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정치일기-1955~2008년, 한국 현대사와 더불어〉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 ‘실명비판’
〈나의 정치일기-1955~2008년, 한국 현대사와 더불어〉
“학생들을 급진주의라고 비판하면서 그렇게 되게 한 체제를 문제삼지 않게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박해를 받고 있는 사람들의 수중에 있는 작은 폭력을 구실로 삼아 거대한 지배자의 폭력이 끝없이 동원된다.” 1990년 8월 지명관(85) 교수가 베냐민을 인용하며 노태우 정권의 강압적 통치행태와 이를 옹호한 보수신문들을 비판한 이 얘기는 지금 현실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학생들’을 ‘촛불’로 바꿔 놓기만 하면.
지난해 2월 대통령 취임식 전후 상황에 대한 언급으로 끝맺는, 주로 1990년대 이후 한국 정치정세에 대한 단편적 소회들을 일기 형식으로 묶은 <나의 정치일기>에서 지 교수는 “대통령 취임 초의 거대한 기대와 퇴임 때의 보잘것없는 지지도”가 상징하는 한국 정치의 고질적 반복 패턴이 이명박 정권에서 끝나기를 기대했지만, 지금 판세로 보건대 낙관하기 어렵다. 민주화운동의 기념비적 저작인 <한국으로부터의 통신> 필자인 지은이가 민주화 이후 한국을 사유한 이 책에서 김대중·노무현 정권 등장에 감격하고 보수 정치인들과 보수신문들의 지적·문화적 저열함, 그리고 미국·일본의 패권주의적 행태를 준열하게 비판한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그의 정치 좌표는 ‘이명박 세력’을 ‘박정희(박근혜) 세력’과 대립하는 ‘6·3세대’라며 긍정하고, 동아일보 논조를 되풀이하는 등 뒤로 갈수록 우선회하는 듯하다. 거기엔 한국방송공사 이사장 재직 때 목격한 노무현 정권의 자파 사람 심기 등에 대한 반발이 크게 작용한 걸로 읽힌다. 이명박 정권은 한 술 더 뜨고 있으나 일기가 담은 건 1년 전까지다. /소화·2만5000원.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서양인 16명이 바라본 근대 중국
〈근대 중국의 서양인 고문들〉
미국의 장로교 전도사 윌리엄 마틴은 19세기 중반 22살 나이에 선교의 꿈을 안고 중국에 와 89살 숨질 때까지 평생을 보냈다. 빼어난 어학 재능을 발휘한 그는 반년 만에 중국어로 설교하고 1년 반 만에 찬송가를 번역해 냈으며, 5년 뒤에는 사서오경을 완독했다. 그러나 성공적인 선교사는 되지 못했다. 야심차게 시작했던 베이징 선교는 해마다 6~7명을 개종시키는 데 그쳤다. 그는 국제법 책을 번역한 뒤 국제사회 대응책을 모색하던 중국 정부한테 좋은 반응을 얻었다. 뒤이어 종교 수업이 금지된 국립 통역학교 동문관의 교수, 교장에 올랐다. 마흔살 무렵 마틴은 뉴욕의 선교본부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열정적으로 중국의 교육 사업에 여생을 바쳤다.
마틴을 비롯해 이 책에 등장하는 서양인 16명은 모두 과학적·도덕적 우월감을 지니고 17~20세기 중국에 다가갔다. 자신감이 지나친 나머지 중국과 중국인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 것이라 여기기도 했다. 1969년 처음 출간된 이 책의 원제가 <중국을 바꾸기 위해>(미국판), <중국의 조력자들>(영국판)이었던 데서 보듯, 그 이름은 ‘변화’나 ‘도움’이었을지언정 분명 중국을 좀 더 서양처럼 만들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이들이 중국을 이용해 성공을 거두기는커녕 중국이 도리어 이들로부터 필요한 것들을 뽑아갔다는 것이, 미국의 대표적인 중국사학자 조너선 스펜스가 내리는 결론이다. 스펜스는 “서양과 중국이 대등한 파트너로서 새로운 수준의 자각에 도달한다면, 적어도 오랜 오해를 반복하지 않을 기회는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조너선 스펜스 지음·김우영 옮김/이산·2만원.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진보 논객 ‘2008 촛불 항쟁’ 담론서 〈미네르바의 촛불〉
<미네르바의 촛불>은 ‘2008 촛불 항쟁’에 대해 한 진보 논객이 펼치는 명상록이자 담론서다. 지난해 이 땅의 여름을 달구었으며 지금껏 진보 보수 사이에 해석이 엇갈리는 촛불 항쟁을 지은이는 ‘봉기’로 명명했다. 다중의 네트워크 진보를 주창해온 그는 촛불에 담론의 두툼한 살집을 붙여주고, 그 혁명적 미래에 대한 예언과 테제(강령)까지 이야기한다. 그의 눈에 촛불은 지난 1년간 존재론적 차원에서 삶과 세계를 명백히 변형시킨 실체적 힘이었다. 이 땅에서 촛불이 불러낸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헤겔의 경구와 달리 황혼 아닌 새벽녘에 펄펄 날았다. 밤새도록 놀고 싸우고 대치하는, 축제 같은 봉기. 그 독특한 상황들을 지은이는 우리 시대의 지성과 감성을 뒤흔드는 탈근대 혁명의 징후로 바라보았다. 책의 내용 또한 그런 징후를 받아들여 현장 집회 체험들을 담은 일기와 일지, 논리적 이론 등이 갈마들면서 풀려간다.
