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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4월 18일 잠깐독서

등록 2009-04-17 21:53

〈시장 체제〉
〈시장 체제〉




효과적 시장체제 위한 ‘뚝심 제안’

〈시장 체제〉

찰스 린드블롬은 <미국 헌법과 민주주의>를 쓴 로버트 달과 함께 예일대 정치학과의 양대 기둥을 이루는 사람이다. 경제학과 정치학을 동시에 깊이 공부한 린드블롬은 경제학을 가르치는 정치학자로도 알려져 있다. <시장 체제>는 그가 85살 되던 2001년에 펴낸 책이다. 그의 대표작 <정치와 시장>의 문제의식을 좀더 분명하게 드러낸 것이 이 책이다.

그의 발상은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는데, 시장지상주의자들은 그를 시장부정론자로 몰아붙였고 급진 탈시장주의자들은 그를 시장논리에 갇힌 자라고 비판했다. 이런 반발에 대해 그는 물러서지 않고 자신의 논리를 밀고 나가는데, 그런 뚝심의 근거가 되는 것이 시장과 시장 체제를 구분하는 유력한 논법이다. 그는 시장이란 어디서든 나타난다고 말한다. 시장을 사악한 것으로 보았던 마오쩌둥 시기의 중국이나 공산주의 시기 소련에서도 ‘암시장’ 형태로 시장이 번성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시장을 시장 체제라고 말할 수는 없는데, 여기서 린드블롬의 논리가 확연해진다. 시장 체제는 거래 활동을 사회 전체 차원에서 조율하는 체제를 말한다. 더 중요한 것은 시장 체제가 국가를 파트너로 삼는다는 사실이다. 국가는 시장 체제의 최대 구매자이자 최대 통제자이다. 국가의 개입과 통제는 시장 체제 작동의 내적 요인이다. 린드블롬은 시장 체제와 민주주의가 서로 경쟁관계에 있음을 인정한다. “시장은 자유의 동지이기도 하지만 자유의 적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사회 전체의 이익에 복무하도록 시장 체제를 조율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된다. 한상석 옮김/후마니타스·1만5000원.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오바마 경제정책이 향하는 곳은

〈성장 친화형 진보〉
〈성장 친화형 진보〉
〈성장 친화형 진보〉

진보와 보수를 가를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잣대가 ‘진보-분배 중시’, ‘보수-성장 중시’라는 틀이다. 하지만 어떤 진보적 정권이라도 권력을 잡은 이상 ‘성장’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좀 엉성하고 우스운 합성어였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합의한 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신을 ‘좌파 신자유주의자’라고 밝혔던 데서도 ‘성장’에 대한 나름의 고민을 읽을 수 있었다.


이에 반해 진 스펄링의 <성장 친화형 진보>는 ‘진보’와 ‘성장’에 대한 한층 농익고 진솔한 고민들을 담고 있다. 빌 클린턴 미국 행정부의 경제정책을 입안했고, 티머시 가이트너 미국 재무장관의 고문인 지은이의 이력이 말해주듯, 이 책은 클린턴과 오바마로 이어지는 미국식 ‘진보’ 정권의 경제정책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알게 해주는 나침반과도 같다. 지은이는 무역·교육·노동·조세·재정·산업 등 모든 분야를 일관성 있게 꿰고 있는데, 그것은 세계화를 수용하면서도 그 속에서 진보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치열한 고민이다. 이 고민은 현재 ‘오바마노믹스’의 핵심인 “부유층과 기업에 대한 증세와 빈곤층에 대한 감세를 통한 경제성장” 정책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이 책이 현재의 한국 상황에 던지는 울림도 크다. “진보가 성장을 중시해야 한다”는 것은 다른 말로는 “보수도 분배를 도외시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빈부 격차를 늘린 조지 부시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는 이 책은 ‘강부자 정권’인 이명박 정부에도 “분배 친화형 보수만이 살 길이다”라고 조언하는 것 같다. 진 스펄링 지음·홍종학 옮김/미들하우스·2만2000원. 김보근 기자 tree21@hani.co.kr

