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인권상에 추천됐다가 외교부의 개입으로 서훈이 무산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가 8일 정부를 비판하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제공
한평생 일본을 상대로 사죄를 촉구하는 투쟁에 헌신한 강제징용 피해자
양금덕(91) 할머니가
국민훈장을 보류시킨 정부에 대해 쓴소리를 냈다.
양 할머니는 8일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시민모임)을 통해 “내가 이렇게 나이를 먹었어도 정부에서 상을 준다고 하니 흐뭇하고 좋았다. 갑자기 상을 안 준다고 하니 이것에 무슨 짓이냐. 기분 나쁘다”고 입장을 밝혔다.
양 할머니는 “자기들(정부)이 부끄러운 일이 있으니까 그런 거 아니냐. 우리가 일본에 가서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부끄러울 일이 뭐가 있냐. ‘잘못했다’는 말 한마디가 듣기가 그렇게 어렵냐”고 말했다.
시민모임은 양 할머니가 지난달 24일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올해 ‘ 대한민국 인권상’ 수상자(국민훈장 모란장 예정)로 결정됐다는 소식을 통보받고 “그동안의 활동을 인정받았다”며 기뻐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보류 소식이 들려오자 양 할머니는 “또다시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며 입장을 밝히기로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인권위는 ‘세계 인권의 날’(매년 12월10일)을 맞아 양 할머니를 국민훈장 모란장 서훈 대상자로 추천했다. 하지만 행정안전부가 6일과 8일 양 할머니 서훈 건을 국무회의에 상정하지 않아 무산됐다. 당시 외교부는 “절차상 관계기관과 사전 협의한 필요한 사안”이라는 의견을 내며 안건 상정이 보류된 것으로 알려졌다. 상훈법을 보면 서훈이 추천되면 행안부가 국무회의에 안건으로 제출해야 한다.
이날 시민모임은 성명을 내어 “‘대한민국 인권상’까지 일본 눈치 봐야 하냐”며 정부를 비판했다.
시민모임은 “양 할머니의 대한민국 인권상 무산 과정에 외교부가 ‘협의가 필요한 사안’이라는 의견을 제출하며 개입했다”며 “이미 실무 주관 국가 기구인 인권위가 면밀한 심사를 거쳐 최종 추천한 상태에서 외교부는 어떤 결정적 이유가 있어 협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인지 당장 밝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외교부는 앞서 7월26일 미쓰비시중공업 한국 내 자산(특허권, 상표권) 특별현금화 명령 재항고 사건과 관련해 대법원 담당 재판부에 사실상 판결을 보류해 달라고 요구하는
‘의견서’를 제출한 바 있다”며 “강제징용 피해를 배상받기 위한 강제집행 방해에 이어 양 할머니의 인권상’ 수상까지 방해하고 나선 것이 정상적인 나라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지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양 할머니는 13살이었던 1944년 일본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 항공기제작소로 동원돼 강제징용에 시달리다 해방이 되자 임금도 받지 못한 채 귀국했다. 그는 다른 피해자와 함께 1999년 3월 일본 법정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2008년 11월 최종 패소했고 2012년 10월 한국 법원에 다시 소송을 제기해 2018년 11월 대법원 최종 승소 판결을 이끌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