지은이의 펜 끝은 보수신문이나 정부의 ‘꼴통’ 논리 대신 ‘촛불 유령론’ 같은 일부 진보 지식인들의 비판들을 주로 겨냥한다. 당장 성과보다 촛불 실패 이면에 깃든 인식과 감각의 거대한 변화부터 스스로 돌아보라고 타이른다. 촛불 봉기의 새로움은 네트워킹을 통해 스스로 발언하고 움직이는 적극적 다중의 거대 에너지 표출 그 자체라는 것을, 자신의 현장 체험과 푸코·들뢰즈·네그리의 이론을 엮어 입증하려 한다. 책 말미의 ‘촛불 테제’에 이런 구절이 있다. “촛불은 삶이며 삶은 촛불이다 … 틈새에서, 위기와 공황의 구멍 속에서 해방의 시간이 열린다 … 촛불의 전면화, 촛불의 세계화, 모든 사람들의 촛불 되기, 그리고 절대적일 뿐인 민주주의….” 조정환 지음/갈무리·1만5000원. 노형석 기자nuge@hani.co.kr
기독교 믿고 희랍어 쓰던 이집트는…
〈함두릴라, 알 카히라〉
1384년 이탈리아 여행가 레오나르도 프레스코발디는 카이로의 한 거리에 전체 피렌체 인구보다 많은 사람이 산다고 말했다. 프레스코발디보다 한 세대 뒤의 인물인 베네치아인 엠마누엘 필로티는 카이로가 세계 최대의 도시라고 주장했다. 카이로는 시리아의 다마스쿠스, 이라크의 바그다드와 더불어 아랍권 3대 도시였다. 일간신문 카이로 특파원을 지낸 지은이는 자신도 이집트에 가기 전까지는 이집트의 최전성기는 고대 파라오 시대였을 것이라고 짐작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카이로에는 아직도 거리 곳곳에 이슬람 문명 건축물이 남아 있어 진실을 말하고 있다. 카이로는 다마스쿠스, 바그다드와는 달리 8세기의 모습을 2009년에도 그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이집트는 예언자 무함마드가 숨지고 8년 뒤인 649년 이슬람군이 모습을 나타내면서 이슬람화가 시작됐다. 기독교를 믿고 그리스어가 공식 언어였던 이집트는 이때부터 이슬람의 일원이 됐다. 그 뒤 수많은 이민족들이 이집트에 들어왔지만 그들의 공통분모는 이슬람이었으며, 카이로에 훌륭한 건축물을 남겼다. 지은이는 카이로 골목들을 누비며 이슬람 정복자들이 남긴 건축물을 둘러보고 그들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민족 지배자라는 것은 민족국가 개념이 강한 지금 사람들의 관점일 뿐, 당시 이집트인들이 대체로 이민족 정복자에 대해 거부감이 없었다는 점도 이야기한다. 책 제목인 ‘함두릴라, 알 카히라’에서 ‘함두릴라’는 ‘신께 감사합니다’라는 뜻의 아랍어 인사말이다. ‘알 카히라’는 카이로의 아랍어 표현이다. 최준석 지음/메디치·2만5000원.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삿되지 않은 정직과 ‘씨앗책’ 있다면
〈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
옆집 여자가 샤워를 하고 있다. 훔쳐보아야 할까, 아니면 훔쳐보지 말아야 할까?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소설가 이만교씨는 <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에서 ‘훔쳐보고 싶으면 훔쳐보고, 훔쳐보기 싫으면 훔쳐보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 얘기를 통해 그가 주창하고 싶은 바는 좋은 글을 쓰고 싶다면 ‘도덕적인 잣대에 발 묶이지 말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것이다. 지은이가 강조하는 글쓰기 비법은 여느 글쓰기 책들과 다르다. ‘정직’이다. 좋은 글쓰기란 현란한 문장 구사 등 능란한 기술에 있는 게 아니라 정직한 삶 그 자체에서 비롯된다는 게 그의 지론인 것이다. 여기서 정직은 규범에 갇힌 ‘도적적 정직’이 아닌 이성적 생각과 속내가 서로 어긋나지 않고, 삿되지 않은 ‘실질적 정직’을 가리킨다. ‘자기 자신의 느낌을 느낀 대로 솔직하게 정직하게 옮길’ 때 ‘살아 있는 글쓰기’를 이룰 수 있다는 논지다. 반면 ‘구제 불능의 글’은 ‘별다른 결점이 눈에 띄지 않는, 그러나 하나의 기지조차 보이지 않는 매끈하게 다듬어지기만 한 글’이다.
