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서 69년판 ‘보물’ 꽃그림책 발견
초판 1931년 펴낸 크레인은 누구일까
이국땅서 꽃전설 채집하고 그린 여성
‘선교사 남편’ ‘순천’ 단서로
행방 수소문 백년전으로 시간여행
초판 1931년 펴낸 크레인은 누구일까
이국땅서 꽃전설 채집하고 그린 여성
‘선교사 남편’ ‘순천’ 단서로
행방 수소문 백년전으로 시간여행
커버스토리 과거로 가는 20일간의 시간여행은 헌책방에서 우연히 발견한 한권의 책에서 비롯됐다. 3월9일 종로구 혜화동의 헌책방 혜성서점을 찾았을 때 주인 전순인씨는
140여개 식물은 한창 때를 기준으로 월별로 나눠 학명, 향명, 쓰임새 외에 꽃말과 얽힌 이야기를 붙였다. 엉겅퀴, 나팔꽃, 찔레, 고들빼기, 동백, 철쭉, 모란, 민들레, 패랭이꽃, 괭이밥 등 눈에 익은 것 외에 히어리, 개불알꽃, 병꽃나무, 범부채, 금불초, 물칭개나물(노야긔), 순비기나무, 달네깨비(닭의장풀), 큰각시취, 청미래덩굴 등 생소한 것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털마삭줄, 동의나물, 큰꽃으아리, 설무초, 송이풀, 덥글력굴(누른종덩굴), 자주꿩의비름, 전출라, 마타리, 네귀쓴풀은 듣도보도 못한 이름의 식물이다. 그게 그것인 줄 알았던 제비꽃도 그냥 제비꽃 외에 호제비꽃, 알록제비꽃, 털제비꽃, 흰젖제비꽃, 흰털제비꽃, 고깔제비꽃이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해당화에는 용궁처녀와 지상총각의 애절한 사랑이야기를, 맨드라미에는 닭싸움으로 잃은 황금닭을 묻은 데서 피어나 닭벼슬을 닮았다는 전설을, 할미꽃은 잘 나가는 두 딸한테 박대받고 나무꾼 아내인 셋째딸을 찾아가다 죽은 할미 이야기를 덧붙여 까맣게 잊힌 옛 이야기의 세계로 끌어들였다. 지상의 처녀를 사랑한 별의 정령이 서린 봉선화, 사랑하는 여인에게 꽃을 꺾어 주려다 익사한 총각을 기리는 물망초, 풀과 나무를 다 태우는 용을 물리친 장사의 피가 흘러 피어난 비비추, 종달새의 곡예비행에 넋이 빠져 넘어지는 통에 절름발이가 되었다는 제비꽃 등은 서양설화. 1929년 당시 일본을 통한 서양의 영향이 무척 컸음을 보여주었다. 배롱나무(백일홍나무)에는 동서양의 전설이 한꺼번에 뒤섞여 채록돼 있다. 또 제비꽃에서는 고개숙인 꽃을 따 서로 걸고 당겨 누가 이기는가를 내기했던, 고추에서는 “어려서 파란치마, 커서는 붉은치마를 입는 게 뭐게?”라며 수수께끼놀이를 했던 어렸을 적 기억을 되살려 주었다. 주말이면 산을 쫓아다녔으면서도 구절초와 쑥부쟁이를 겨우 구별하고 물봉선과 동자꽃을 눈동냥한 정도인 나의 눈에 상당부분 모르는 식물들에 관한 책을 엮어낸 한 서양인의 노고가 책에 포함된 수채화만큼이나 아름답게 비쳤다. 본격적인 탐색을 시작했다. 교회사연구소(소장 옥한음)에서 알려준 지은이의 남편 크레인 목사에 관한 사실. <미시시피대학, 유니언신학교 졸업. 1913~1938년 한국에 머물며 평양 장로회 신학교서 조직신학을 가르쳤고 순천선교부에 소속돼 순천 매산학교, 전주 신흥학교, 광주 소피아학교, 목포 정명학교 등 미션스쿨의 창립 운영 감독을 맡았음. 신앙이 깊어 폐교를 불사하며 신사참배에 반대했음. 1946~1956년 2차로 한국에 와 순천에서 활동> 이어 순천 매산고등학교, 광주 호남신학대학교에 전화를 걸고, 인터넷에서 미국의 족보를 뒤진 결과는 몇가지 단편적인 사실을 추가하는 것으로 그쳤을 뿐 속절없이 일주일이 흘렀다. 그러다 우연히 <크레인 가족의 한국선교>(임춘복 지음, 한국장로교출판사 펴냄)란 책을 발견했다. 1999년에 발간된 그 책에는 그들 가족의 활동상이 상술돼 있을 뿐더러 크레인 목사 부부, <한국의 야생화>에 실린 수채화 외에 크레인 목사 부부의 묘비사진까지 실려있는 게 아닌가. 기쁜 동시에 실망스러움. 정확히 말해 무척 당혹스러웠다. 더 이상 알아보고 자시고 할 일이 없어진 것. 하지만 미국의 한 집안 사람들이 한국에 와 이름없이 봉사한 사실은 기독교적인 사랑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하는 내게도 이해하긴 힘들지만 적지않은 감동을 주었다. 교회사연구소 ‘똑똑’
미국 족보 뒤져보니
일가족 모두 한국땅서 헌신
아들 폴이 쓴 ‘한국 안내서’
어느 헌책방서 만난 것으로
행복한 여정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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