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당분간은 겸손하지 않기로…“번역가가 쏙 빠지면 안 되죠”

등록 2022-04-29 04:59수정 2022-04-29 11:46

[한겨레BOOK] 번역가를 찾아서 - 안톤 허 번역가

‘저주토끼’ 등 부커상 후보작 번역
한영번역가로 데뷔한 지 이제 5년 차
번역 출간한 책 5권 중 2권이 부커상 후보
“좋아하는 작품 충실히 읽고 이해해”

2022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후보에 오른 소설집 <저주토기>의 정보라 작가(오른쪽)와 번역가 안톤 허가 지난 14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언론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2022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후보에 오른 소설집 <저주토기>의 정보라 작가(오른쪽)와 번역가 안톤 허가 지난 14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언론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안톤 허 번역가는 현재 번역 중인 듀나 작가의 &lt;평형추&gt;를 비롯해 앞으로도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을 번역할 계획이다. 안톤 허 제공
안톤 허 번역가는 현재 번역 중인 듀나 작가의 <평형추>를 비롯해 앞으로도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을 번역할 계획이다. 안톤 허 제공

그는 굳이 겸손할 이유가 없다. 올해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1차 후보 13편 가운데 그가 번역한 박상영 작가의 <대도시의 사랑법>(창비, 2019)과 정보라 작가의 <저주토끼>(2017, 아작)가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저주토끼>는 최종후보가 됐다. 2005년 부커상에 인터내셔널 부문이 생긴 이래 같은 번역가의 작품이 두 편 동시에 지명된 경우는 단 두 번뿐이고, 그가 세 번째다. 게다가 한영번역가로 데뷔한 지 이제 5년 차인 그가 출간한 책은 모두 합쳐 다섯 권인데, 그중 두 권이 부커상 후보로 낙점됐다. 누구보다 본인이 놀랐다.

“처음 <저주토끼> 후보 지명 소식을 듣고 얼떨떨해하고 있는데 15분쯤 있다가 <대도시의 사랑법>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누가 장난을 치는구나 싶었죠.”

실감 안 날 만큼 기쁜 건 기쁜 거고, 안톤 허 번역가는 당분간 겸손하지 않기로 했다. 이참에 ‘번역가’의 존재감을 한껏 드러내기로 한 것이다.

“부커상은 영어로 번역·출간된 책에 주는 상이에요. 그러니 이번에 상을 받은 건 국내 출판사가 만든 한국어 책이 아니라 영국 출판사가 만든 제 책이지요. 그런데 일부 언론에선 ‘국내 작가 두 명이 부커상 후보에 올랐다’고만 해요, 제 얘긴 쏙 빼고. 번역가가 무시당하거나 이름이 지워지는 건 흔한 일이지만 부커상만큼은 그러면 안 되죠.”

국내 출판사들이 마치 자신들의 업적인 양하는 것도, 이해는 되지만 짚고 넘어갈 생각이다. “국내 출판사에서 작품을 의뢰받아 번역한 게 아니에요. 우리나라 출판계가 영한번역에 관심이 별로 없는데다 저는 이름난 번역가도 아니니까요. 제가 번역하고 싶은 작품을 골라서 저작권자를 설득하고 책을 내줄 해외 출판사를 섭외하고 출간 후엔 현지 홍보도 했어요. 좋아서 한 일이지만 외롭고 힘들었죠.”

영어와 모국어의 경계마저 흐릿한, 출중한 번역 실력을 가진 그가 일 년에 한 편꼴로 작업을 할 수밖에 없었던 데는 “오전에 두세 시간 집중해 번역한 후 오후엔 출판 관련 해외 비즈니스를 해야 하는” 업무 환경 탓도 크다. 그렇게 혼자 다 하면서, 본인이 선택한 책이 영미권 독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할까 두려운 적은 없었을까?

“제가 영미권 독자잖아요. 내가 읽어서 재밌으면 다른 영미권 독자들도 재밌겠죠(웃음). 사람들이 종종 ‘한국문학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서 한영번역을 하느냐’고 묻는데, 저는 한국문학을 특별히 사랑한다기보다 그저 제가 좋아하는 작품을 번역하는데 원작이 한국어일 뿐이에요.”

