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돈 경북 봉화소방서장이 지난 5일 오전 9시 경북 봉화군 아연광산 붕괴 사고 현장에서 광부 구조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경북소방본부 제공
‘봉화의 기적’은 반드시 살아서 나가겠다는 광부들의 굳은 의지, 이들의 생환을 염원한 가족과 국민의 간절함, 어떻게든 생존자들을 데리고 나오겠다는 구조대원들의 땀방울이 어우러져 만든 감동의 드라마였다. 하지만 생환의 기적 뒤에 가려진 날것 그대로의 현실은 보는 이의 분노와 실망감을 키운다.
①일제강점기 만들어진 노후 갱도…빈발한 안전사고
이번 사고는 안전에 대한 무감각과 부실의 누적이 빚어낸 인재였다. 붕괴 사고가 일어난 제1수직갱도(수갱)는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80년 이상 된 노후 갱도로, 자연 풍화로 내부 암석이 부서지고 수시로 흙이 흘러내리는 상황이었다.
산업통상자원부 동부광산안전사무소는 이 광산에서 아연을 채굴해온 성안엔엠피코리아(대표이사 김태환)에 지난해 12월 “제1수갱 인근 폐갱도 지표관통부는 침하 및 붕괴에 따른 안전사고 우려가 있다”며 “일체의 갱내 충전 작업을 중지하고 인원 및 차량의 접근을 통제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1수갱에선 지난 8월29일 갱도 내 사고로 작업하던 광부 2명이 매몰돼 1명이 숨졌다. 이번에 붕괴 사고가 난 그 수직갱도다. 채굴업체가 산업부의 안전명령을 얼마나 충실히 이행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최근 광물 가격이 전세계적으로 크게 오르자 광산업체들은 사고 위험을 감수하면서 채굴량 확대에 사활을 걸어왔다.
②왜 119신고 없이 자체 구조했나…커지는 은폐 의혹
사고 발생 직후 초기 대응도 부실투성이였다. 사고 당시 갱도 안에서는 광부 7명이 땅을 파고 바닥에 레일을 설치하는 굴진 작업을 하고 있었다. 사고 직후 2명은 2시간 만에 자력 탈출했고, 3명은 5시간 만에 구조됐다. 그러나 업체는 119 신고도 하지 않은 채 자체 구조 작업을 진행하다가, 결국 60대와 50대 광부 2명을 구조하는 데 실패했다. 업체가 119에 신고한 것은 다음날 아침 8시34분. 사고 14시간30분 만이었다. 업체는 “자체 구조가 가능하다고 봤고, 밤샘 구조를 하다 보니 신고할 경황이 없었다”고 늑장신고를 해명했지만 올해 같은 갱도에서 인명 사고를 낸 업체가 처벌이 무거워지는 것을 피하려고 사고를 은폐하려 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여전하다.
③20년 전 도면 보고 이틀간 엉뚱한 곳 구멍 뚫어
뒤늦게 구조를 위해 출동한 당국도 작업 초기엔 우왕좌왕했다. 매몰 광부들에게 식수와 의약품 등을 공급하기 위해 이틀 동안 시추공을 2개 뚫었지만, 광부들은커녕 빈 공간도 찾지 못했다. 시추에 활용한 업체 쪽의 현장 도면이 내부 구조가 변경되기 전인 20여년 전 만들어진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틀 동안 엉뚱한 곳에 구멍을 뚫고 있었던 것이다. 뒤늦게 실측 결과를 토대로 시추 작업을 재개해 3일 새벽 처음으로 대피 추정 장소까지 지름 76㎜의 구멍을 뚫었다. 이틀이면 가능한 작업에 닷새의 시간을 소비한 것이다.
광산 붕괴 사고가 발생하자 고립된 광부 2명은 애초 작업 지점에서 30m 정도 떨어진 공간으로 대피했다. 공기가 들어오는 쪽, 물이 흘러나오는 쪽으로 대피해서 공간을 확보하고 대기하라는 매뉴얼을 충실히 이행한 것이다. 방장석 구조팀장은 “토사가 밀려왔지만, 오랜 현장 경험과 숙지한 매뉴얼에 따라 침착하게 대피했다. 두 광부가 서로 어깨를 맞대어 체온을 유지하며 구조를 기다렸고, (구조대의) 발파 소리를 들었을 때 안도감을 느꼈다고 한다”고 전했다.
최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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