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많이 알았던 사람
앨런 튜링과 컴퓨터의 발명
데이비드 리비트 지음, 고중숙 옮김 l 승산(2008)
“기계가 인간처럼 지능적 행동을 보이는 것이 가능한가.”
이 물음은 인공지능(AI)이란 말은커녕 컴퓨터란 단어가 오늘날처럼 전자기기가 아닌 주판이나 계산자 또는 계산하는 사람을 뜻하던 시대에 천재적인 수학자 앨런 튜링(1912~1954)이 던진 질문이었다. 그는 1936년 한 편의 논문을 세상에 내놓는데, 이 논문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수학적 과제 중 하나에 도전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른바 ‘결정가능성 문제’라고 불리는 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프로그램을 할 수 있는 가상적 기계를 상정했고, 이 기계는 ‘튜링머신’이라 불렸다. 튜링머신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암호체계 에니그마를 풀기 위해 실제로 구현되었는데, 이것이 현대적 컴퓨터의 원조였다.
1950년 튜링은 ‘계산기계와 지성’이라는 논문을 통해 기계 즉 컴퓨터가 인간처럼 생각할 수 있다는 견해를 제시하면서 컴퓨터가 독자적 지능과 사고를 지녔는지 인간과의 대화를 통해 확인하는 방법으로 ‘튜링 테스트’란 것을 고안해냈다. 그는 이 논문에서 컴퓨터와 대화를 나누고 컴퓨터의 반응을 인간의 반응과 구별할 수 없다면 컴퓨터의 인공지능이 사고할 수 있는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이런 견해는 오늘날 인공지능의 개념적 기반을 제공했고, 그의 이름을 딴 튜링 테스트는 인공지능을 판별하는 기준이 되었다. 아직까지 진정한 의미에서 이 테스트를 통과한 기계는 없지만, 앞으로 기술 수준이 더욱 발달하게 된다면 머지않은 장래의 언젠가 ‘챗지피티’(ChatGPT)가 그 ‘첫번째 통과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앨런 튜링은 현대적인 컴퓨터에 이르는 가장 중요한 돌파구를 열었고, 폰 노이만,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과 친교를 나누는 20세기의 가장 예리한 지성인 가운데 한 명이었다. 하지만, 동성애가 아직 불법이던 시절, 영국에서 공공연한 동성애자로 살았던 튜링은 재판을 받고 화학적 거세라는 굴욕적인 ‘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재판 이후 그는 감옥에 가는 대신 범죄적(?) 동성애 성향을 치료한다는 명분으로 에스트로겐 요법을 강요당했고, 그 결과 젖가슴이 자라나는 부작용을 경험하게 된다. 이런 굴욕을 참을 수 없었던 튜링은 자신의 침대에서 독이 든 사과를 베어 문 채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수학자 앨런 튜링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2014)의 한 장면.
튜링은 컴퓨터가 인간처럼 계산을 할 수 있다면, 인간처럼 생각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튜링의 ‘생각하는 기계’란 발상은 인간의 영역을 모방하는 기계들의 존재가 증명한다. 텔레비전 카메라가 인간의 눈을, 마이크로폰이 인간의 귀를, 스피커가 인간의 목소리를 복제하여 흉내 낼 수 있다면, 우리의 신경 기능이나 사고 기능을 흉내 내고 따라 할 수 있는 전기적 모델을 만들어 낼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아무리 기술이 발달하더라도 이윤이 되지 않는다면 단 한 푼의 돈도 허투루 쓰지 않는 자본주의는 결코 바퀴가 달린 차에 엄청난 공을 들여 훨씬 비효율적인 인간의 다리를 흉내 낸 차를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우리 인간이 컴퓨터처럼 완벽하게 합리적인 존재가 될 수 없다면, 오히려 인간은 그 반대로 컴퓨터 인공지능의 합리성이 할 수 없는 일이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한다. 인간은 단순히 합리적 지능만 있는 존재가 아니라 하늘의 별과 들판의 꽃을 바라보며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이다.
전성원/<황해문화>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