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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러스트 혜택 없어 ‘유턴’…기업·대학 확 당길 ‘마중물’ 절실

등록 2019-09-26 04:59수정 2019-09-26 07:37

[다시 균형발전이다] 3부 대안을 찾다
②혁신도시 클러스터 활성화하려면
기업 입주율, 분양 면적의 36%뿐
수도서 이전한 기업은 16%에 그쳐
대학들 ‘입주’ 대신 다른 사업으로
세금 감면·행정 지원 유인책 시급
지방정부 주도하는 특성화 전략을
2015년 당시 경남 진주 혁신도시 클러스터 전경. 경남도 제공
2015년 당시 경남 진주 혁신도시 클러스터 전경. 경남도 제공
“이전 혜택은 거의 없고, 이전 뒤 수도권에 있을 때보다 사업 영역이 좁아졌다. 입주 기업이 일할 수 있도록 지역 업체 우대 등 대책이 필요하다. 한전공대가 들어서도 기업에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3년 전 수도권에서 광주전남 혁신도시 산학연 클러스터(기업과 공공기관, 대학, 연구소 등 복합단지)로 본사를 옮긴 에너지 정보 부문의 한 업체 대표 이아무개씨는 이전 뒤 경영 상황을 묻는 말에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는 광주전남 혁신도시를 에너지 새 산업 거점으로 키우겠다는 정부 발표에 대한 기대감과 관련 공공기관의 이전 소식을 듣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회사를 이전했다. 그러나 결과는 기대 이하였다.

경남 혁신도시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곳에 입주한 ㄱ업체 대표는 “아직은 제대로 된 사업 지원책이 없다. 이전한 공공기관과 사업 연계를 기대하고 회사를 옮겼지만, 공동 사업이 쉽지 않다”고 했다. 한 혁신도시에 입주한 ㄴ업체 대표도 “이전 공공기관은 세액감면을 해주지만, 이전 기업에는 혜택이 없다. 사실 세액공제도 기업 경영이 잘돼야 받을 수 있는 혜택이다. 기업 먹거리가 마땅치 않은 상황에선 효과적 지원책이라고 할 수도 없다”고 볼멘소리를 늘어놓았다.

균형 발전과 지역 성장의 거점으로 키우려던 혁신도시 산학연 클러스터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수년째 표류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는 이전한 공공기관을 지렛대로 삼아 기업과 대학을 클러스터에 끌어들이고 지역 산업 구조를 개편해 새 산업의 동력을 만들려고 했다. 그러나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10년 동안 균형 발전보다는 수도권 중심 개발 정책을 펼쳤고, 혁신도시와 클러스터 역시 힘을 받지 못했다. 전국의 클러스터엔 몇몇 기업과 연구소만 들어섰을 뿐 다른 산단과 다를 바가 없었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6월 발표한 ‘전국 10개 혁신도시 산학연 클러스터 분양 현황’을 보면, 전체 312만4000㎡ 규모의 터 가운데 199만㎡(63.7%)가 분양됐다. 경남이 94.9%로 가장 높았고, 충북이 31.6%로 가장 낮았다. 그러나 실제 기업 입주율은 훨씬 낮은 분양 면적의 35.7%에 그쳤고, 분양 뒤 미착공 비율도 분양 면적에 견줘 30.7%에 이른다.

올해 상반기까지 전국 10개 혁신도시 클러스터에 입주한 기업은 1017개였다. 경남이 355개로 가장 많았고, 광주전남 242개, 부산 142개, 대구 129개 차례였다. 그런데 이전 기업 1017개 가운데 수도권 기업은 159개(15.6%)에 불과했고, 혁신도시와 같은 광역에서 이전한 기업이 716개(70.4%)에 달했다. 이것은 혁신도시의 유입 인구 출신지와도 비슷한 경향으로 수도권과 지방 사이의 조정이 아니라, 지방 안에서의 조정에 불과한 결과다. 또 창업 기업은 99개(9.7%)에 그쳤다. 300인 이상 중견기업은 5개(0.5%)에 머물렀고, 30인 이하 소기업이 949개(93.3%)로 대부분이었다.

강영훈 울산발전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실효성 있는 기업 유인책이 없다. 울산에선 수도권에서 왔던 기업이 다시 수도권으로 다시 돌아가기도 했다. 클러스터를 지역 성장 축으로 삼으려면 기업, 대학, 연구원 등 클러스터 주체들에 대한 중장기적이고 전략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결국 정부가 적극 나서지 않으면 클러스터 활성화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해 전국 10개 혁신도시를 균형 발전과 성장 거점으로 키우는 ‘혁신도시 종합발전 계획’을 발표했다. 계획에는 기업 입지 여건 개선, 건축 허가 간소화, 분양 간편화, 임차료 지원 등이 담겼다. 대학과 연구기관 입주 촉진책과 산학연 연구개발 촉진책도 마련됐다.