해외 근무를 하는 아버지와 함께 온 가족이 스웨덴, 홍콩, 에티오피아, 타이 등지로 다녔고,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어머니의 전속 통·번역가를 자처한 것이 일의 시작이었다. 한국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도 짬짬이 통·번역 아르바이트를 했고 고려대 법대를 거쳐 서울대 영어영문학 대학원을 마친 후 본격적으로 한영번역에 뛰어들었다. 그에게 번역은 일이라기보다 친숙한 일상에 가깝다.

그는 번역을 하면서 작가와 별다른 소통을 하지 않는다. 박상영 작가는 <대도시의 사랑법>을 번역한다는 소식에 이제나저제나 연락을 기다렸으나 “번역이 끝날 때까지 전화 한 통이 없어 놀랐다”고 한다. “좋아하는 작품을 충실히 읽고 충분히 이해한 후 번역하기 때문에 작가에게 특별히 물어볼 말이 없어서”라는데, 그런 그가 가장 기뻤던 순간은 그의 첫 문학 번역서인 <리진>(문학동네, 2001)에 대해 신경숙 작가가 “안톤은 내 머릿속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 같다”고 말했을 때다.

그는 또한 풀리지 않는 문장 하나를 두고 골치를 앓은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세상 모든 번역가들이 부럽고 샘이 날 이 놀라운 능력의 비결을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잊으셨어요? 저 부커상 후보예요. 저 번역 지인짜 잘해요.” 그렇다, 그는 정말이지 겸손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 것이다. 이미경 자유기고가 nanazaraza@gmail.com

번역가 안톤 허, 이런 책을 옮겼어요

<리진 >(The Court Dancer)
신경숙 지음, Pegasus Books(2011)
구한말 궁중무희 리진과 프랑스 외교관 콜랭 드 플랑시의 사랑 이야기. 2011년에 발표된 신경숙 작가의 장편소설 <리진 >은 안톤 허 번역가가 처음으로 펴낸 문학 번역서다. “사랑 이야기도 좋았지만, 번역가가 등장해서 더더욱 재미있게 읽었다 ”고.

<저주토끼 >(Cursed Bunny) 정보라 지음, Honford Star(2020)
부커상 최종후보로 지명된 정보라 작가의 <저주토끼>는 “공포물을 안 좋아하는 독자라도 한번 빠지면 헤어나오기 힘든 매력”을 지녔다. 부커상 심사위원회는 “마법적 사실주의, 호러, 에스에프 (SF)의 경계를 초월한 작품 ”이라고 설명했다.

<대도시의 사랑법 >(Love in the Big City) 박상영 지음, Tilted Axis Press(2021)
부커상 1차 후보 (롱리스트 )에 오른 박상영 작가의 <대도시의 사랑법>은 안톤 허 번역가에겐 “번역하기 전에 이미 엄청난 베스트셀러였기 때문에 굳이 추천의 이유를 덧붙이고 싶지 않은, 누구나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작품 ”이다.

<바이올렛 >(Violets) 신경숙 지음, Feminist Press(2022)
한여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여성들의 뜨거운 인생 이야기. 신경숙 작가의 네번째 장편소설 <바이올렛 >은 2001년 여름 초판이 발행됐고, 올해 안톤 허 번역가의 영어판 발행에 맞춰 개정판이 나왔다 . “여름을 앞둔 이 계절에 딱 어울리는 책 ”이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해뜰날’ 가수 송대관 별세 1.

‘해뜰날’ 가수 송대관 별세

뉴진스 새 팀명은 ‘NJZ’…3월 ‘컴플렉스콘 홍콩’에서 신곡 발표 2.

뉴진스 새 팀명은 ‘NJZ’…3월 ‘컴플렉스콘 홍콩’에서 신곡 발표

“현철 선생님 떠나고 송대관 선배까지…” 트로트의 한 별이 지다 3.

“현철 선생님 떠나고 송대관 선배까지…” 트로트의 한 별이 지다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4.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경주 신라 왕궁 핵심은 ‘월성’ 아닌 ‘월지’에 있었다 5.

경주 신라 왕궁 핵심은 ‘월성’ 아닌 ‘월지’에 있었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