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성물질 트리클로로메탄에 기준치의 4배 이상 노출돼 ‘급성 독성 간질환’ 판정을 받은 대흥알앤티 노동자 10명이 17일 근로복지공단 김해지사에 요양 신청낸 뒤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최상원 기자 csw@hani.co.kr
“작년에 세척제를 바꾼다는 말은 들었지만, 무엇으로 바꾸고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조차 알려주지도 않았습니다. ‘구역질이 나고 심한 편두통이 있다’고 현장관리자에게 호소했지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경남 김해시의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 ‘대흥알앤티’에 2018년 입사한 노동자 김아무개(30)씨의 말이다.
2017년 입사한 김아무개(35)씨도 “세척제를 바꾼 이후 냄새가 너무 심해 ‘일을 못 할 지경’이라고 회사 쪽에 말했는데도, 회사는 ‘냄새는 나지만 몸에 나쁜 것은 아니다. 그냥 일해라’고만 했다”고 주장했다.
이 작업장에서 일한 대흥알앤티 소속 노동자 90여명은 지난 3일 임시 건강진단을 받았다. 그 결과, 금속 재질의 자동차부품을 세척하는 일을 했던 노동자 13명이 ‘급성 독성 간질환’ 판정을 받았다. 이들은 간기능 수치가 정상범위보다 3배 이상 높아져, 극심한 피로감과 구역질·편두통·황달 등의 증세를 보였다. 온몸에 두드러기도 났다.
유독물질인 트리클로로메탄에 기준치의 4배 이상 노출된 탓이다. 트리클로로메탄은 지난해부터 피해 노동자들이 사용한 세척제의 원료다. 그러나 대흥알앤티 쪽은 “세척제 제조업체가 성분을 속이는 바람에 발생한 일”이라고 모르쇠로 일관한다.
김유길 민주노총 금속노조 대흥알앤티지회장은 “회사 쪽은 ‘회사가 어렵다’는 말만 반복한다. 심지어 치료를 받는 노동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공상으로 처리할 것이냐, 산재로 처리할 것이냐’라고 묻기도 한다”고 말했다. ‘산재’는 산업재해보상법에 따라 피해보상을 처리하지만, ‘공상’은 회사와 노동자 합의로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피해 노동자 13명 가운데 10명이 17일 근로복지공단 김해지사에 요양신청을 냈다. 이들은 “급성 중독으로 인한 중대재해가 발생한 이후에도 사업주는 노동자들에게 산재 신청 등 도움을 주지 않고, 재발 방지 노력도 게을리했다”고 밝혔다. 조형래 민주노총 경남본부장은 “이번 사태는 건강하고 깨끗한 환경에서 일할 노동자의 권리가 무시됐기 때문에 발생했다. 피해 노동자들의 빠른 회복을 위해 요양치료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정환 근로복지공단 김해지사 재활보상부장은 “현재 진행 중인 고용노동부의 조사 결과가 나와야 산재 승인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산재 승인이 나더라도 피해 내용이 사고성 질병이기에 내과 전문의 진단을 거쳐 요양 허가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모든 절차를 최대한 신속히 진행할 방침이다. 산재와 요양이 결정되면 진료비 전액과 임금의 70%를 쉬는 기간 받을 수 있다. 또 후유장해가 발생하면 보상청구도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고용노동부는 세척제 제조업체와 사용업체를 상대로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를 조사 중이다. 조사과정에서 세척제 제조사인 유성케미칼이 세척제 원료로 독성물질인 트리클로로메탄을 사용하고서도, 제품을 판매할 때는 이보다 안전한 디클로로에틸렌을 원료로 사용한 것처럼 물질안전보건자료(MSDS)를 허위 작성한 사실이 드러났다. 고용노동부는 ‘세척제 원료 허위기재’가 관행적이라는 주장까지 나오자 조사를 전국으로 확대했다.
글·사진 최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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