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임할 권리와 여성 해방의 시작
마거릿 생어 지음, 김용준 옮김 l 동아시아 l 1만6000원 “아이가 태어나면 죽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기도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고, 현재는 일곱 아이의 엄마입니다.” 100년 전 미국 뉴욕. 간호사 마거릿 생어는 수천명의 ‘어머니’들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이미 여러명의 아이를 둔 여성들은 추가 임신을 막을 방법을 알고 싶어 생어를 찾았다. 생어는 이들을 위해 피임법을 개발하고 가르치다 체포됐다. 피임 정보를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법에 저촉되던 시절이었다. 책은 “수백만명의 여성이 자발적인 모성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고 말하는 선언문인 동시에 “마지막 아이가 태어난 후 2∼3년 안에 출산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고 일러주는 실전 지침서다. 저자는 가장 노골적인 영아 살해의 방식으로 가족 수를 제한하려는 여성들이 과거부터 존재했다고 짚는다. 어머니의 노동만으로 보살필 수 없을 만큼 많은 아이들은 대가족의 생명을 위협하는 요인이었다는 것이다. 가난한 집의 넘쳐나는 아이들은 머지않아 노동자가 된다. 돌봄노동의 대상을 넘어선 아이들은, 다시 노동자 아버지의 일자리를 넘본다. 피임은 가족을 넘어 모든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기술이다. 책의 제목이 여성을 넘어선 ‘새로운 인류’를 호명하는 이유다. 아이가 태어나면 죽게 해달라고 빌었던 여성은 “아이들을 직접 돌볼 수 없고 다른 사람이 그 일을 대신하게 할 수 없으면, 아이들을 무작정 낳을 수 있는 권리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증언했다. 여성에게 아이를 낳으라 윽박지르지만, 동시에 아이를 원치 않는 ‘노키즈존’이 있는 나라에서 100년 전의 기도는 여전히 울림이 있다. 조해영 기자 hycho@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