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의 <토지>가 모성적 글쓰기로 매혹시켰다면 이병주의 <지리산> <산하>는 남성적 글쓰기의 호쾌함을 알려줬다. 소설은 진실로 서사, 잔재주로는 따라갈 수 없는 삶의 충실한 기록, 그 자체로 존재의 아름다움을 뿜어낸다. 우리는 그저 삶을 살아감으로써 위대해지는 것이다.
커버스토리/이병주 전집에 부쳐
<지리산> <산하> <그해 5월> 등의 선 굵은 남성적 소설을 쓴 이병주(1921~1992)의 전집 30권이 한길사에서 한꺼번에 출간되었다. 이병주기념사업회가 대규모로 꾸려지고 그의 고향 경남 하동에서 이병주문학제가 치러지는 등 그의 문학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나온 ‘이병주 전집’의 의미를 후배 소설가 공지영씨가 짚어 보았다.
“진실이 가지는 진정한 이점은, 그것이 진정으로 참이라면 한 번 두 번 혹은 여러 번 사람들에게 외면당하더라도 오랜 시간이 흘렀을 때 그것이 다시 참임을 밝히는 사람이 반드시 있다는 데 있다”는 존 스튜어트 밀의 말을 생각하며 나는 책장에서 이병주 전집을 들었다.
이병주…. 나는 그를 생각하면 하는 수 없이 나의 이십대를 함께 생각하고야 만다. 1980년대 초,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 아래서, 젊은 날이 하염없이 한심해지고 있을 때 도서관 안에 도피하듯 틀어박혀 읽은 것이 그의 소설들이었다. 이 세상에서 되고 싶은 것도 하나 없고 되어야 할 것 하나 없던 것 같은 시절, 과연 생을 걸고 우리가 도전할 만한 것이 하나라도 있을까 하는 고민이 아마도 세상은 어차피 불의하고 불우하다는 확신으로 나른하게 굳어져 가고 있을 무렵이었을 것이다.
그 때 만난 그의 <지리산>은 하나의 충격이었다. “나에게는 조국이 없다, 오직 산하만이 있을 뿐이다”라는 구절 하나로 반공법 위반 혐의로 감옥에서 실형을 살고 나온 그의 마흔네살 늦깎이의 젊은 피가 갓 스물, 늙어가고 있는 나를 두드린 것이었다. 유신이라는 독재정권의 코미디 같은 억압과 그 현실의 틈새에서 어떻게든 역사의 잃어버린 한 결을 재현하고자 하는 그의 열정을 행간으로 느끼며 나는 책에서 밤새 눈을 떼지 못했다. 1972년 유신이 시작되는 시절, <세대>지에 <지리산> 연재를 시작하며 그는 썼다.
“나는 <지리산>을 실패할 작정을 전제로 쓴다. 민족의 거창한 좌절을 실패 없이 묘사할 수 있으리라는 오만이 내게는 없다. 좌절의 기록이 좌절할 수 있을 수도 있을 법한 일이 아닌가. 최선을 다해 나의 문학적 신념을 <지리산>에 순교할 각오다.”
좌절하고 실패한 역사를, 스스로 실패하기 위해 쓰기 시작하는 이 용기는 어디서 오는가. 오직 실패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한다는 그의 말에 홀린 듯 나는 지리산 어귀와 섬진강 자락을 역사 속에서 버림받고 실패한 그의 인물들을 따라 배회하였다. 그는 햇빛과 달빛 이 둘을 날실과 씨실로 엮어 작가의 세계관으로 다시 역사를 써내려간다. 그는 그러므로 신화와 역사를 모두 아우르는 것이 소설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태양만 빛나는 삶도, 어둠만 내렸던 삶도 실은 없기 때문이며 기록자로서의 소설가는 그 둘을 함께 엮어내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소설 속에서 돌멩이 하나를 들고 골리앗 같은 거대한 역사 앞에 선 어린 다윗의 용기를 보았다. 작가라는 것이, 글이라는 것이 혹은 소설이라는 것이 다윗의 어깨에 내렸던 신탁만큼 거대하다는 비밀을 언뜻 훔쳐본 것이다.
당시 박경리의 <토지>가 모성적 글쓰기로 나를 매혹시켰다면 이병주의 <지리산>과 <산하>는 내게 남성적 글쓰기의 호쾌함을 알려주었으며, 그 둘은 함께 내게 소설은 진실로 서사, 즉 이야기이며 “역사의 그물이 놓치고 있는 인생에의 따뜻한 애정과 기록”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몇 개의 문장과 낱말의 빼어남을 논하는 잔재주로는 따라갈 수 없는 어떤 삶들의 충실한 기록이 그 자체로 존재의 아름다움을 뿜어낼 수 있다는 희망도 보았다. 실패한 삶도 영화로 가득 찼던 삶도 참으로 작아 보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저 삶을 살아감으로써 결국 위대해진다는 것을 배운 것이다.
