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제주4·3평화공원 내 희생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각명비 앞에서 유족 신윤근씨가 4·3 희생자인 할머니의 이름을 찾아 예를 표하고 있다. 허호준 기자
75주년을 맞는 제주4·3희생자 추념식이 3일 오전 10시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 위령제단과 추념광장에서 봉행됐다.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참석자를 제한하다가 3년 만에 정상적으로 열린 이날 행사에 윤석열 대통령은 불참하고 한덕수 국무총리가 윤 대통령 추념사를 대신 읽었다.
윤 대통령의 추념사에는 4·3 희생자에 대한 의례적 인사말은 있었지만, 구체적인 명예회복 방안 등은 담기지 않아 생존 희생자와 유족들이 반발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제주를 격조 있는 문화 관광지역, 청정의 자연과 첨단의 기술이 공존하는 대한민국의 보석 같은 곳으로 탈바꿈시키겠다고 약속드렸다. 품격 있는 문화 관광지역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정부의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추념사 절반이 ‘문화 관광 활성화’나 ‘아이티(IT) 콘텐츠’, ‘디지털 기업 육성’ 등으로 채워졌다. 한 총리가 대독한 대통령의 추념사를 듣던 유족은 “추념식장에서 할 얘기냐”며 고개를 흔들었다.
제75주년 4·3 추념식이 3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에서 봉행됐다. 허호준 기자
이날 추념식장에는 바람이 부는 다소 쌀쌀한 날씨에도 이른 아침부터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유족과 도민들 발걸음이 이어졌다. 코로나19 이후 처음 평화공원을 찾은 박인수(78)씨는 “해마다 4월3일이 되면 얼굴을 모르지만 자녀들과 함께 시아버지 표석을 찾는다. (시아버지가) 집에서 잡혀간 음력 7월18일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고 했다.
정치권에서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정미 정의당 대표 등 야당 지도부가 추념식장을 찾았고, 여당 소속인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불참했다.
3일 오전 제주4·3평화공원 입구에 도착한 자칭 서북청년단 구국결사대라는 이들이 도착하자 유족과 사회단체 등의 거센 항의로 승합차에서 내리지 못한 채 고립됐다. 허호준 기자
이날 유족 사연 소개 순서에서는 부모와 할머니, 두 형, 누나를 모두 잃은 이삼문(1941년생)씨가 평생을 실제 이름이 아닌 ‘박삼문’(1953년생)으로 살아온 사연이 영상으로 소개됐다. 이씨는 성도 실제 성과 다르고, 나이도 실제 나이보다 12살이나 어리게 등재된 채 다른 지역에 살고 있다. 이씨의 사연이 전해지면서 추념식을 찾은 유족들은 곳곳에서 눈시울을 붉히는 모습이 보였다.
3일 제주4·3평화공원 내 행방불명인 표석에서 유족 김정옥씨가 아버지의 표석을 정성껏 닦고 있다. 허호준 기자
추념식을 앞두고 이른 아침부터 ‘서북청년단 구국결사대’를 자처한 이들이 집회를 위해 현장을 찾았다가 분노한 유족 및 사회단체들과 대치하며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주민 진춘자(89)씨는 “4·3 당시 아버지는 보초를 제대로 서지 못한다고 서북청년단에 맞아 숨졌고, 오빠는 육지 형무소로 간 뒤 행방불명됐다. 여기가 어떤 곳인데 서청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나타나느냐”고 항의했다.
허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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