한국경제 ‘합리적’으로 따져보자

〈이준구 교수의 쿠오바디스 한국경제〉
〈이준구 교수의 쿠오바디스 한국경제〉
〈이준구 교수의 쿠오바디스 한국경제〉

이명박 정부의 핵심적인 탄생 신화가 이른바 ‘747 공약’이다. 실현 가능성이 없는 믿음에 대한 고집은 대운하로 표상되는 토목공사의 망령, 종합부동산세 무력화,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앞세운 시대 역주행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준구 교수의 쿠오바디스 한국경제>는 한국 사회가 당면한 경제·사회 문제의 원인에 대한 속 시원한 설명이자 나름의 대안을 담은 시론이다. 책의 제목은 ‘한국 경제가 어디로 가느냐’고 묻고 있지만, 내용은 ‘한국 사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고통스런 통찰에 가깝다. 지은이는 미국에서 재정학을 공부한 ‘주류 경제학자’다. 자신은 진보도 보수도 아니라고 자평하지만, 시장의 효율성에 대한 믿음을 저버릴 수 없다는 점에서 보수에 가깝다고 말한다. 꼼꼼한 손익계산을 근거로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걸어볼 가치가 있는 도박”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런 지은이가 보기에도 “대놓고 힘있고 부유한 사람들만을 위하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은 “해도 너무한다.”

이른바 ‘그린 뉴딜’ 정책도 형용모순이거나, 무지의 폭로일 뿐이다. 1930년대 미국 뉴딜정책에서 토목공사의 비중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뉴딜정책의 본질적 의미는 “사회 자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광범위한 개혁 프로그램”이자 “현 정부가 싫어할 만한 것으로 꽉 채워진 진보적 정책의 대명사”이다. 아파트값 폭등이 공급 부족 때문이라는 주장이 얼마나 허구와 기만에 가득찬 궤변인지도 “학문적 진실에 충실한” 경제논리로 통박한다. 책에는 ‘이념이 아닌 합리성의 경제를 위하여’라는 부제가 붙었다. 이준구 지음/푸른숲·1만5000원.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청소년 읽기쉽게 고친 ‘전태일 평전’

〈전태일 평전〉
〈전태일 평전〉
〈전태일 평전〉

버스비를 털어 배고픈 시다들에게 풀빵을 사주고는 자신은 몇 시간을 걸었던 노동자. 일기 한줄 한줄이 뜨거운 시가 되어 뭇 젊은이의 심금을 울렸던 스물두 살의 시인. 전, 태, 일. 1970년 11월13일 서울 평화시장 앞 분신 항거로 한국 노동운동의 불꽃 같은 신호탄을 쏴올렸던 그의 책 <전태일 평전>이 2009년 개정판으로 다시 왔다.

책의 원고는 그가 남긴 일기와 수기 등을 토대로 1976년 여름 완성되었으나 유신정권의 탄압 속에서 출판되지 못하다, 1983년이 되어서야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전태일 평전>이란 제목으로 출간됐다. 91년 개정판을 내면서 글쓴이가 조영래 변호사임이 밝혀지기도 했다. <전태일 평전>은 90년대 이후 청소년·어린이권장도서의 형태로 청소년들에게 널리 읽혀 왔다. 이번 개정판은 청소년들이 좀더 읽기 쉽도록 ‘~으로부터의’, ‘~에로의’와 같은 일본어투를 고치고, 앞머리에 실렸던 70년대 가혹한 노동환경과 노동자들의 투쟁과 죽음을 기록한 글을 책 부록으로 옮겼다. 전태일의 죽음 당시 상황도 나중에 사실이 확인된 부분을 반영했다. <전태일 평전>은 지금까지 100만여부가 나간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개정판부터는 전태일기념사업회(이사장 장기표)가 판권을 돌베개출판사에서 넘겨받았다. 전태일기념사업회 쪽은 “대학생들과 노동자모임, 그리고 청소년들과 함께 <전태일 평전> 읽기 사업을 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어머니 이소선씨는 “이제는 죽을힘을 다해 살아야지, 죽어선 안 된다”며 “어려운 시절 책을 내주었던 돌베개 출판사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조영래 지음/전태일기념사업회·1만3000원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헛똑똑이 ‘신자유주의 아이들’

〈교실이 돌아왔다〉
〈교실이 돌아왔다〉
〈교실이 돌아왔다〉

‘한국의 신자유주의가 길러 낸 아이들.’

