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합천 옥전고분군에서 나온 로만글라스. 김규현 기자
순한 능선 위로 크고 작은 옛 무덤들이 혹처럼 무리 지어 솟아 있었다. 무덤들을 에워싼 둘레길에는 산책 나온 시민들이 보였다. 능선 정상에 서니, 고령 시가지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지난 1일 찾은 경북 고령 지산동고분군의 모습이었다. 고대 가야연맹이 남긴 지산동고분군은 오는 9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앞두고 있다.
가야 고분군이 세계유산에 등재되면 국내에선 석굴암·불국사, 해인사 장경판전 등에 이어 16번째 세계유산이 된다. <한겨레>가 이날 가야고분군세계유산등재추진단과 함께 찾은 가야 고분군은 고령 지산동고분군 외에 경남 합천 옥전고분군, 전북 남원 유곡·두락리 고분군이었다. 유네스코 유산 등재를 앞둔 ‘가야 고분군’(Gaya Tumuli)은 이 3곳을 포함해 경남 김해 대성동고분군, 경남 함안 말이산고분군, 경남 창녕 교동·송현동 고분군, 경남 고성 송학동고분군까지 7개다.
고령 지산동고분군은 7개 고분군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 5~6세기 가야 왕족의 봉토분 704기가 모여 있다. 주산의 정상부 바로 아래 있는 44호분은 높이 6m, 지름 25m에 달하는 대형 봉토분이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순장(죽은 사람과 가까웠던 사람이나 동물을 딸려 함께 묻는 일) 무덤이기도 하다. 무덤 한가운데는 왕의 자리인 ‘으뜸돌방’이 직사각형 모양으로 있고, 남쪽과 서쪽으로 ‘딸린돌방’ 2기가 있다. 이를 둘러싸고 동그랗게 32기의 순장덧널(순장곽)이 있는데, 1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의 백성 40여명이 순장됐다고 한다. 가야연맹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대가야의 위상을 짐작하게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었다.
‘가야 고분군’(Gaya Tumuli)에 포함된 7개 고분군 현황. 문화재청 제공
고분군 아래 대가야왕릉전시관에서는 44호 고분군 내부를 그대로 전시해 발굴된 유물 등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었다. 지산동고분군에서 차로 30여분 떨어진 경남 합천 옥전고분군도 높은 구릉 위에
봉토분이 모여 있었는데, 구릉 정상부에는 4세기 무렵의 나무덧널무덤(목곽묘)이, 서쪽으로는 5세기 무렵의 돌덧널무덤(석곽묘)이 보였다. 구슬밭을 뜻하는 ‘옥전’이라는 이름처럼 이곳에선 구슬 목걸이, 금제 귀걸이 등 화려한 장신구들이 많이 발견됐다고 한다. 투명 유리그릇인 ‘로만글라스’도 1점 나왔는데, 서역과의 교류를 통해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7개 고분군 가운데 가장 서쪽에 있는 남원 유곡리·두락리 고분군에선 발굴 작업이 한창이었다. 애초 이곳은 백제 지배층의 무덤일 것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실제로 백제식 유물과 가야식 유물이 섞여 나왔다. 32호분에서 나온 청동거울은 백제 무령왕릉에서 나온 것과 비슷해, 백제와 교류하며 영향을 받은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전북 남원 유곡리·두락리 고분군은 지금도 발굴 작업이 한창이다. 김규현 기자
이규홍 가야고분군세계유산등재추진단 연구원은 “가야식 석곽묘는 가늘고 긴 직사각형 모양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주곽과 부곽을 나란히 놓거나 비스듬하게 놓는 등 구성 방식이 모두 다르다. 대등한 수준의 위세품과 교역품이 발견돼 가야에 속한 각 정치체가 자율적이고 수평적인 관계를 형성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의 유적은 모두 세계유산에 등재돼 있다. 가야고분군의 세계유산 등재로 고대사의 마지막 퍼즐을 맞출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김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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