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새벽 고 최숙현 선수가 엄마에게 보낸 카톡 메시지 / 이용 의원실 제공.
철인3종경기 최숙현 선수가 전 소속팀인 경주시청 지도자 등의 가혹 행위를 폭로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한 가운데, 관련 의혹에 대해 수사를 벌이고 있던 검찰이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경주시체육회는 해당 감독 등 관련자들을 직위 해제했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중심으로 철저한 수사와 가해자 처벌을 요구하는 여론도 들끓고 있다.
대구지검은 2일 “숨진 최 선수의 가혹 행위 사건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건은 대구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부장 양선순)에게 배당돼 수사가 진행중에 있다. 검찰 관계자는 “최대한 공정하고 신속하게 사건을 처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앞서 최 선수는 지난 2월 경주경찰서에 소속팀 지도자 등 4명을 폭행 혐의로 고소했다. 경찰은 감독 등이 최 선수를 3일 동안 굶기고 슬리퍼로 뺨을 때리는 등 혐의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지난 5월 감독을 폭행 등 혐의로, 팀닥터 ㅇ씨와 선배 선수 2명은 폭행 혐의로 불구속 입건하고, 검찰에 넘겼다. 경찰 관계자는 “최 선수가 폭행당했다는 고소장 내용 대부분이 사실로 확인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경주시체육회는 이날 최 선수가 있었던 경주시청 철인3종경기팀 감독 등에 대한 인사위원회를 열어 최 선수와 관련된 진술을 청취했다. 경주시는 감독 등 4명의 직무를 정지시켰다. 경주시 관계자는 "현재 수사기관에서 수사 중인 점을 고려해 경주시 차원에서 별도 조사를 하지 않는다. 다만 수사결과가 나오면 곧바로 징계 조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 선수가 있었던 경주시청 철인3종경기팀에는 감독과 선수 등 11명이 있다.
와이티엔이 공개한 녹취록에는 지난해 3월 뉴질랜드 전지훈련 중 철인3종경기팀 관계자들이 최 선수에게 한 폭언과 폭행 소리가 담겼다. 녹취록을 들어보면, 팀 관계자가 “3일 굶자. 잘못했을 때 굶고 책임지기로 했잖아” “이빨 깨물어!(찰싹) 야! 커튼 쳐” 등 최 선수에 대한 가혹 행위 정황이 드러나 있다. 최 선수의 유족은 팀 관계자가 최 선수의 체중이 늘자 빵 20만원어치를 억지로 먹게 해 토하는 일을 반복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최 선수는 훈련일지에 ‘비 오는 날 먼지 나게 맞았다’ ‘체중을 다 뺐는데도 욕은 여전하다’ 등 괴로운 마음을 기록하기도 했다.
올초 부산시 체육회 소속 팀으로 옮긴 최 선수는 지난 4월 전 소속팀인 경주시청 감독 등의 가혹 행위를 대한체육회 스포츠 인권센터와 대한철인3종협회에 신고하거나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어 그는 지난달 26일 새벽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가족에게 “엄마, 사랑해. 그 사람들 죄를 밝혀줘”라고 보냈다. 또 동료 선수에게는 “내가 기르는 강아지를 잘 부탁한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이후 동래구에 있는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유족은 최 선수가 남긴 ‘그 사람들’이 전 소속팀인 경주시청의 지도자 등이라고 지목했다. 한 유족은 경찰에서 “팀원들과의 불화로 운동을 그만뒀다가 다시 시작하면서 많이 힘들어했다. 최근 폭행 소송 문제로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말했다.
대한체육회는 “스포츠인권센터가 고 최 선수로부터 폭력 신고를 접수했고, 피해자의 연령과 성별을 고려해 여성 조사관을 배정한 뒤 즉시 조사에 착수했다. 검찰 조사에 적극 협조해 사건 조사를 조속히 마무리하고 대한철인3종협회 스포츠공정위원회를 통해 관련자들에 대해서도 엄중히 조처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한철인3종협회도 자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9일 스포츠공정위원회를 열어 최 선수에 대한 가혹 행위 문제를 다룰 예정이다.
최 선수 관련 의혹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가해자 처벌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누리집을 보면, ‘트라이애슬론 유망주의 억울함을 풀어주시기를 바랍니다’라는 청원에는 “(팀닥터가) 슬리퍼로 얼굴을 치고 갈비뼈에 실금이 갈 정도로 구타했고 식고문까지 했다. 참다못해 고소와 고발을 하자, 잘못을 빌며 용서해달라는 사람이 정작 경찰 조사가 시작되니 모르쇠로 일관하며 부정했다”고 적혔다. 이어 “최 선수는 고통과 두려움 속에 견디다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간 관계자들을 일벌백계하고 최숙현 선수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호소했다.
한편, <한겨레>는 경주시청 철인3종경기팀 감독인 ㄱ씨에게 수차례 전화 통화를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김영동 구대선 기자
yd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