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실에 찾아온 유학자들 〉
■ 한·중·일 13인이 들려주는 ‘군자의 덕목’
〈강의실에 찾아온 유학자들 〉
그간 유폐됐던 공자가 ‘공황 중국’의 정신적 지주로 재등극했다고 한다. ‘중국에서 뜨는 유행어는 공자님 말씀’이라는 우스개는 지금 우리 상황에 끌어와야 할 것 같다. ‘도덕성이 밥 먹여주나’란 대거리로 간단히 대선 후보의 기본 자질인 도덕성이 무화되는 요즘, 때 아닌 공자왈 맹자왈의 읊조림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마침 이 책은 군자의 도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물음에 화답하듯 유학자들을 강단에 ‘모셔와’ 알기 쉽게 요약정리 해준다. 강사진은 공자, 맹자, 순자, 주희, 이황과 이이, 이토 진사이, 정약용 등 한·중·일 13인이다. 공자님 말씀부터. “군자의 덕은 바람과 같고 소인의 덕은 풀과 같습니다. 풀 위로 바람이 불면 반드시 바람에 따라 눕게 마련입니다.” 김수영의 시 <풀>이 떠오르는 이 구절의 핵심은 군자의 ‘예’다. 군자의 덕목으로 공자는 ‘예’ ‘의’ ‘신’을 꼽는데, 군자가 ‘예’를 익히면 백성은 자발적으로 복종하고, 군자가 ‘의’를 잘 수행하면 백성은 신뢰한다는 것이다. ‘측은지심’의 성선설을 설파한 맹자는 혁명적 주장까지 나아간다. 선한 본성을 제대로 닦지 못한 사람은 군주로서 자격이 없다며 ‘폐위’를 불사해야 한다는 일갈이다. 또 양명학을 창시한 왕수인은 ‘양지’(良知)하라고 가르친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를 반성하는 능력, 이는 대선을 앞둔 유권자에게 필요한 덕목이겠다. 백민정 지음/사계절·1만2000원.권귀순 기자 gskwon@hani.co.kr
■ 중국의 ‘어제와 오늘’ 동시에 보다
〈중국, 이유 있는 ‘뻥’의 나라?〉
‘중국에 대해 한 수 알려 주마’ 류의 책은 널리고 널렸다. 중국을 알아야 글로벌 인재가 될 수 있다고 반협박하는 비즈니스 지침서, 손자병법류 고전을 인용한 처세서, 중국 오지 여행기…. 대부분은 현대나 옛 중국 어느 한쪽에만 초점이 맞았다. <중국 이유 있는 ‘뻥’의 나라?>의 차이점은 이 지점에 있다. 현대와 과거 사이에서 자유롭게 초점을 옮겨가며 중국을 본다. <한겨레> ‘18도’에 ‘변하는 중국, 변하지 않는 중국’이란 제목으로 1년 가량 연재했던 글을 모았다. 중국철학을 오랫동안 공부한 내공으로 <논어> <삼국지> <서유기> <아큐정전>에 이르는 고전을 두루 인용해가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에펠탑, 자유의 여신상, 피사의 사탑 등 세계 유명 건축물 ‘짝퉁’을 모아놓은 베이징 ‘세계공원’에서 천하 관념을 읽는다. 유민과 비슷한 이력을 지녔고 그래서 더 특별히 대중적 인기가 있다는 관우를 통해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존재하는 유민들을 이야기한다. 공원 땅바닥에 글씨를 쓰거나 태극권을 하며 노는 노인들을 통해 삶에 집착함으로써 삶에 달통한, <장자>에 나오는 ‘달생(達生)’의 모습을 본다. 지은이는 “중국은 책상 하나 옮기는데도 피를 흘리다시피 해야 하는 나라”라고 한탄한 노신의 말을 인용한다. 하지만 그래서 변화의 소용돌이를 겪으면서도 고전 속 이야기가 현실에도 여전히 살아 숨쉬는 나라가 아닐까라고 말한다. 황희경 지음/삼성출판사·1만2000원.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 폭력·악을 연구한 정치철학자의 삶
〈한나 아렌트 전기〉
한나 아렌트의 철학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20세기 인류가 저지른 정치·윤리적 ‘파탄’과 맞닥뜨리는 일이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참혹한 학살, 인간성의 파괴가 그것이다. 아렌트가 누구이기에 그런가? 전체주의·폭력·악의 문제를 평생 탐구했던 정치철학자. 18년간 국적이 없을 정도로 시대의 격랑에 휩싸였던 국외자. 홀로코스트의 주범 가운데 한 사람인 아돌프 아이히만을 ‘괴수’가 아닌 ‘평범한 가장이자 남편’으로 묘사하면서 동족에게 ‘배신자’로 불려야만 했던 경계인. 그래서 유대인들에겐 ‘만지면 만질수록 덧나는 상처’일지도 모르는 사람. 기성관념을 거부하고 그것에 도전하면서 ‘암울한 시대’를 건너기 위해 철학과 시를 잇는 다리를 놓고자 했던 시인. 하지만 동료들에게 참으로 살가웠던 ‘우정의 천재’. 아렌트의 ‘마지막 제자’라고 할 수 있는 지은이는 그이의 사람됨이 “개성이 강했고 쉽게 당황했으며 판단에 있어서 엄밀했고, 성급했고 고집이 셌다”고 적었다. 남편 하인리히 블뤼허와 나눈 열정은 사르트르-보부아르 사이를 떠올리게도 한다. 아렌트의 삶과 철학이 ‘우로보로스의 뱀’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는 사실이 저서·편지·회고·구술 등으로 충실하게 복원돼 있다. 대선판 요란한 정치의 계절, 자신의 삶이 살얼음처럼 얇고 불안해 번민하는 이들에게 900쪽짜리 ‘두꺼운 삶’이 위안이 될지도 모르겠다. 엘리자베스 영-브륄 지음·홍원표 옮김/인간사랑·5만5천원.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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