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아산 배방읍 설화산 폐탄광터에서 발견된 은비녀들.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 제공
한국전쟁기 남북한 정규군과 미군, 우익 청년단 등에 의해 은밀하게 저질러진 성폭력 사건은 비일비재했다. 전쟁이 보여주는 가장 추악한 단면이자 또 하나의 학살이었지만, 다른 학살사건에 비해 덜 알려져 있다. 사건의 특수성 때문에 유족들이 피해를 호소하기 어려운데다, 성폭행 뒤 학살이 이뤄지면서 일반 피해자로 합산됐을 가능성도 적지 않은 탓이다. 간헐적으로 드러날 뿐, 전체적인 피해 규모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성폭행 사건들은 사적 처형과 더불어 국가가 폭력을 독점하지 못했던 치안 공백기에 주로 발생했다. 한국전쟁의 게릴라전 특성상 전선이 끊임없이 이동하면서 사적 보복에 따른 학살과 성폭력이 횡행했다.
1950년 9~10월, 충남 아산에선 좌우익 청년들에 의한 성폭행 학살 사건이 잇따라 일어났다. 북한 인민군 점령기 때인 9월 배방면 인민위원회 청년들이 마을의 22살 여성을 집단 성폭행했다. 국군이 수복한 10월에는 우익 청년단들이 인민위원회 활동을 했던 집안 여성들을 농락한 뒤 학살했다. 당시 우익 청년단원들은 “빨갱이 가족을 처단한다”며 좌익활동 뒤 달아난 배방국민학교 교감을 대신해 그의 아내를 성폭행한 뒤 우물에 빠뜨려 살해했다. 배방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목격했던 마을 주민 김희열(85)씨는 “그때는 보복이 두려워 모두가 입을 닫고 눈을 감았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10월4일에는 탕정국민학교 교사 김지선(당시 21살)·안옥훈(22살)씨가 탕정면사무소 곡물 창고로 끌려갔다. 인민군 점령 때 학생들에게 공산당 노래와 인공기 그리기를 가르쳤다는 혐의였다. 김씨와 안씨는 이후 10여일 동안 수차례 성폭행당한 뒤 마을 뒷산에서 총살됐다. 당시 15살이던 채수선(85)씨는 “우익 청년단이 이들의 옷을 벗기고 마을 우물에 가서 물을 떠 오라고 시킨 모습을 본 목격자도 있다. 완장을 차고 총을 든 놈들에게 마을 여성들은 노리개에 불과했다. 남아무개·원아무개·김아무개가 그들”이라고 증언했다.
1951년 1월 충북 충주 살미면 신당리 새터말에서는 안아무개씨의 딸이 군인들에게 끌려가 성폭행을 당했다. 안씨의 딸은 정신적 충격과 후유증으로 일주일 뒤 숨졌다. 당시 마을 주민들은 군인들 눈에 띄지 않게 하려고 딸들을 김칫독에 숨기거나 얼굴을 까맣게 칠했다. 마을 주민 이아무개(82)씨는 “(군인들이) 동네 곳곳의 젊은 여자들을 붙잡아 성폭행을 일삼았다”고 했다.
2010년 진실화해위가 발표한 경남 산청·거창 등 민간인 희생사건 조사보고서엔 한국전쟁 당시 경남 산청경찰서 의용경찰이었던 민아무개가 “빨갱이 마누라라고 잡아다가 잔인한 성고문을 했다”고 진술한 기록도 있다.
김장호 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 아산유족회장은 “어르신들에게 딸의 치욕스러운 사건은 말하기 힘든 상처다. 아직 한마을에 피해자와 가해자 후손이 함께 사는 사례도 있어 나서기 힘든 경우도 있다”고 했다. 박만순 전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충북대책위 운영위원장은 “한국전쟁 당시 미군 등의 성폭행 사건들에 대해 언론, 정부 등을 통한 국민 공론화가 현재까지 없었다. 더 늦기 전에 희생자 유족 등의 증언과 뒷받침 증거 등을 확보해 전쟁범죄 기록으로 분명히 남겨야 한다. 역사의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옥기원 김영동 기자
yd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