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군 북면 신한울 1·2호기 건설 현장 입구 모습. 김규현 기자
6·1지방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5월27일. 오일장날이 겹친 경북 울진읍내는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 출마자들의 선거운동으로 떠들썩했다. 빠른 템포의 유세송이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주요 교차로마다 빨간색, 흰색, 초록색 옷을 맞춰입은 운동원들이 행인들 반응엔 아랑곳없이 허리를 90도로 굽혀 인사를 했다. 군수 후보들의 선거 사무소 건물벽을 감싼 초대형 펼침막은 이곳이 ‘동해안 원전 클러스터’의 중심 지역임을 상기시켰다. 손병복 국민의힘 후보는 “새정부에 딱! 원전최강국 중심도시 울진”, 황이주 무소속 후보는 “고준위(방사성폐기물처리장) 유치로 가구당 1년에 1천만원씩 10년동안 1억원”이란 선전 문구를 적어놓았다. 전임 정부의 탈원전 정책 폐기를 공언한 새 정부 방침에 맞춰 후보들마다 ‘친원전’ 공약을 경쟁하듯 내놓고 있었다. 군청 앞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70대 남성에게 ‘원전을 다시 짓는다는데 불안하지 않으냐’고 물었다.
지난 27일 울진군 울진읍내에 황이주 무소속 울진군수 후보가 ‘고준위 유치’ 공약을 건 펼침막을 걸어 두었다. 김규현 기자
“아이고, 첨에는 반대도 참 마이 했지. 근데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다. 벌써 (신한울 3·4호기) 공사(계획이) 멈춘지가 5년 되아삣다. 다시 돌아가는 기 맞지. 그래야 젊은 친구들 일자리라도 생기지 않겄나.”
기자가 질문을 더 이어가려고 했지만 “아이고 나는 모린다. 어디 지(어)도 지(어)야잖아”라며 손사래를 쳤다. 문재인 정부가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뒤 울진군에선 지난해 주민단체 등이 나서 ‘원전을 계획대로 지어야 한다’고 요구하는 100만인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울진읍내에서 한울원자력발전소가 있는 북면까지는 15㎞ 남짓, 승용차로 25분 거리다. 북면으로 향하는 2차로 바닥 왼쪽에 ‘원자력’, 오른쪽에 ‘덕구온천’이란 흰 글씨가 선명했다. 북면은 ‘원자력’ 세 글자로 모든 것이 설명되는 듯했다.
울진군 북면 부구터미널 바닷가에서 바라 본 한울원자력발전소 모습. 김규현 기자
북면 부구터미널 앞에서 바다 쪽을 바라보니, 원전의 콘크리트 돔지붕과 고압선, 송전탑들이 눈에 들어왔다. 한울원전이었다. 북면 중심가는 일반적인 면소재지보다 화려했다. 터미널을 중심으로 편의점 4개가 몰려있고, 식당·카페·미용실·모텔에 면 단위에서 보기 힘든 치과도 눈에 띄었다. 한울원전이 바라보이는 고추밭에서 지줏대를 매만지던 80대 여성은 “여기는 한수원(한국수력원자력) 없이는 아무 것도 안 된다”고 했다.
거리는 화려했지만, 정작 오가는 사람은 찾기가 어려웠다. 면소재지에서 30년째 미용실을 하는 김미경(59)씨는 “5년 전만 해도 장사 안되는 집이 없었다. 탈원전하고 코로나까지 터지면서 더 힘들어졌다”고 했다. 미용실을 찾는 주 고객은 한수원 직원들이다. 김씨는 신한울 1호기 가동에 이어 3·4호기 건설이 시작되면 지역 상권이 활로를 찾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신한울 1호기는 아직 안정성에 대한 최종보고서가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제출되지 않은 상태다. 김씨에게 원전이 밀집해 있는 게 불안하지 않으냐고 물었다. “불안? 먹고살자면 별수 있나? 지금 반대한다고 용써도 달라질 것도 없다. 원전이 이만큼 많이 들어섰는데, 하나 더 들어오나, 두 개 더 들어오나 다른 기 뭐 있겠나? 차라리 새로 짓는 건 오래된 것보다 튼튼하고 안전하다카드라.”