강단에 선 인류학자는 새로운 인류의 출현에 당황하고 실망하다가 곧 이렇게 진단을 내린다. 교실이 어딘지, 무엇을 미리 읽어 가야 하는지, 과제물은 어떤 방향으로 몇 쪽을 써야 하는지 이메일과 전화로 시시콜콜 물어대는 학생들, 엄마가 수강신청 과목을 미리 다 정해줬다는 학생들, 구김살 없고 사근사근해 순진해 보이지만 논술 교육을 받아 글은 똑 부러지게 쓰는 학생들, 날카로운 비판적 지성으로 ‘젊음의 패기’를 부리는 대신 불안한 미래를 부여잡고 세상에서 도태될까봐 자기 관리에 철저한, “세상을 다 알아버린 것 같은” 아이들…. “체제에 이미 ‘동의’해 버린 듯한 이들은 어떻게 다시 비판적이고 창조적인 인간으로 태어날 수 있을까?”

<교실이 돌아왔다>는 1990년대 ‘서태지 세대’와 소통한 기록을 <탈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글 읽기와 삶 읽기>라는 책으로 낸 바 있는 조한혜정 교수(연세대 사회학과)가 2006~2007년 네 학기 동안 수업을 진행한 기록을 학생들과 함께 엮은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아이들’이 시대를 읽는 눈과 감수성을 기르고, 타인과 소통하는 능력을 길러가는 과정을 먼저 학생의 시각에서, 다시 교수의 시각에서 재구성해 실었다. 수업이라는 ‘마당극’을 연출하는 교수와 학생들이 마침내 ‘행복한 학습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여정이 실감나게 담겼다. ‘교수가 교수에게’를 부록으로 실어 ‘강의실을 집단 지성의 산실로 만드는 장치들’도 풀어놓았다. /또하나의 문화·1만6000원. 김일주 기자 pearl@hani.co.kr

도시들의 1천년 흥망성쇠 다뤄

〈도시와 인간〉

〈도시와 인간〉
〈도시와 인간〉
1898년 영국의 도시계획가였던 에베니저 하워드는 이상적인 도시로 ‘정원도시’를 제안했다. 산업혁명 뒤 영국 도시들의 밀집, 장시간 노동, 범죄, 질병, 물과 대기오염에 지쳐 있던 사람들에게 이것은 복음이었다. 시민들을 번다한 도심에서 한가한 교외로 탈출하도록 만든 이 이론은 도시의 무분별한 확장과 녹지 파괴, 도심 공동화, 교통 혼잡 등 또다른 문제를 낳았다. 1920년대 프랑스의 건축가였던 르 코르뷔지에는 기존의 저층·고밀도 도시를 고층 건물과 녹지로 바꾸려는 혁명적 이론을 내놓았다. 가장 먼저 파리에 적용하려 했던 이 이론은 20세기 후반 인도의 찬디가르, 브라질의 브라질리아, 그리고 한국과 중국의 도시들에서 실현됐다. 그러나 그의 이론은 자동차에 대한 지나친 의존, 공동체의 해체, 도시 경관의 훼손 등을 일으켰다. 도시 역사학자 마크 기로워드의 <도시와 인간>은 11세기 콘스탄티노플에서 20세기 로스앤젤레스까지 세계의 변화를 이끌었던 도시들의 흥망과 성쇠를 다른다. 그에 따르면, 한때는 정원도시가, 한때는 마천루 도시가 각광받았고, 최근엔 압축도시가 이상적인 도시로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파리 주변 시테 드 라 뮈에트의 고층 주택의 실패, 로스앤젤레스의 황량한 도심이 보여주듯 ‘이상 도시’를 건설하려는 꿈은 다만 꿈일 뿐이었다. 동서와 고금에서 수많은 도시들을 살핀 지은이가 확인한 것은 윈스턴 처칠이 말한바 “인간은 도시를 만들고, 도시는 인간을 만든다”는 평범한 사실이었다. 아마도 그에게 가장 이상적인 도시는 시장과 예배당, 영화관, 음식점, 선술집이 가까운 그의 동네였던 것 같다. 민유기 옮김/책과함께·4만8000원. 김규원 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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