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게 늙은 절집
한미화의 따뜻한 책읽기 / <곱게 늙은 절집>심인보 지음/지안출판사
〈오 기사, 행복을 찾아 바르셀로나로 떠나다〉의 지은이 오영욱씨가 자신의 바람은 ‘엄마 친구의 아들보다 더 성공하는 것’이라고 해서 100퍼센트 공감했던 적이 있다. 엄마 친구의 자식들은 어린 나이에 어떻게 억대 연봉을 받는지, 어떻게 일찍이 높은 권력을 행사하는지, 그것이 궁금할 때가 있다. 이 나이가 되고도 부모에게 인정받는 자식이 되는 길은 험난하고 어렵기만 하다.
오랫동안 책을 소개하는 일을 했건만, 한 번도 소개한 책이 재미나겠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한데 얼마 전, 드디어 엄마가 ‘그 책 한번 읽고 싶다’는 반응을 보였다. 10년 만에 간택받은 주인공은 〈곱게 늙은 절집〉이라는 책이다. 산에 오르는 일이 즐거움인데다, 산에 가면 만나게 마련인 절집 이야기고, 여기에 ‘곱게 늙은’이라는 수식어가 주는 울림이 구미를 당긴 모양이다.(역시나 이유를 따지고 보니 내가 잘했다기보다는 책이 지닌 호소력이 늙으신 부모님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켰구나.)
〈곱게 늙은 절집〉은 이름난 디자이너가 이 땅에 숨어 있는 아름다운 산사를 찾아 사진과 글로 소개한 책이다. 산사를 소개했지만 종교적 담장 안에 묶어 둘 책은 아니다. 정작 지은이의 종교도 기독교다. 지은이는 10여 년 전, 난치병으로 죽도록 아파, 도시를 떠나 쉬면 나아지지 않을까 하여 부안에 있는 개암사를 찾았다고 한다. 하루 종일 찾아오는 이가 하나도 없을 만큼 작고 심심했던 개암사에 머물며 그는 우리 절집의 아름다움과 여유라는 새로운 화두를 껴안고 돌아온 듯하다.
웬 디자이너가 이렇게 글을 잘 쓰나 싶게 빼어난 글 솜씨가 우선 눈에 들어온다. 잘난 척하지 않아 읽는 이를 부담스럽게 하지 않고, 수선스럽거나 기름지지 않은 고졸한 맛이 느껴져 잘 늙은 절집을 소개하는 글로는 제격이다. 부처님 오신 날과 백중날 말고는 외부공개를 금지하는 팔공산 백흥암 문 앞에서 ‘문을 열어주어도 보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보려 해도 열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세상은 그런 거다’라고 중얼거리는 글에서는 선(禪)기운마저 느껴진다.
여기에 사랑하여 여러 번 보고 또 본 자만이 볼 수 있고 불러낼 수 있는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지식으로 무장하고 들여다봐야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곳이 있고, 외로운 눈으로 들여다봐야 아름다움을 알 수 있는 곳이 따로 있는 법이 아닌가. 건축쟁이들이 하듯 잘난 척 떨지 않고 불교문화와 우리 건축의 의미를 조근조근 풀어주는 건 덤이다. 책을 매만진 정성도 예사롭지 않다. 사진에 달린 캡션은 정성의 지극함을 보여준다. 사진과 어우러져 하나하나가 시와 같다.
책에는 텅 빈 외로움으로부터 출발하여 욕심과 근심을 덜어내고자 하는 마음이 가득하다. 먹고살기 바쁜 도시인이 틈만 나면 절집을 찾아 헤맨 이유가 무엇이겠나. 마음을 내려놓기 위해, 외로움을 묻어두기 위해서였던 거다. 책을 덮고 나면 ‘싸워서 이겨야 하는 게 세상사인 줄 알고 바득바득 성질머리를 내고’ 살아온 당신에게도 뭔가 들리는 소리가 있을 것이다.
한미화 출판칼럼니스트
한미화 출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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