그러나 기업 등 클러스터 주체는 정부 대책이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고 했다. 지난해 서울에서 부산으로 이전한 콘텐츠 개발 업체 케이드래곤의 김희영 대표는 “올해 초 부산시의 담당 공무원과 문화콘텐츠 업체 간 만남이 있었는데, 얼마 뒤 담당 공무원은 인사 발령으로 다른 부서로 자리를 옮겼다. 정부의 지원이 전문성도 없고 체계적이지 않았다. 기업과 클러스터가 발전하려면 참여 주체들이 자주 만나고 협력해야 하는데, 그런 기회가 부족하다”고 했다.

대학들은 스스로 대안을 찾아나섰다. 경남에 있는 한 대학의 산학협력단 관계자는 “대학이 클러스터에 입주하려면 별도의 터와 건물을 마련해야 한다. 그런데 많은 대학이 새 건물을 마련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래서 정부가 추진하는 비슷한 내용의 사업에 참여하는 등 다른 방안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의 한 대학 산학협력단 관계자도 “클러스터 입주가 사실상 어려워 캠퍼스 안을 첨단산업단지로 활용하는 ‘캠퍼스 혁신파크 조성’ 등 정부의 다른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과 전문가들은 클러스터를 활성화하기 위해 수도권 기업들이 관련 혁신도시로 이전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국토 면적의 12%에 불과한 수도권에 100대 기업 본사 91%, 벤처기업 70%, 제조업체 57%, 기업 대출 67%가 집중돼 있다. 기업과 전문가들이 요구하는 대표적인 개선 방안으로는 정부와 공공기관 주도로 창업·혁신 기업에 사업 정보와 성장 단계별 지원책을 제공하는 ‘산학연 융합센터’가 있다. 또 이전 공공기관별로 창업보육센터를 운영해 교육, 투자 유치, 마케팅 등 지원에 적극 나서고, 이전 공공기관이 빅데이터를 창업·혁신 기업에 제공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제주 혁신도시의 모습. 허호준 기자
제주 혁신도시의 모습. 허호준 기자
송재호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은 “‘혁신도시 시즌2’는 기업 유치에 방점이 찍혀 있다. 기업 유치는 인재 양성, 일자리 창출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현재는 클러스터 활성화 준비 단계로, 지역 인재 채용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앞으로 수도권 기업을 혁신도시에 끌어들이려고 세금 감면, 행정·재정적 지원 등 유인책 확대를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또 클러스터 등 혁신도시 사업 전반을 기획·조정하는 ‘혁신도시 발전재단’의 역할도 주목받는다. 2022년까지 각 혁신도시에 설치될 발전재단은 기업지원센터를 운영하고 테크노파크, 산업단지 등 지역의 혁신 자산과 혁신도시의 시너지 창출 방안을 찾는다. 또 이전 공공기관과 기업, 대학, 연구기관의 공동 연구 등 교류를 주도하고, 학술대회, 국제 박람회를 개최하는 등 혁신도시 발전의 관제탑 구실을 맡는다.

초대 국가균형발전위원장으로 혁신도시 정책을 입안한 성경륭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은 “발전재단 설립은 클러스터에서 지방정부와 공공기관, 대학, 연구기관, 기업이 서로 연결하고 협력할 수 있게 만드는 좋은 틀이 될 수 있다”며 “발전재단 이사진을 지역 대표성과 전문성을 가진 인재로 짜서 클러스터 주체들이 공동으로 꾸려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주 혁신도시 모습. 허호준 기자
제주 혁신도시 모습. 허호준 기자

클러스터 활성화를 위해서는 지방정부에 권한과 책임을 대폭 넘겨줘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박재율 지방분권전국연대 대표는 “부산 첨단해양 산업, 대구 첨단의료 융합 산업, 광주전남 에너지 산업, 충북 태양광 에너지 산업 등 각 혁신도시의 클러스터 활성화는 지역별 특성화 발전”이라며 “지금까지 정부가 주도하던 혁신도시 정책을 지역 주도형 발전 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 클러스터와 관련된 중앙정부 예산의 배분권을 지방정부에 넘겨 지역별로 실정에 맞는 활성화 전략을 추구하게 하는 게 더 효율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동 기자 yd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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