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과 다른 지적장애의 역사
19세기 이후 시설에 가둔 ‘대감호 시대’
우생학 등에 입각한 편견과 격리…
‘해방’ 이후에도 후유증 가시지 않아
19세기 이후 시설에 가둔 ‘대감호 시대’
우생학 등에 입각한 편견과 격리…
‘해방’ 이후에도 후유증 가시지 않아
사이먼 재럿 지음, 최이현 옮김, 정은희 감수 l 생각이음 l 2만2000원 “인간은 인간 부모에게서 태어난 존재다.” <백치라 불린 사람들>을 쓴 영국 역사가 사이먼 재럿이 제시한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개인적 정의다. “내가 무언가를 안다는 사실을 아는 존재”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며 공감할 줄 알고 미래를 생각하는 존재” “관계를 형성할 수 있고 이중적이거나 유머 감각이 있는 존재” 등 그럴듯한 걸 놔두고 이렇듯 ‘시시껄렁한’ 것을 택했을까. 숱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일 테지만 지은이는 서문에서 설핏 언급하고 지나간다. 이 대목이 눈에 몹시 거슬렸는데, 400여 쪽 책을 덮고 난 뒤에 결국 이 문장은 나를 향해 돌진해 와 가라앉은 기억을 휘저었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 담 너머 집에 한 청년이 살았다. 말을 할 줄 몰라 “애~” “애~” 외침으로써 의사표시를 해 애 어른 할 것 없이 그를 ‘애배’라 불렀다. 나를 포함해 그 동네에 살지 않는 아이들은 그를 무서워해 피해 다녔다. 2학년 즈음, 여럿이 그를 ‘머저리’라고 놀리는 틈에 꼈다가 얼굴이 벌게 쫒아온 그한테 책보를 뺏긴 적도 있다. 담임선생이 애꿎은 뒷감당을 했다. 애배가 구구셈 정도는 했는지 알 수 없으나 농사일을 돕고, 나뭇짐을 져 나르는 걸 본 적이 있다. 대학생이 되어 철학개론 수업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를 공부하면서 여러 고급스런 정의에 ‘애배’는 포함되지 않는 걸 알았다. 듣자니 혼인을 하지 못한 채 총각으로 늙어 죽었는데, 그는 스스로 살 만한 삶을 살았을까. ‘일찍 죽는 편이 낫지는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던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지은이의 ‘시시껄렁한’ 정의는 내게 충격이다. 지적장애인을 인간으로 품도록 하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지적장애인을 그저 하나의 인간으로 이해하고 단계별 능력 검증 없이 있는 그대로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되면 그들이 완전한 인권을 보장받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의사, 심리학자, 사회복지사, 판사 앞에서 자신을 인간으로 인정해 달라고 호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백치라 불린 사람들>은 19세기 중반부터 1980년대까지 140년에 걸친 ‘대감호 시대’를 중심으로 전후 400년 동안 벌어진 지적장애인에 대한 담론이다. 지은이가 영국인인지라 영국 얘기가 중심이다. 하지만 대영제국 식민지를 거느린 시절이 포함되고, 프랑스와 미국을 아우르기에 보편사라 할 만하다.
영국 얼스우드 정신의료시설의 초기 드로잉. 1854년 3월11일자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 세계 최초의 백치아동을 위한 특수목적의 정신의료시설로 1855년 500개 병상을 갖춰 공식적으로 문을 열었다. 생각이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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