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내해’ 지중해의 흥망성쇠
〈지중해 5000년의 문명사 상·하〉
지중해는 유럽 문명의 출발지이자 근대의 여명기까지 이 문명의 중심지였다. 아메리카 대륙이 유럽인들에게 발견되고 대서양 항로가 열린 뒤, 그리고 종교개혁으로 유럽인의 정신에 새로운 지평이 열리고 나서야 문명의 중심지는 지중해에서 유럽 북부로 이동했다. 말하자면, 지중해 일대는 5000년 역사 가운데 4500년 동안 유럽 그 자체였고, 지중해는 말 그대로 유럽의 내해였다. 영국의 역사 연구자 존 줄리어스 노리치가 쓴 <지중해 5000년의 문명사>는 이 유럽의 자궁에서 자라난 문명의 흥망성쇠를 유장하게 풀어 쓴 역사서다.
주로 지중해 문명권의 역사를 공부하고 글로 써온 지은이는 엄격한 역사학자라기보다는 대중적 감각으로 역사를 이야기하는 저술가에 가깝다. 이야기꾼 기질이 강한 셈인데, 이 책에서도 그는 기원전 3000년께 시작된 이집트 문명에서 첫발을 뗀 뒤, 테세우스가 아리아드네의 실을 잡고 미궁을 휘돌아 나오듯 5000년 시간의 미로를 답사한다. 그 여정 위에서 트로이전쟁이 벌어지고 그리스 문명이 솟고 로마 제국이 펼쳐진다. 이어 기독교가 제국의 영혼을 장악하고 중세의 가을이 오고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된다. 또 이탈리아 르네상스가 만발하고 레판토 해전에서 기독교와 이슬람이 맞붙고 청년 나폴레옹이 알프스를 넘는다. 마침내 발칸전쟁이 터지고 1차세계대전의 화염이 유럽을 덮는다. 그 화염의 잔해와 함께 이야기가 끝나는데, 그때 서구 세계가 본질적으로 변했고 현대사가 시작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순호 옮김/뿌리와이파리·각 권 2만5000원. 고명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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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가지 얼굴의 이슬람, 그리고 나의 이슬람〉
여성 지식인이 본 이슬람 ‘참모습’
〈천 가지 얼굴의 이슬람, 그리고 나의 이슬람〉
“신이 인류에게 말한다. 아, 믿는 자들아, 우리는 너희를 남녀로 나누어 창조하였다. 너희들을 부족과 종족으로 나누었는데, 이것은 너희들 서로가 알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슬람 경전 <코란>의 한 구절이다. <천 가지 얼굴의 이슬람, 그리고 나의 이슬람>은 인도네시아의 여성 지식인이자 독실한 무슬림이 쓴 사회비평 에세이다. 원제는 지은이 자신의 이름을 딴 ‘율리아의 지하드’다. ‘성전’(聖戰)으로 번역되는 ‘지하드’는 이슬람 가치를 수호하는 종교적 의무를 뜻한다. 지은이는 “가장 중요한 지하드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며 “이슬람의 본질은 이성과 지식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10~12세기 찬란했던 이슬람 과학·문화도 그 덕분이다.
그러나 “이성과 신앙이 분리되는 순간 신앙은 맹목이 된다.” 이는 모든 종교가 마찬가지인데, 유난히 이슬람에 덧칠된 편견과 무지가 두터울 뿐이다. 종교권력자들의 교조주의도 거기에 한몫했다. 지은이는 세계 최대의 무슬림 국가이자 다문화 공동체인 인도네시아의 현실과 개인적 경험을 통해 이슬람의 참모습을 보여주려 한다. 이슬람도 본디 하나의 얼굴에 ‘천 개의 길’이 나뉘고 ‘천 개의 시선’이 깔린 것인지도 모른다. 책은 △코란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국가는 바보인가 △약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 등 세 장으로 짜였다. 각 장은 여러 개의 단상과 에피소드, ‘깊이 보기’를 곁들여, 가벼운 읽을거리와 유용한 지식정보를 함께 제공해준다. 이슬람 입문서이자 인도네시아 개론서로 맞춤하다. 율리아 수리야쿠수마 지음·구정은 옮김/푸른숲 아시아네트워크·1만6000원. 조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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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시민…80인의 신념 오롯이
〈라디오쇼-세상을 지켜온 작은 믿음의 소리〉
신념은 지식인들만 가진 게 아니다. 돈이 인생을 구원한다면, 경제규모 세계 13위의 대한민국 종교 신자 총수가 실제 인구보다 많을 수 있겠는가. <라디오 쇼>는 유명 작가·정치인·운동가뿐 아니라 평범한 시민이 ‘내가 믿는 것’을 털어놨다는 데서 더 값지다. 영화 <굿나잇 앤 굿럭>의 주인공인 미국 언론인 에드워드 머로는 1951년 라디오쇼 <내가 믿는 이것>(This I believe)을 통해 명사와 시민들이 신념을 알릴 수 있게 했다. 매카시즘에 반대하는 목소리뿐 아니라, 신성함, 가족, 영혼에 대한 믿음의 목소리도 나왔다. 책으로도 나왔다.
50여년 뒤 라디오 연출자인 댄 게디먼과 제이 앨리슨은 부시 전 행정부의 통치에서 매카시의 그늘을 봤다. 그들은 ‘선배 기자’의 프로젝트를 다시 빌렸다. <내가 믿는 이것>은 미국공영라디오(NPR)에서 부활했다. 이 책은 50년 전 책에 현재의 사연을 더해 전체 80편의 에세이를 새로 엮어 펴냈다. 신념은 고리타분한 단어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을 발효시킨다. 그래도 신념이 뭐가 중요하냐는 사람들에게 <스타십 트루퍼스>를 쓴 에스에프 작가 로버트 하인라인은 말한다. “나는 고민하기 위한 커다란 두개골과 반대를 표시할 수 있는 엄지를 갖고 태어난 털 없는 영장류, 간신히 유인원에서 벗어난 이 동물이 자기가 태어난 행성보다 더 오랜 세월 존속하여 다른 행성들과 별들 너머로까지 확산되면서 자신의 정직함, 부단한 탐구정신, 무한한 용기 그리고 본질적이며 숭고한 품위를 전파하리라 믿습니다.” 제이 앨리슨 지음·댄 게디먼 엮음·윤미연 옮김/세종서적·1만2000원. 고나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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