눈을 쳐다보는 개들은 요즘 같은 언어과잉 시대에 어떤 장애물 없이 “한도 끝도 없이 주인의 거울 역할을 할 수 있다.”
물론 개를 키우는 건 자식을 키우는 것만큼이나 큰 기쁨이면서 어려운 일이다. 배변 훈련을 하면서 “가장 기본적인 신체기능을 칭찬하며 바보가 된 듯한 기분”을 느끼는 것이나, 동생이 태어났을 때나 어린 강아지를 데려왔을 때 맹렬하게 질투하는 큰아이(개)를 설득하는 것도 어른의 몫이다. 지은이는 헌신적으로 살다가 품위 있게 죽어간 보를 지켜보면서 “좀 더 짧고 압축적이라는 것만 다를 뿐, 명견의 삶은 위인의 삶과 다를 바 없다”고 마무리한다. 정감 있는 글과 함께 ‘굿 독’ 보를 비롯해 42장의 아름다운 개 사진들이 마음을 녹인다. 애너 퀸들런 지음·이은선 옮김/갈대상자·7500원. 김은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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