지난 27일 울진군 울진읍내에 손병복 국민의힘 울진군수 후보가 ‘원전최강국 중심도시 울진’ 공약을 건 펼침막을 걸어 두었다. 김규현 기자
그는 어차피 지어야할 원전이라면 경제적 혜택을 최대한 많이 받는 편이 현명하다는 생각이었다.
“우리는 맹(똑같이) 위험한 걸 안고 있는 거야. 어차피 원전은 돌아가고, 폐기물도 처리해야 하잖아. 어디든 지어야 해.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우리 주민들한테 혜택이 돌아가게 지어야 한다고. 위험하니까 들어오지마라고만 할 수 없어.”
울진읍에 사는 박혜분(47)씨는 고준위방폐장을 유치한다는 군수 후보 공약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그 양반 공약을 보면 정확하게 사용후 핵연료라고 적지 않고 ‘고준위’라고만 적혀있어요. 군수 한번 해보겠다고 (주민들을) 금전적 이익에 눈 돌리게 하려는 거지. 노인 인구가 많은데 혹하지 않겠어요?” 그는 고준위방폐장은 물론 원전을 더 짓는 것도 반대한다고 했다.
울진군 근남면에서 만난 이규봉(56)씨 반응도 비슷했다. 그는 근남농협 사거리에 걸린 후보들의 펼침막을 보면서 “다 고향 팔아먹은 놈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30년 동안 중저준위방폐장 반대 운동해서 겨우 막아 놨디만, 갑자기 고준위방폐장을 유치한다고 들고 나오니까 기맥히지 않겠어? 지지율에서 밀리니까 더 파격적인 공약을 낸 거라고. 독약 멕이기 전에 내주는 사탕 같은 거야.”
한울 1∼6호기와 신한울 1·2호기는 200m 남짓한 거리를 두고 붙어있다. 신한울 3·4호기도 인근에 지어질 예정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역 공약으로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를 내걸었다. 울진에만 모두 10기의 원전이 들어서는 것이다. 신한울 1·2호기는 기존 원전보다 전력 생산량도 많고, 수명도 길다. 한울 1∼6호기는 95만∼100만 킬로와트 발전용량에 40년 수명이지만, 신한울 1·2호기는 140만 킬로와트 용량에 60년 수명이다. 그래서 ‘반원전’ 쪽은 더 걱정이다. 이규봉씨는 “한울 1∼6호기 옆에 새 원전이 들어오면 7호기지, 우째 신한울 1호기야? 신한울 1∼4호기가 아니라 한울 7∼10호기라고 불러야해. 이름 바꿔 달아 사람들 눈을 속이려는 거라니까.”
울진도 비수도권의 여느 지방자치단체처럼 인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지난해 행정안전부는 이곳을 인구감소지역 89곳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인구가 가장 많던 1960년대에는 12만명에 육박했지만, 2004년 5만명대를 찍은 뒤 2019년부터 4만명대를 근근이 유지하고 있다. 이규봉씨가 한탄조로 되물었다.
“울진에서 내리 40년 동안 원전 공사를 하고 있는데, 인구는 계속 줄어들어. 원전을 그만큼 짓는 동안 고속도로, 철도 하나 없이 오지로 남았다니까. 그렇다고 행복지수가 높아, 복지 수준이 높아?”물론 이씨도 원전 가동 찬성 여론이 높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는 높아진 친원전 여론이 ‘희망’ 때문이 아닌 ‘자포자기’ 탓이라고 했다. “그나마 옛날엔 ‘아름다운 우리 고향을 지키자’는 여론이 있었어. 근데 이제는 동네 이장들까지 나서서 유치운동을 해. 주민들이라고 무슨 장밋빛 미래를 그리고 찬성하겠어? 어차피 글러먹은 거, 들어온 혜택이나 받자는 거지. 이게 자포자기 아니면 뭐겠어?”
하지만 그는 주변 이웃들이 어떻게 변하든 꾸준히 목소리를 내겠다고 했다. “뜻이 통하는 사람들하고 계속 힘을 모아 따질 거야. 이것저것 다 떠나서 대규모 원전을 이렇게 한군데 몰아짓는 게 맞는 정책이냐고. 정책 결정자들과 원전 찬성 운동하는 양반들한테도 질리도록 물어야지. 후손들한테 정말로 부끄럽지 않냐고.”
울진/김규현 기자
gyuhy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