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SF-소셜 판타지」
8년간 연재때 사흘간 마감전쟁
독특한 풍자 페이지 시사만화 새 경지
미술학도로 24살에 만화 입문
100년 지나도 재밌을 컷만 모아
독특한 풍자 페이지 시사만화 새 경지
미술학도로 24살에 만화 입문
100년 지나도 재밌을 컷만 모아
책·인터뷰 / ‘시사SF-소셜 판타지’ 낸 만화가 조남준
최고의 궁사들이 모였다. 머리에 사과를 인 사람을 향해 한 궁사가 화살을 날렸다. ‘퍼억’ 사과에 살이 꽂히자 그는 자랑스럽게 외쳤다. “I’m 윌리엄 텔.” 그 다음 궁사도 명중. “I’m 로빈 훗.” 둔중하고 오만해뵈는 미군 전투복차림의 세번째 궁사. 자신있게 ‘팅’하고 쏜 화살 역시 ‘퍽’하고 꽂혔다. 그러나 맞은 건 사람이었다. 잠시 난처해 하던 궁사, ‘척’ 손을 치켜들더니 외쳤다. “I’m 쏘리.”
‘시사SF’. 10년 전 주간 <한겨레 21>에 이런 묘한 타이틀로 연재되기 시작한 조남준(41)의 두 쪽짜리 만화는 ‘쿨’하고 ‘쌈빡’했다. 박재동의 ‘한겨레 그림판’이 기존 한 컷짜리 만평의 역사를 하루아침에 뒤엎어버렸듯이 ‘시사SF’는 시사만화의 형식과 내용에 새 차원을 열었다. 디지털 컴퓨터 화상으로 맵시있게 처리한 그림의 색감과 터치는 사뭇 달랐다. 간결한 선과 시원한 공간구성, 절제된 대사는 깔끔하고 선명했다. 형식만이 아니었다. 정치, 경제, 사회, 역사, 노동, 교육, 여성, 가족, 문화, 언론, 환경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기성 질서와 가치에 대해 휘두른 풍자와 고발과 야유는 결코 직설적이지는 않되 날카롭고 재치있고 깊었다. ‘SF(Social Fantasy, 소셜 판타지)’란 제목이 딱 어울렸다. 신세대 감각이었으나, 뜻밖에도 젊은 작가에게선 기대하기 어려운 득도의 경지랄까, ‘도통한’ 구석이 있었고 강렬한 페이소스도 있었다.
그런데도 작가는 황당한 소리(?)를 했다. “그리고 나면 맘에 드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려놓고 나면 항상 창피했다. 출간된 걸 보고 확인점검하면서 공부해야 하는데, 도무지 창피해서 다시 보지를 못했다.” 아직도? “요즘 보니 재미있더라.”
<시사SF-소셜 판타지>(청년사)는 1997년 초부터 8년 넘게 연재한 400여회분 가운데 사건·사고 뉴스성 주제의 것들을 빼고 114회분을 추려 모은 것이다. “100년이 지나도 읽힐 수 있는”, “보편성을 지닌 삶에 관한 얘기들”을 모았다. 소심하고 애처로운 ‘시사SF’ 주인공들과는 달리 조남준은 키 176㎝ 건장한 체구의 장년이었다.
“2004년 말까지 매주 연재했는데, 그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도, 밥먹을 때조차도 초긴장상태의 연속이었다.” 토요일이 마감이었는데 목, 금, 토 사흘은 어떤 약속도 하지 못했다. 그 때문에 중·고교 때 친구들이 다 떨어져나갔다.
그 많은 아이디어는 어디서? “99% 혼자하는 작업인데, 어릴적부터 책을 무지하게 많이 읽었다.” 그리고 신문·방송 뉴스는 지금도 빠짐없이 본다. 그때그때 떠오르는 생각을 메모하는 건 습관화돼 있다. “남과 꼭같은 표현을 되풀이하고 싶진 않았다.” 그는 미대 회화과 출신이다. 만화 곳곳에서 그 이력을 읽을 수 있다. 어지러운 80년대 말, 학생회장 하느라 졸업은 못했다. “학벌, 격식 따위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에 복학도 포기했다.
다섯 살때부터 그리기를 시작했지만, 만화 쪽으로 방향을 턴 것은 늦은 나이인 24살 때였다. “사회에 진출하면서 내가 그렸던 그림, 회화에 대한 회의가 생겼고, 만화가 더 중요해진 시대가 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32살에 시작한 ‘시사SF’를 읽고 많은 사람들이 그를 40~50대 중년아저씨로 생각했을 만큼, 오히려 늦게 시작한 것이 ‘득도’와 ‘노련’의 풍요를 누리게 만들어준 토대가 됐는지도 모른다.
데뷔 작품은 93년부터 1년 남짓 주간 <내일신문>에 연재한 4쪽짜리 ‘만화같은 세상’이었는데, 시사만화로는 최초의 페이지만화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 전에 “사회성 있는 만화”를 지향한 창작만화집단 ‘작화공방’에서 활동하면서 5년간 습작기를 거쳤다. “지금은 컴퓨터 작업이 일반화됐지만 시사SF를 시작하던 그 무렵엔 거의 독보적이었다.”
요즘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출강하면서 인터넷 사이트 ‘상상마당’, ‘코믹타운’에 ‘하롱하롱’을 연재하고 있다. 소설가 성석제씨의 단편이나 꽁트를 만화화하는 것인데, 사실극화체로 그린다. “시사SF는 90%가 아이디어고 그림은 10%였는데, 지금 작업은 연출·그림이 90%다.” 그러면서 “거의 20년이 지나도록 변함없는 원고료”, 실제로는 사실상 계속 깎여온 만화가의 열악한 지위를 개선하기 위해 뭔가 해야겠다는 결의도 내비쳤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만화가 조남준씨
요즘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출강하면서 인터넷 사이트 ‘상상마당’, ‘코믹타운’에 ‘하롱하롱’을 연재하고 있다. 소설가 성석제씨의 단편이나 꽁트를 만화화하는 것인데, 사실극화체로 그린다. “시사SF는 90%가 아이디어고 그림은 10%였는데, 지금 작업은 연출·그림이 90%다.” 그러면서 “거의 20년이 지나도록 변함없는 원고료”, 실제로는 사실상 계속 깎여온 만화가의 열악한 지위를 개선하기 위해 뭔가 해야겠다는 결의도 내비쳤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시사SF’ 만화로 배꼽 빼는 조남준씨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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