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협회, 토론공화국을 꿈꾸다〉
이권우의 요즘 읽은 책 /
〈독립협회, 토론공화국을 꿈꾸다〉
이황직 지음/프로네시스·9000원 한 사람의 이력을 알아두는 게 그 책을 쓰게 된 동기를 눈치 채는 데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다. 학부시절, 행정학과에 적을 두었으나 인문학에 관심이 많아 문학 강의도 들었다. 그러다 시 창작 강의하는 교수 눈에 띄어 시인으로 등단했다. 오지랖도 넓지, 이번에는 사회학 강의도 들었다. 그때 평생을 걸 만한 지적 화두를 부여잡았다. 대학원을 사회학과로 간 이유다. 마침 뜻있는 교수들이 작은 대학을 열었다. 대학생들에게 고전을 집중으로 읽히는 프로그램이었다. 강의식이 아니라 학생들이 책을 읽고 토론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거기에도 발을 디뎠다. 그 덕이었던 모양이다.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글쓰기와 토론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었다. “공개적이고 평등한 조건에서 오직 논증의 합리성을 척도로 해서 여론을 형성하고 조직화”하는 능력을 키워주려 애썼다. 그러다 근대 토론의 역사가 언제 시작되었는지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고, 선학의 연구서에 독립협회 토론회에 대한 기록이 실려 있다는 점을 기억해냈다. 구한말 이 땅에도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의 핵심이라 할 토론문화가 활짝 꽃핀 적이 있었다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쇠뿔도 단김에 뺀다고 했던가, 팩션의 형태에 에듀테이먼트적 요소도 버무려 쓴 책이 바로 <독립협회, 토론공화국을 꿈꾸다>이다. 스무 살에 갑신정변에 참여했던 서재필은 미국으로 망명한 후 의사가 되었다. 이른바 아메리칸드림의 상징이 된 셈이다. 11년 만에 금의환향한 서재필은 풍전등화와 같은 고국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공론장 형성에 열과 성을 쏟았다. “1896년 4월 순 우리말 민간언론 독립신문을 간행하여 글의 공론장을 확보했고, 1896년 6월에는 독립협회를 결성하여 근대적 회(會)의 기반을 닦았으며, 1896년 11월 학생들의 토론모임 협성회를 결성하여 말의 경연장을 열었다”. 서재필은 교육과 문화의 힘을 확신했으니, 백성에서 시민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길이 거기에 있다 여겼던 것이리라. 이 책의 ‘눈’은 서재필에게 영향받은 배재학당 학생들이 협성회를 꾸리고 첫 토론회를 여는 장면과, 독립협회가 주최한 토론회 가운데 1898년 4월 3일의 것을 재구성한 대목이다. 앞의 것은 협성회 회원들이 마련한 토론원칙을 오늘의 관점에서 재구성하면서 토론요령을 소개하고 있다. 점두에 나와 있는 토론책을 보면 이론에 너무 치우쳐 있는데다 토론주제가 우리와 맞지 않는 경우도 있어 재미가 떨어지는 면이 있다.
이에 반해 지은이가 시치미 뚝 떼고 천연덕스럽게 재구성한 협성회의 토론회는 토론의 이론과 실제를 재미있게 익힐 수 있는 미덕이 있다. 뒤에 것은 좀 더 역동감 넘치게 꾸며져 있다. 마치 대학생들이 참여한 토론대회를 보고 있는 듯하다. 지은이의 문장력과 상상력, 그리고 이론적 기반을 두루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합리적 의사소통을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어떤 면에서 보면 말로 현실의 힘에 맞선다는 것은 한낱 당랑거철일 뿐이다. 독립협회의 운명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럼에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있다. 토론과 논쟁, 그리고 합의 없이 이루어진 성과란 것이 얼마나 허약하더냐 하는 점이다. 역사에서 서재필은 좌절했지만, 오늘 다시 그의 꿈을 주목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이권우 도서평론가
이황직 지음/프로네시스·9000원 한 사람의 이력을 알아두는 게 그 책을 쓰게 된 동기를 눈치 채는 데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다. 학부시절, 행정학과에 적을 두었으나 인문학에 관심이 많아 문학 강의도 들었다. 그러다 시 창작 강의하는 교수 눈에 띄어 시인으로 등단했다. 오지랖도 넓지, 이번에는 사회학 강의도 들었다. 그때 평생을 걸 만한 지적 화두를 부여잡았다. 대학원을 사회학과로 간 이유다. 마침 뜻있는 교수들이 작은 대학을 열었다. 대학생들에게 고전을 집중으로 읽히는 프로그램이었다. 강의식이 아니라 학생들이 책을 읽고 토론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거기에도 발을 디뎠다. 그 덕이었던 모양이다.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글쓰기와 토론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었다. “공개적이고 평등한 조건에서 오직 논증의 합리성을 척도로 해서 여론을 형성하고 조직화”하는 능력을 키워주려 애썼다. 그러다 근대 토론의 역사가 언제 시작되었는지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고, 선학의 연구서에 독립협회 토론회에 대한 기록이 실려 있다는 점을 기억해냈다. 구한말 이 땅에도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의 핵심이라 할 토론문화가 활짝 꽃핀 적이 있었다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쇠뿔도 단김에 뺀다고 했던가, 팩션의 형태에 에듀테이먼트적 요소도 버무려 쓴 책이 바로 <독립협회, 토론공화국을 꿈꾸다>이다. 스무 살에 갑신정변에 참여했던 서재필은 미국으로 망명한 후 의사가 되었다. 이른바 아메리칸드림의 상징이 된 셈이다. 11년 만에 금의환향한 서재필은 풍전등화와 같은 고국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공론장 형성에 열과 성을 쏟았다. “1896년 4월 순 우리말 민간언론 독립신문을 간행하여 글의 공론장을 확보했고, 1896년 6월에는 독립협회를 결성하여 근대적 회(會)의 기반을 닦았으며, 1896년 11월 학생들의 토론모임 협성회를 결성하여 말의 경연장을 열었다”. 서재필은 교육과 문화의 힘을 확신했으니, 백성에서 시민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길이 거기에 있다 여겼던 것이리라. 이 책의 ‘눈’은 서재필에게 영향받은 배재학당 학생들이 협성회를 꾸리고 첫 토론회를 여는 장면과, 독립협회가 주최한 토론회 가운데 1898년 4월 3일의 것을 재구성한 대목이다. 앞의 것은 협성회 회원들이 마련한 토론원칙을 오늘의 관점에서 재구성하면서 토론요령을 소개하고 있다. 점두에 나와 있는 토론책을 보면 이론에 너무 치우쳐 있는데다 토론주제가 우리와 맞지 않는 경우도 있어 재미가 떨어지는 면이 있다.
이권우의 요즘 읽은 책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