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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책&생각] ‘정신세계’를 찾아 구도하듯 해온 번역

등록 2023-11-10 05:01수정 2023-11-10 09:53

번역가를 찾아서 │ 이균형 번역가

명상과 요가 배우며 접한 세계
‘상처받지 않는 영혼’ 등 40여권
“영성은 존재의 회귀본능…
번역은 배우고 또 나누는 수단”
평생 ‘정신세계’에 대한 책을 번역해 온 이균형 번역가가 지난주에 출간된 ‘삶이 당신보다 더 잘 안다’를 들고 사진 포즈를 취하고 있다. 본인 제공
평생 ‘정신세계’에 대한 책을 번역해 온 이균형 번역가가 지난주에 출간된 ‘삶이 당신보다 더 잘 안다’를 들고 사진 포즈를 취하고 있다. 본인 제공

80년대 중반, 한쪽에서 반독재 저항운동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을 때 다른 한쪽에서는 이른바 ‘정신세계’ 책들이 날개돋친 듯 팔려나갔다. ‘성자가 된 청소부’, ‘단’ 등의 책이 100만부 넘게 팔렸고, 칼릴 지브란, 라즈니쉬, 크리슈나무르티 등 영적 저자들의 이름이 10∼20대 독자들에게도 낯설지 않았다. 뜨거운 관심이 사그라든 뒤에도 그 자리에 남아서 묵묵히 번역 작업을 이어온 사람이 있다. 최근에도 ‘은둔의 수행자’로 유명한 마이클 싱어의 ‘삶이 당신보다 더 잘 안다’(라이팅하우스)를 펴낸 이균형 번역가를 만났다.

80년대 중반은 연세대 전기공학과를 갓 졸업한 그가 첫 직장인 아이비엠(IBM)에 다니고 있을 때였다. 당시 주5일제를 실시하던 드문 회사였다. 여가를 어떻게 쓸까 고민하다 오가던 길에 눈에 띈 요가원에 등록했다. 그곳은 명상과 정통 요가를 가르치며 평소 접하지 못한 책들을 권했다. 평생 ‘범생이’로만 살아온 그에게 그런 책들은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질과 삶의 의미를 묻게 만들었다. 특히 구도자 요가난다의 자서전이 그를 사로잡았다. 스티브 잡스의 아이패드에 유일하게 저장돼 있던 책으로, 잡스가 10대부터 매년 한 번씩 반복해서 읽었다는 책이다.

“그때부터 안정된 직장에서 돈 벌어 집 마련하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키우는 등 사회가 정해놓은 궤도의 삶에는 흥미가 없어졌어요. ‘여태껏 나는 이 존재에 대해 아무런 의문도 품어보지 않고 그저 남들이 가는 길을 눈감고 따라가고 있었구나’ 하는 걸 깨달았죠.”

회사를 그만두고 ‘구도자’의 길을 가기로 했다. 마침 함께 요가를 공부하던 친구의 부탁으로 처음으로 영문 원서를 한 권 번역하게 됐다. ‘성자가 된 청소부’의 저자가 쓴 책이었다. 번역해 보니 ‘내 공부도 할 수 있는 좋은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35년간 1년에 한 권 이상씩 40여권의 책을 번역한 배경이다.

명상과 수행, 깨달음, 윤회와 의식의 진화, 우주의 비밀 등에 관한 책 외에도 공학도 출신으로 정신세계에 대한 과학적 접근을 다룬 책들을 다수 번역했다. 생계나 경력을 위해서보다는 구도자로서 자신과 독자들의 의문에 답해줄 책들을 찾아 공부하듯이 번역을 해 왔다. 그는 “번역은 배우고 싶은 것을 가장 빨리 가장 깊이 공부하고, 그것을 이웃에도 전해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인도 등 세계 각지를 여행하면서 오쇼 라즈니쉬 등 살아 있는 스승을 여럿 만나기도 하고, 인도의 오로빌 공동체에서 5년간 살기도 했다. 오로빌은 인종, 성별에 차별 없이 조화로운 세상을 추구하는 영적 공동체다. 2006년부터 10년간은 정신세계사에서 편집주간으로 일했다. “정신세계사와는 인연이 참 특별합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독자로 시작해서 번역가를 거쳐 편집주간까지 맡게 됐으니까요.”

