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발견>김찬호 지음/문학과 지성사
이권우의 요즘 읽은 책 / <문화의 발견>
김찬호 지음/문학과 지성사 문화평론가는 태생적으로 고현학자(考現學者)이다. 오늘 우리가 문화라는 이름으로 게워내고 있는 욕망의 뿌리를 관찰하는 이들이기에 그러하다. 한때 그 직함으로 문명을 떨치던 이들이 꽤 있었는데, 요즘에는 활약상이 수그러든 듯하다. 속도 때문이 아닐까. 문화는 본대보다 먼저 적진에 들어가 있는 척후병 같다. 그들을 발견하는 순간, 치열한 전투를 예감하는 것과 같으니 말이다. 그런데 최근의 문화는 본대와 연락이 두절된 척후병 같다. 그것만 보아서는 전체적인 상을 그려낼 수 없다. 지속의 문화보다 순간의 문화가 더 기승을 부리고 있는 탓이리라. 김찬호의 고민이 여기에 있지 않았을까. 징후로서 문화를 말하고자 하면, 그것은 벌써 사라져 버린다. 고여 있지 않고 증발해 버리는 시대에 문화평론가는 무엇으로 한 시대를 연구할 수 있을까. 그래서 ‘공간’을 주목했을 것이다. 그 많은 문화현상이 덧없이 사라지거나 한물간 듯 말하는 시대에 변화 자체의 흔적마저 간직한 곳이 공간일 터이니 말이다. 〈문화의 발견〉은, 지은이 스스로 밝히고 있듯, 서른 개의 공간에 새겨진 한국인의 삶과 문화를 탐구한 생활견문록이다. 개인적으로 지은이의 분석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확인한 적이 있었다. 편안한 자리에서 잡담을 나누다 이야기의 주제가 편의점에 이른 적이 있었다. 그때 자신이 하고 있는 업종과 관련해 편의점 경영에서 배울 만한 것이 무엇인지 장광설을 펼친 이가 있었는데, 좌중의 전적인 동의를 얻은 바 있었다. 상당히 치밀하게 조사하고 분석한 결과라 내심 그이의 생각이 아니리라 했는데, 나중에 살펴보니 〈문화의 발견〉에 나온 글을 ‘무단도용’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물론, 이런 도용은 도덕적으로 문제될 리 없는데다, 지은이 처지에서는 기분 좋은 일일 듯하다. 케이티엑스(KTX)를 분석한 글도 지은이의 장점이 잘 발휘되어 있다. 이 한편의 글을 통해 철도의 문화사적 가치를 알게 된다.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철도가 이동과 수송에 걸리는 시간만 줄인 것은 아니다. 열차시각 시스템이 정착되면서 표준시가 만들어졌다. 기차의 특성상 먼 경치를 안정감 있게 바라볼 수 있게 된지라, 시각체험의 구조가 바뀌게 되었다. 철도망과 함께 전산망도 건설되었으니, 정보화를 촉진한 셈이다. 이제 고속철도는 또다른 변화를 불러왔다. 원경마저 시야에서 사라지
게 하는 속도라, 기차는 외부세계와 단절된 우주선 같은 추상공간이 되고 방향감각은 상실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노래방과 찜질방에서는 대중들의 꿈을 이야기한다. 노래방은 축제가 실종된 사회에 살고 있는 대중들이 자신들의 유희충동을 마음껏 분출하는 놀이공간이다. 이곳에서라면 가면을 벗어버리고 누구나 호모 루덴스가 된다는 말이다. 찜질방을 즐겨 찾는 것은 너무 “사납고 가파른 긴장에 휩싸여 있기 때문”이라 분석한다.
깊이 생각해 보지 않으면 의미를 알 수 없는 것이 문화현상이다. 그러기에 잘 쓰인 문화평론은 ‘발견’의 기쁨을 안겨준다. 새로운 시각으로 오늘 우리들이 만들어낸 자화상을 찬찬히 살펴보는 것은 늘 가치 있는 일이다.
이권우 / 도서평론가
김찬호 지음/문학과 지성사 문화평론가는 태생적으로 고현학자(考現學者)이다. 오늘 우리가 문화라는 이름으로 게워내고 있는 욕망의 뿌리를 관찰하는 이들이기에 그러하다. 한때 그 직함으로 문명을 떨치던 이들이 꽤 있었는데, 요즘에는 활약상이 수그러든 듯하다. 속도 때문이 아닐까. 문화는 본대보다 먼저 적진에 들어가 있는 척후병 같다. 그들을 발견하는 순간, 치열한 전투를 예감하는 것과 같으니 말이다. 그런데 최근의 문화는 본대와 연락이 두절된 척후병 같다. 그것만 보아서는 전체적인 상을 그려낼 수 없다. 지속의 문화보다 순간의 문화가 더 기승을 부리고 있는 탓이리라. 김찬호의 고민이 여기에 있지 않았을까. 징후로서 문화를 말하고자 하면, 그것은 벌써 사라져 버린다. 고여 있지 않고 증발해 버리는 시대에 문화평론가는 무엇으로 한 시대를 연구할 수 있을까. 그래서 ‘공간’을 주목했을 것이다. 그 많은 문화현상이 덧없이 사라지거나 한물간 듯 말하는 시대에 변화 자체의 흔적마저 간직한 곳이 공간일 터이니 말이다. 〈문화의 발견〉은, 지은이 스스로 밝히고 있듯, 서른 개의 공간에 새겨진 한국인의 삶과 문화를 탐구한 생활견문록이다. 개인적으로 지은이의 분석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확인한 적이 있었다. 편안한 자리에서 잡담을 나누다 이야기의 주제가 편의점에 이른 적이 있었다. 그때 자신이 하고 있는 업종과 관련해 편의점 경영에서 배울 만한 것이 무엇인지 장광설을 펼친 이가 있었는데, 좌중의 전적인 동의를 얻은 바 있었다. 상당히 치밀하게 조사하고 분석한 결과라 내심 그이의 생각이 아니리라 했는데, 나중에 살펴보니 〈문화의 발견〉에 나온 글을 ‘무단도용’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물론, 이런 도용은 도덕적으로 문제될 리 없는데다, 지은이 처지에서는 기분 좋은 일일 듯하다. 케이티엑스(KTX)를 분석한 글도 지은이의 장점이 잘 발휘되어 있다. 이 한편의 글을 통해 철도의 문화사적 가치를 알게 된다.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철도가 이동과 수송에 걸리는 시간만 줄인 것은 아니다. 열차시각 시스템이 정착되면서 표준시가 만들어졌다. 기차의 특성상 먼 경치를 안정감 있게 바라볼 수 있게 된지라, 시각체험의 구조가 바뀌게 되었다. 철도망과 함께 전산망도 건설되었으니, 정보화를 촉진한 셈이다. 이제 고속철도는 또다른 변화를 불러왔다. 원경마저 시야에서 사라지
이권우 / 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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