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개꿈만 빼고 미래를 점쳐드립니다

등록 2008-05-02 20:36

 앙리 루소의 〈잠자는 보헤미안〉. 〈꿈의 열쇠〉는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아르테 제공.
앙리 루소의 〈잠자는 보헤미안〉. 〈꿈의 열쇠〉는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아르테 제공.
원칙과 경험에 입각한 2세기판 해몽서
음식·배설물·동물 등 90개 ‘예지몽’ 제시
같은 꿈도 계층·성별에 따라 풀이 달라
〈꿈의 열쇠〉
아르테미도로스 지음·방금희 옮김. 아르테·1만8000원

꿈을 해석하는 것은 인간의 오랜 욕망이었다. 수천년 전부터 인간은 꿈풀이로 길흉을 점쳤고, 다가올 일을 예측했으며, 판단과 행위를 결정했다. 꿈풀이는 20세기에 이르러 과학의 지위를 얻었다. 세기의 전환기에 나온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1900년)은 인간의 무의식에 똬리를 튼 억압된 욕망을 꿈에서 읽어냈다. 정신분석, 나아가 인문사회과학에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을 예고하는 사건이었다.

꿈에 대한 합리적 분석을 시도한 문헌이나 서적은 프로이트 이전에도 여럿 있었다. 2세기 리디아(현재의 터키 서부) 출신의 아르테미도로스가 쓴 <꿈의 열쇠>는 그중 특히 돋보인다. 오늘날까지 원전이 완전하게 전해지는 유일한 문헌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당시의 해몽이 대부분 종교적 신비주의와 주술적 경향을 띠었던 것과 달리, “아르테미도로스에게는 종교적 경이가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미셸 푸코, <성의 역사> 3권). 철저하게 원칙과 경험에 의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작은 본디 다섯 개의 서(書)로 구성됐다. 이번에 국내 최초로 나온 번역서는 이를 1장부터 5장까지로 나눠 편집했다. 아르테미도로스는 제1서 서문에서 “사실에 입각하여 각 주제에 대해 풍부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고, 누구나 접할 수 있는 분명한 증거들을 제공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수년간 그리스의 많은 도시들, 아시아와 이탈리아, 사람이 많이 사는 섬들을 누비면서 예언가들로부터 과거의 꿈들이 실현된 이야기를 참을성 있게 들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르테미도로스는 꿈을 “깨어 있는 정신에 의해 방해받고 왜곡돼서 잠재해 버린 낮의 이미지들”이라고 정의했다. 프로이트의 ‘에고(ego)에 의해 왜곡되고 억압당한 이드(id)’ 개념과도 꼭 닮았다. 아르테미도로스 이후 천년이 넘도록 유럽에서 꿈 해석은 진전이 없었다.


〈꿈의 열쇠〉
〈꿈의 열쇠〉
아르테미도로스는 꿈을 단순한 ‘꿈’과 ‘예지몽’으로 나눈 뒤, 해석의 대상이 되는 꿈은 다가올 일을 미리 알려주거나 암시하는 ‘예지몽’임을 명시했다. 이는 프로이트와 구별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아르테미도로스는 꿈 해석의 목적이 꿈꾼 자에게 앞으로 행동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반면, 프로이트는 꿈은 과거의 경험이나 기억과 더 관련이 있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 아르테미도로스의 해몽은 꿈의 미래 의미를 추론했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은 꿈의 과거 원인을 추적했다.

아르테미도로스는 예지몽을 다시 정리적(定理的)인 것과 우의적(寓意的)인 것으로 나눴다. 정리적 예지몽은 꿈과 결과가 정확히 일치해서 해석이 필요없다. 우의적 예지몽은 다른 것이 매개가 되어 어떤 일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할 대상이다. 그는 우의적 예지몽을 ‘꿈과 실현의 관계’를 기준으로 80개 유형으로 세분해 체계화했다.

제1서부터 3서까지는 음식·항해·배설물·검투사·동물 등 90여 가지 꿈을 예시한 뒤 그 의미를 풀이한다. 예컨대, 금관을 쓰는 꿈은 노예와 가난한 사람에게는 위험하며, 고문을 당하기 십상이다. 분수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병자에게는 급사를 예고하는데, 금은 노랗고 차가워 죽음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죽는 꿈은 하급노예에게는 자유를 예고하는데, 죽은 자에게는 주인도 없고 고된 일도 없기 때문이다. 또 독신자에게는 결혼을 예고한다. 남자에게 결혼과 죽음은 끝을 이루므로 하나는 늘 다른 하나를 지시한다는 것이다. 4서와 5서는 각각 해몽의 태도와 실용적 지침을 기술하고 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