대부분 글쓰기 책처럼, 이 책에서도 ‘다독’을 말한다. 하지만 닥치는 대로 읽는 게 아닌 ‘씨앗도서’를 찾아 읽으라고 말한다. ‘수많은 책들 가운데 지금의 내게 가장 재미있고, 유익한 책 한 권’을 찾아 즐겁게 읽고, 특히 이 과정에서 공명을 일으키는 좋은 문장, 곧 ‘씨앗문장’에 밑줄을 긋고, 재독할 것을 지은이는 주문한다. 이 책은 특히 지은이가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요청으로 1년 동안 해온 글쓰기 강의를 재구성한 것이기도 하다. 그린비·1만5900원.
이창곤 기자 goni@hani.co.kr
‘인권을 저당잡힌’ 이주노동자들 삶
〈아빠, 제발 잡히지 마〉
시곗바늘을 한참 거꾸로 돌려놓은 듯한 요즘이지만, 한국에 사는 이주노동자들의 삶처럼 역사의 총체적 역주행을 보여주는 전형도 드물다. 20여년 전 박노해 시인이 절절히 읊은 <손무덤>의 가사가 꼭 들어맞는 노동 환경에 ‘불법 체류자’로 낙인찍히고 죽음으로 내몰리는 신변 불안, 아무리 후하게 쳐줘도 4년짜리 소모품 취급하는 정부까지, 동시대 같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다. 고기까지 사주며 잘해줬더니 ‘외국인’이 퇴직금 내놓으라고 뒤통수친다며 격분하는 사장님, 장부 위조해 퇴직금 떼어먹고 “외국 놈들 때문에 사업 못해먹겠다”며 울분을 토하는 사모님, 공장 사고로 새까맣게 불에 타 죽어가는 이들이 도움을 청하자 “불법 체류자이니 빨리 도망가라” 친절하게 조언하는 한국인까지 …. 그들의 삶을 나락으로 밀어넣는 것은 항상 그렇듯 돈과 사람, 특히 한국 사람이다.
<아빠, 제발 잡히지 마>는 1995년부터 이주노동자 인권을 위해 일해온 ‘한국 사람’, 이란주 아시아인권문화연대 대표가 <말해요, 찬드라>에 이어 그가 함께 겪고 지켜본 이주노동자들의 삶을 담은 책이다. 이제는 10대로 성장해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 살고 싶어 하는 이주노동자 아이들 이야기부터 타국 시멘트 바닥에서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한 이들, 고국에 돌아가 정착한 이들의 이야기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담겼다. 1994년 외국인산업기술연수제도 도입 때부터 지난하게 이어져온 잔인한 착취와, 그에 맞서는 이들이 일궈낸 힘겨운 변화와 삶이 생생하게 머리와 가슴을 울린다. /삶이 보이는 창·1만원. 김일주 기자 pearl@hani.co.kr
〈근대 중국의 서양인 고문들〉
마틴을 비롯해 이 책에 등장하는 서양인 16명은 모두 과학적·도덕적 우월감을 지니고 17~20세기 중국에 다가갔다. 자신감이 지나친 나머지 중국과 중국인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 것이라 여기기도 했다. 1969년 처음 출간된 이 책의 원제가 <중국을 바꾸기 위해>(미국판), <중국의 조력자들>(영국판)이었던 데서 보듯, 그 이름은 ‘변화’나 ‘도움’이었을지언정 분명 중국을 좀 더 서양처럼 만들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이들이 중국을 이용해 성공을 거두기는커녕 중국이 도리어 이들로부터 필요한 것들을 뽑아갔다는 것이, 미국의 대표적인 중국사학자 조너선 스펜스가 내리는 결론이다. 스펜스는 “서양과 중국이 대등한 파트너로서 새로운 수준의 자각에 도달한다면, 적어도 오랜 오해를 반복하지 않을 기회는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조너선 스펜스 지음·김우영 옮김/이산·2만원.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진보 논객 ‘2008 촛불 항쟁’ 담론서 〈미네르바의 촛불〉
〈미네르바의 촛불〉
〈함두릴라, 알 카히라〉
〈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
〈아빠, 제발 잡히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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