얼마 전 그의 문학제에 참가하기 위해 나는 섬진강가 그의 문학비 앞에 서 있었다. 때는 봄이어서 섬진강가에 서 있던 벚나무들이 일제히 꽃잎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그날은 마침 그의 기일 어름이었는데, 태어나는 날도 중요하지만 죽는 날도 참으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벚꽃 잎들이 산화하듯 떨어지며 연록색 이파리에 가지를 내어주는 동안 섬진강변에서는 흰 배꽃들이 힘차게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으며 다만 강물만이 짙푸른 빛으로 늘 그렇듯 흘러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강물도 어제의 강물은 아니니, 원고료를 셈하고 사소한 비난 앞에서 분해 떠는 나의 남루하고 치사한 일상이 산 자가 죽고 죽은 자가 살아나며 실패가 성공으로 변하고 성공이 감옥으로 쫓겨가는 역사 앞에 선 듯했다. 지리산의 어깨가 북풍을 막아주고 섬진강이 버선목처럼 곱게 휘도는 그 여울목에서 나는 <산하>의 마지막 구절을 떠올리고 있었다.
“누렇게 나락이 익어 있는 들 사이로 은빛으로 반짝이며 강이 흐르고 있었고, 멀리 갈수록 추상적인 담청색이 되면서 산과 산은 파도를 이루고 있었다.
아아, 산하! 이 땅에 생을 받은 사람이면 좋거나 나쁘거나, 잘났거나 못났거나 모두 이 산하로 화하는 것이다. 이미 이종문은 산하로 되어버렸다. 살아 있는 사람은 일단 산을 내려가야 하는 것이다. 시심과는 먼 곳에 있는 이동식의 가슴에 시를 닮은 구절이 고였다.
태양에 바래지면 역사가 되고
월광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
지금 그 글을 쓴 이병주도 산하가 되었다. 지리산을 오르내리던 젊은 파르티잔 청년들도 산하가 되었다. 권력을 쫓아 부나비처럼 떠돌던 현대사의 인물들도 산하가 되었다. 그리고 그의 이름 앞에 붙어다니던 ‘회색 분자’라는 딱지도 함께 산하가 되었다.
“한이 많아 글을 쓴다”라고 그는 말했다. 1921년에 태어나 한국 현대사의 격동기를 살아내면서 한이 없다면 아마도 그는 진정한 회색분자였을 것이다. 그러니 세상 앞에서 작아지지 말자고 그는 말하는 듯했다. 남루해지는 것만이 삶은 아니라고, 그는 말하는 듯했다. “세상에서 영원한 진실은 단 한가지인데 그것은 모든 것은 변화한다는 것이다”라는, 젊은날 나를 뒤흔든 구절을 생각하며 나는 문학이 나아갈 길을 그에게 묻고 있었다. 그는 사진에서처럼 그저 허허 웃을 뿐이겠지만 나는 그의 말대로 “산 자”이니 산을 내려가 붓을 들어야 했다. 산다는 것이 별처럼 외롭고 마귀처럼 비참한 것이니, 글은 그 둘을 모두 기록해야 한다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배낭을 메고 섬진강가를 지나가던 젊은이 둘이 자기들끼리 웃으며 물었다. 이병주가 대체 누구예요?
나는 그런 그들에게 이병주의 소설들을 가만히 내밀고 싶다. 그들이 그것을 읽든 그렇지 않든, 혹은 읽었다 해도 소중히 여기든 그렇지 않든, 그것은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삶은 계속되고, 어떤 이는 산으로 가고 어떤 이는 저자거리로 간다. 봄이 한뼘씩 오르고 있는 지리산에는 작가의 말대로 파시스트에 대항했다가 거룩하게 깨어진, 그러나 끝내는 현대사를 구제한, 스페인 인민전선의 열정이 메아리치고 있었다. 평론가 김윤식은 <지리산>에 붙인 글에서 스페인 내란 때 죽은 가르시아 로르카의 구절을 인용했다. 나도 그러고 싶다. 왜냐하면 실제로 그런 바람의 노래들이 지리산 계곡을 따라 흘러내리고 있는 것이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어디에서 죽고 싶으냐고 물으면 카탈루냐에서 죽고 싶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어느 때 죽고 싶냐고 물으면 별들만 노래하고 지상엔 모든 음향이 일제히 정지했을 때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유언이 없느냐고 물으면 나의 무덤에 꽃을 심지 말라고 부탁할 수밖에 없다.”
그는 산하가 되었지만, 그가 남긴 책들은 지리산을 타고 오르는 봄처럼 다시 소생하고 있다. 생을 걸고 싶은 몇 안 되는 것들 중 문학만은 살아 오늘도 산하가 된 사람들의 이름을 불러내고 있다. 이병주의 소설들에 푹 빠져 지낸 며칠 동안은 참으로 위대한 것과 참으로 사소한 것, 참으로 실패한 것과 참으로 성공한 것이 무엇인지 내게 묻는 시간들이었다. 황사로 뒤덮인대도 꽃은 피어나고 계절은 봄으로 가는데…. 나는 문득 다시 섬진강으로 가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