공대 출신에 번역을 따로 배우지도 않았지만 그의 번역은 물 흐르듯 술술 읽힌다. 그는 “어릴 때부터 독서를 많이 해서 그런지 국어·영어 성적이 가장 좋았다”고 고백했다. 그의 번역 원칙은 가독성이다. “문장을 읽을 때 ‘이게 무슨 뜻이지?’ 하고 다시 돌아가서 읽게 만들면 잘된 번역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영어 냄새가 나지 않게 한국인 저자가 쓴 책처럼 번역하려고 애쓴다”고 설명했다.

번역한 책 중 스테디셀러로 자리를 잡은 책으로는 ‘상처받지 않는 영혼’이 있다. 한국에서 출간된 후 ‘오프라 윈프리 쇼’에 소개되면서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됐고, 한국에서도 열광하는 독자층이 생겨났다. 최근 펴낸 ‘삶이 당신보다 더 잘 안다’는 이 책의 후속편으로, 두 책은 우리가 어쩌다가 이 존재의 곤경과 불행에 빠지게 되었고 어떻게 하면 거기서 빠져나갈 수 있는지 친절하게 안내한다.

“영성은 존재의 회귀본능이죠. 긴 방황 끝에 애초에 자기가 온 곳이 어디인지가 궁금하고, 집으로 돌아가 쉬고 싶어하는, 내면의 본능적 요구입니다. 이는 집으로 돌아갈 길을 찾는 마음, 곧 ‘구도심’입니다. 지금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집이 아니라 잠시 놀러 온 ‘가상현실 게임 사이트’라는 걸 깨닫고 진정한 집을 찾아가는 과정이 수행이고요.” 지금 여기가 가상현실 게임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설계자의 의도는, 이 사이트의 절묘한 아름다움을 음미하며 잘 어울려 놀다가 최종 관문, 곧 출구를 찾아서 집으로 돌아가라는 것일 겁니다. 이번 게임에서 출구를 못 찾으면 다시 돌아와, 즉 환생해 최종 관문을 통과할 때까지 게임을 해야지요.” 순간적으로 ‘이 너머의 세계’에 접속하게 만드는 대답이었다.

김아리 객원기자 ari@hani.co.kr

■이런 책들을 옮겼어요

홀로그램 우주

물질우주와 의식세계를 망라해 인간이 풀지 못한 수수께끼들을 ‘홀로그램 패러다임’을 통해 풀 수 있음을 역설하는 스테디셀러다. “우주의 근원적 질문에 답해줄 결정적인 열쇠를 만나게 될 것.” 이 책을 번역한 뒤 ‘홀로그램’이 화두가 되어 ‘우주의 홀로그래피’라는 책을 직접 쓰기도 했다.

마이클 탤보트, 정신세계사(1999)

자발적 진화

세포생물학자가 세포의 진화과정을 관찰하여 발견해낸 ‘진화의 프랙탈’이자, 인간이 ‘인류’라는 하나의 초생물체로 한 단계 더 ‘자발적으로’ 진화해가야 하는 이유를 밝히는 신생물학의 거대담론. “인류의 앞날을 걱정하는 독자라면 강추하는 필독서로서 인류의 가슴 뛰는 미래상을 보여주는 책.”

브루스 립튼 등, 정신세계사(2012)

1분 명상법

아무리 바빠도 화장실은 간다. 화장실과 지하철과 버스 안, 계산대 앞의 줄 등에서도 잠시나마 자신의 고요한 내면에 접속하는 명상 비법을 알려주며, 하루 1분만이라도 제대로 명상을 하면 삶의 혼란이 평정될 수 있다고 전한다. “너무너무 바쁘지만 명상이란 것을 배우고 싶다면 이 책이 방법”이라고.

마틴 보로슨, 정신세계사(2015)

비 히어 나우(Be Here Now)

68혁명과 히피운동이 서구를 휩쓸었던 60년대 말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였던 람다스가 히말라야에서 구루를 만나고 겪은 영적 체험과 깨달음을 전하며 진정한 자기를 만나는 법을 알려준다. “스티브 잡스 등 당시 서구 젊은이들 내면에서 일어났던 일을 들여다볼 수 있는 책.” 12월 출간 예정.

람다스, 정신세계사(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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