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옛 편지로 되살아난 선비들의 생애

등록 2007-04-05 16:45

 <대장부의 삶>임유경 지음. 역사의아침 펴냄. 1만2000원
<대장부의 삶>임유경 지음. 역사의아침 펴냄. 1만2000원
잠깐독서 /

언제 편지를 썼는지 가물가물하다. 받아 본 적도 오래전 일이다. 휴대전화, 이메일, 문자 메시지가 그 자리를 대신하기 때문이 아닐까. <대장부의 삶>(역사의아침)은 조선시대 선비들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편지를 엮은 책이다. 서너 줄 짜리에서부터 몇 장에 걸친 긴 편지까지 다양한 내용을 담은 68편을 가려 뽑았다. 세월이 흘렀지만 글자와 행 사이에 편지를 쓴 이의 진솔한 마음이 오롯이 되살아난다.

이덕무가 이서구에게 쓴 편지는 벼슬을 할 수 없었던 서얼들이 가난 속에서도 호기롭게 사는 모습을 보여준다. “집안에서 가장 값나가는 물건은 오직 ‘맹자’ 일곱 권 뿐, 오랜 굶주림을 견디지 못하여 이백 냥에 그것을 팔았소. 영재 또한 오래 굶주린 터라, 내 말을 듣고 곧바로 ‘좌씨전’을 가져다 팔았소. 맹자가 친히 밥을 지어 나를 먹이고 좌구명이 손수 술을 따라 나에게 권한 것이 아니겠소.”

정약용이 판서 권엄에게 쓴 편지에는 요즘 신고식과 흡사한 면신례 체험담이 나온다. 새로 부임한 관원이 선임자들을 청하여 음식을 대접하던 관례. “절름발이 걸음으로 게를 줍는 시늉을 하고 수리부엉이의 울음을 흉내 내는 일 따위는 제가 직접해야 하는 것입니다. 시키는 대로 해보려고 애를 썼으나 말소리는 목구멍에서 나오지 않고 발걸음은 땅에서 떨어지지 않으니 어찌하겠습니까.” 오늘날 신입생 환영회처럼 조선시대에도 선배들은 후배들의 기를 꺾으려 갖은 횡포를 부렸다. 제대로 하지 않으면 구타도 서슴지 않았다.

고종때 성리학자 김낙현이 쓴 편지는 재밌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 증손자까지 두었지만 열두살 늦둥이 아들의 결혼을 걱정하고 있다. 그는 중매인을 보내지 않고 ‘내 아들을 사위 삼아 주십시오’라며 몸소 혼담을 청하는 간곡한 편지를 썼던 것이다.

유배된 이광사가 죽은 부인을 그리워하며 지은 글은 절절하다. “창자는 마디마디 끊어지는 것 같고, 눈물은 강물이 쏟아져 내리듯 흐르오. 살아서 혼이 끊어지기보다는 차라리 죽어 한무덤에 묻히는 편이 낫겠소. (중략) 눈물이 먹을 적셔 글이 써지질 않는구려.”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