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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집단의 정의는 이성의 힘만으론 불가능”

등록 2007-02-15 19:18

「라인홀드 니버의 생애와 사상」
「라인홀드 니버의 생애와 사상」
현대신학 ‘3인방’ 중 하나인 니버
집단이기 제어할 정치력 강조
유학시절 ‘역동적 사회윤리’ 매료
“강원룡 목사는 한국의 니버”
책·인터뷰 / ‘라인홀드 니버의 생애와 사상’ 쓴 고범서 교수

“클린턴 대통령이 제임스 레이니 주한 미국대사에게 <도덕적 인간과 비도적적 사회>라는 책을 읽어봤느냐며, 꼭 읽어보라고 권했다고 한다. 클린턴 그 사람 역시 보통이 아니었다.”

원래 칸트의 (개인)윤리학을 전공했으나 미국 유니언신학대와 컬럼비아대 대학원 협동과정, 밴더빌트대 등에서 약 7년간 유학할 때 라인홀트 니버(1892~1971)의 사회윤리를 파고 든 고범서(81) 교수가 <라인홀드 니버의 생애와 사상>(대화문화아카데미)을 냈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몇년간의 작업 끝에 내놓은 이 책은 9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다. 카를 바르트, 폴 틸리히와 함께 ‘20세기 개신교가 배출한 가장 뛰어난 세명의 신학자’의 한 사람이요 미국이 배출한 가장 위대한 개신교 신학자라는 니버. 책은 니버의 생애를 개관하면서 생애 각 시기 및 단계와 관련지어 그의 저서 18권을 요약 소개하고 필요한 해설을 붙였다. “니버를 제대로 알려면 단편이 아닌 그의 저작 전부를 읽어봐야 한다”는 소신을 관철한 니버 사상의 집약본, ‘니버의 모든것’이다.

“개인들 사이에서 정의로운 관계를 순수하게 도덕적, 합리적 설득과 조정을 통해 수립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지만 가능하다. (하지만) 집단들 사이의 관계에서는 불가능하다.”

1970년대 후반 유신독재시절 이 땅에서도 많이 읽힌 니버의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1932)가 던진 메시지는 선명하고 과격하기까지 했다. 니버는 집단간의 정의로운 관계의 수립은 윤리적이라기보다는 정치적이라고 본다. 말하자면 개인들 사이에선 도덕적 설득과 조정을 통해 서로 양보하고 일정한 합의에 이를 수 있지만 그런 개인들이 다수 포진한 집단과 집단 사이에선 그런 게 통하지 않는다. 책 제목이 그것을 압축하고 있다.

저자 고범서 교수
저자 고범서 교수
“비범하게 뛰어난” 저서라는 평을 받은 이 책이 미국사회를 열광과 논란 속으로 몰아넣은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니버는 사회정의 실현과 집단간의 정의로운 관계 수립은 ‘이성’의 힘만으로 불가능하며 집단이기주의를 제어하기 위해선 ‘폭력’을 수용하고 ‘혁명’도 불사해야 한다고 외쳤다. 선의에만 호소할 것이 아니라 정치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강제력을 동원해야 한다는 건 전통신학이 선호하는 ‘윤리적 방법’이 아니라 ‘정치적 방법’이다. “이 ‘정치적 방법’이 사회윤리학의 방법론 모색에서 차지하는 엄청난 중요성을 한국은 물론 미국조차 제대로 간파하지 못하고 있다”고 고 교수는 탄식했다.

그가 니버를 처음 접한 건 1947~8년 대학 초년생 시절 강원룡 목사 덕이었다. 당시 강 목사는 <빛의 아들과 어둠의 아들>(1945) 일본어판을 갖고 있었고 미 문화원에서 <인간의 본성과 운명> 등 니버의 주저들을 빌렸다. “강 목사는 대한민국의 니버였다”며 지난해 8월 타계한 “50년 지기”를 떠올리던 그는 잠시 목이 메었다. 강 목사는 2000년에 크리스천아카데미를 은퇴하면서 20여년간 이사로 일한 고 교수에게 이사장직을 맡겼다.

숭전대 총장 재직 말년에 과로 때문인지 뇌일혈로 쓰러졌다. 거의 회복됐는데 다리 한쪽이 여전히 온전하지 못하다. 20여년간 재직한 한림대에서 지난 학기까지 강의를 했지만 80을 넘기고부터 기력이 떨어지는 걸 느꼈다. 하지만 여전히 사고와 어투는 명석하며 안색도 좋다.


“주요산업의 사회화를 주장할 정도로, 니버는 사회주의자였다. 포드와 싸웠고 일생을 자본주의와 싸웠다. 하지만 현실공산주의 유토피아 사상은 거부했다. 날카롭고 명민했던 그는 신학자라기보다는 사회윤리학자로 자처했다. 하지만 그의 신학사상은 진보적이었으되 생활은 검소하고 금욕주의적이었다.” 목사로서도 성공한 니버는 삼위일체 등 의인화된 신관을 인간 자신의 투사로 파악했으며 예수의 부활도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상징적 표현으로 받아들였다. 본 회퍼도 그랬다. “하지만 니버는 인간의 이성만으론 너무나도 복잡한 인간삶이나 역사를 이해할 수 없고 결과가 예정돼 있지 않는 드라마 같은 것이라고 봤다. 그건 신학이지만 참으로 역동적이며 신나는 사상이었다.” 니버는 인간의 모든 도덕적 성취도 아가페엔 미치지 못하지만 그 근사치에 근접(수렴)할 순 있다고 봤다. “그게 중요하다.” “우주가 신이라면 인간들은 그 세포”라며 니버의 종교 다원주의를 지지하는 고 교수의 또 하나의 소망은 니버에 이어 “틸리히 책도 쓰고 싶다”는 것이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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